동경
몇 달 전 ‘6월 백두산 여행단’에 자리가 있다는 제보를 듣고 곧바로 예약했다. 백두산은 늘 마음속 버킷리스트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백두산에 가 보고 싶어 할 것이다. 여행단을 따라가기로 확정한 뒤 몇 달 동안 어서 빨리 백두산등정 날짜가 오기를 기다렸다. 백두산은 어떤 모습일까, 천지를 보면 어떤 감흥이 있을까, 출발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흥분이 됐다. 정상에 오르면 신명한 기(氣)라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영산이다. 그러나 불행 하게도 중국과 북한을 통해야 갈 수 있다. 최근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어 금방 왕래가 성사될 것처럼 분위기가 급변했지만,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을지는 아직 요원한 일이다. 안타깝지만 중국을 통해서라도 갈 수 있어 그래도 다행이다. 우리 땅인데 중국이 자기네 땅이라면서 금을 그어놓아 속이 아프다. 우리가 주권을 잃었던 시기에 일본과 중국이 우리 의사와 관계없이 맺은 ‘간도 협약’으로 중국 땅 이 되어버린 것이다. 백두산은 2750m의 고산이다. 그래서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을지 고민한 적이 있다. 고산병도 걱정되었다. 아직까지 그렇게 높은 산은 가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백두산으로 올라가 는 코스는 천지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다 있다. 이번에는 중국 땅을 통해 올라가는 서파와 북파 코스에 도전했다. 백두산 정상에 올라도 천지를 보기가 어려우니 날짜와 코스를 바꿔 두번 기회를 갖자는 것이다.
등정 첫날 - 서파 코스
중국 땅에 도착한 지 사흘째. 드디어 백두산에 올라가는 날이다. 먼저 서파로 올라간다고 했다. 아침부터 날씨가 흐리더니 빗방울까지 떨어졌다. 셔틀 버스로 중턱까지 가서 거대한 건물의 산문에 도착했다. 거기서부터 1440개 계단을 오르는데 비가 더 쏟아져 우비를 입고 우산까지 써야 했다. 정상에 오르니 넓은 전망대가 있었다. 그런데 천지 쪽은 짙은 안개로 아무것도 안 보였다. 궂은 날씨가 원망스러웠다. 현지 사진사가 맑은 날 천지 배경 사진과 얼굴 사진을 합성해서 팔고 있었다. 백두산에 정상에 오른 것만으로 만족하고 하산해야 했다. 한반도 최고봉이라 해서 상당한 고생을 각오했는데 중턱까지 버스로 올라가서 그런지 한편으로는 싱거운 면도 있었다. 호텔로 돌아온 뒤에 로비에 걸린 대형 천지 그림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내일도 천지를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아쉬움에 그렇게라도 위안을 삼은 것이다. 가이드는 ‘천지를 보려면 5대에 걸쳐 덕을 쌓아야 가능하다’는 말이 있다고 했다. ‘백 번 올라가야 두 번 천지를 볼까 말까 할 정도로 어렵다’는 말도 전해진다 했다. 그러면서 내일 북파 코스로 올라가니 천지를 보게 해 달라고 열심히 기도하라고 했다. 그만큼 천지는 신명한 존재라는 설명이었다.
등정 둘째 날 - 북파 코스
북파 코스로 도전하는 날은 아침부터 날씨가 화창하게 맑았다. 오늘은 천지를 꼭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나 가이드는 천지가 워낙 고산이라 올라가봐야 천지를 볼 수 있을지의 여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너무 오만을 떨거나 장담을 하면 부정 탈 수 있으니 겸손하게 결과를 기다려보자는 분위기였다. 북파 코스는 전세 버스에서 셔틀 버스로 갈아타고 다시 10인승 봉고차로 갈아탄 뒤 거의 정상까지 지그재그로 운전하면서 가도록 되어 있었다. 가이드는 봉고차를 타고 가면서 숲 사이로 정상 부근이 보일 때마다 오늘은 천지를 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산 중턱쯤에서 전망대가 깨끗하게 보였는데 그렇게 보이면 틀림없이 천지를 볼 수 있을 거라며 격려했다. 그러나 정작 정상에 오르니 하늘은 쾌청한데 묘하게도 천지 쪽은 짙은안개에 완전히 가려 있었다. 그런 풍경도 참으로 신묘하게 보였다.
세찬 바람을 참으며 막막한 심정이었지만 기다려봤다. 줄지어 천지가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간간이 함성을 질러대면 그쪽으로 몰려갔다. 그러나 안개는 잠깐씩만 옅어졌고 그 순간도 수시로 변했다. 찰나에 천지를 봤다는 사람도 있었다. 필자도 어렴풋이 본 것 같기는 한데 뚜렷이 본 것이 아니었다. 봤다는 확신은 없지만 그렇게 믿고 싶었다. 너무 간절한 마음이 반영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천지를 보라고 주어진 한 시간을 다 소비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합 장소로 내려가려는데 일행들이 중간에서 필자를 잡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기는 아쉽다고 했다. 오늘 천지가 보일 가능성이 높으니 점심은 물론 후속 스케줄을 포기하고서라도 더 기다려 꼭 천지를 보고 가자는 권유였다. 말은 안 했지만 모두들 천지를 꼭 보고 싶었던 것이다.
아, 천지여!
그렇게 10여 분이 지났을까. 갑자기 앞줄에서 사람들이 “우와~” 하며 함성을 질렀다. 천지가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뛰어올라가 보니 과연 천지가 앞에서부터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짙게 가려져 있던 안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마치 극장 커튼처럼 걷히면서 천지의 웅장한 자태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끔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눈앞에 펼쳐진 고고한 자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동적이었다. 검은 물결, 그리고 그 뒤에 병풍처럼 펼쳐진 고봉들 위에 아직 남아 있는 잔설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할 말을 잃고 한동안 눈앞에 펼쳐진 천지를 바라봤다.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첫날 정상에서 무난하게 천지를 볼 수 있었다면 이런 감동은 밀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 날도 날씨가 맑아 올라가자마자 천지가 보였다면 기쁨이 덜했을 것이다. 날씨가 화창한데도 천지 쪽은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가 끼어 그토록 애를 태우던 천지였다. 한 시간이나 기다려도 여전히 꿈쩍 않던 천지였다.
그런데 천지 보기를 거의 포기하고 내려가려는 순간 거짓말처럼 눈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것이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극적이었다. 그래서 더 감동적이었다. 천지는 한눈에 보일 정도였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규모가 크지 않았다. 감탄스러운 마음에 사진을 찍어야한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미친 듯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내 마음속 버킷리스트 하나가 지워지는 날이었다. 내려오는 길, 거대한 장백폭포와 계란을 삶아 먹을 수 있는 온천지대를 둘러봤으나 천지에 온몸의 감각을 빼앗겨버린 뒤라 어떻게 봤는지도 기억이 별로 없을 정도였다.
글 강신영 동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