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큐’ 뒤에 끝내 못 부쳤던 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돼서 마음만 동동 구르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문을 두드려주셔요. 이번 호에는 낯선 길에서 아주 사소한 친절을 베풀어준 한 사람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김인숙 소설가께서 이 지면을 통해 해주셨습니다. <편집자 주>

 

 

기르던 고양이가 죽었습니다. 이런 경우, 무지개다리를 건너갔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더군요. 다리를 건너든, 강을 건너든, 열다섯 살 소녀도 아니고 이미 오십이 훨씬 넘은 처지에 기르던 것이 세상을 뜬 얘기로부터 이 편지를 시작하는 걸 이해해주십시오. 나이를 들먹이는 건, 이 나이쯤 해서는 기르던 것만 세상을 뜨는 게 아니라 사랑했던, 사랑하는 많은 사람 역시 내 곁을 수시로 떠나기 때문입니다. 가족들, 선배들, 심지어는 후배들까지. 그러니, 이런 나이에 기껏, ‘기르던 것’과의 작별에 대해 당신에게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민망하기도 한 것입니다.

먼저, 오해는 하지 말아주십시오. 꼬박꼬박 기르던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지만, 그 말에 무시하고 하찮아하는 마음을 담고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내가 눈물로 이별했던 사람들과 ‘기르던 것’과는 구분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 이별은 같지만, 사랑도 같지만, 그래도 다른 건 다른 것이고, 달라야 할 것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그 아이, 기르던 것과의 작별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것은 작별의 슬픔과 살고 죽는 것의 어찌할 수 없음에 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런 이야기는 해서 뭐하겠습니까. 누구나 짐작할 만큼 슬펐다고 그렇게 말하는 걸로 족합니다.

그런데도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잊히지 않는 것 때문입니다. ‘그 아이’가 세상을 뜨기 직전, 먹을 걸 거부하더군요. 죽을 걸 알고 있으니 조용히 굶어죽겠다는 겁니다. 그걸 가만 보고 있을 수가 없어 강제급식이란 걸 시작했습니다. 거부하는 아이를 꽁꽁 싸매 꼼짝도 못하게 하고 주사기로 묽은 죽과 약을 억지로 투여하는 겁니다. 아이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버티고, 나는 진땀을 뻘뻘 흘리며, 울며, 제발 먹어 먹어, 나를 위해서라도 먹어줘, 그랬습니다. 그때, 그 한숨소리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죽어가는 고양이가 한숨을 쉬더군요. 모든 걸 다 내려놓은 듯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한숨을 쉬더라고요.

이제 그만해.

사람의 말로 말할 수 있었다면 아이의 말은, 아마 그런 것이었을 겁니다. 분명히 그랬을 겁니다. 이런 울적한 이야기 끝에 이제야 인사를 드립니다. 당신은 나를 모르시겠지만요. 나는 언젠가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은 일이 생긴다면, 그 누군가가 아주 낯선 사람이기를 바라곤 했었습니다. 사랑하는 누군가에는 내 마음을 다 털어놓고 싶지 않았고, 그게 가능할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둘만이 통하는 말이 다른 말들을 가로막을 것 같았습니다.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내 짐을 얹어주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어떤 편지를 쓰더라도, 나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려고 애쓸 거고, 나 자신을 위로하는 말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로하는 말을 하려고 들텐데, 그러면서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런 내 마음을 이미 다 알아차리고 더 마음 아파하고 있다는 걸 알아버릴 테니까요.

그래서, 편지 같은 거, 절대로 안 쓸 거라 생각했고, 그래도 꼭 누군가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면, 누군가에게 그저 다정한 안부 한마디쯤 문득 건네고 싶어진다면, 그 누군가가 완전히 낯선 사람이기를 바랐던 겁니다.

그래서, 당신.

나는 당신의 이름도 알지 못하고 얼굴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어떤 우연이 당신을 다시 만나게 해준다고 하더라도 당신도 나도 서로를 기억하지 못할 게 틀림없습니다. 물론 나는 당신을 압니다. 당신을 기억할 수밖에 없는 사연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한테는 너무나 무의미해서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조차 모를 게 뻔합니다. 기껏해야 당신은 말하겠지요.

아, 내가 그런 일을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당신은 그런 일을 했습니다. 몇 해 전이었고, 나는 그때 싱가포르 공항에 막 내린 참이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섬에서 몇 달을 체류하다가 비자를 연기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가장 쉬운 방법이 그 섬을 나갔다 돌아오는 일이라고 해서 하루 일정으로 싱가포르에 갔던 겁니다. 그래서 싱가포르에서의 체류시간이란 게 고작 몇 시간밖에는 안 되었습니다. 여유 있게 다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 돌아오려면, 싱가포르 시내를 구경할 시간도 안 되었지요. 싱가포르에서 하루나 이틀 자고 돌아오는 일정을 짤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서둘러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무슨 이유가 있었겠으나 지금은 잊어버렸습니다.

아무튼 고작 두어 시간, 그래도 공항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어서 내가 짰던 여행 계획이란 게 버스를 타고 시내 한 바퀴를 돌아보는 거였습니다. 공항에서 출발해 공항으로 돌아오는 버스가 있었습니다. 한 시간 반쯤, 버스 안에서 시내를 구경할 수 있겠네요. 당신은 공항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나는 내가 타려고 하는 버스가 어디에서 출발하는지를 물었습니다.

버스를 타려면 버스비가 필요하다는 것, 그것도 싱가포르 돈이 필요하다는 것, 그러므로 환전을 해야 한다는 것, 이런 복잡한 생각은 당신에게서 버스 타는 곳이 어디인지를 알게 된 후에야 들었습니다. 버스 한 번 타자고 먼 환전소를 찾아가 돈을, 그것도 코인으로 환전해야 할 상황입니다. 난처한 내 표정을 눈치 챈 당신이 내게 먼저 묻습니다.

차비가 필요합니까?

이런 민망한 질문에 쉽게 대답하기는 어렵습니다. 머뭇거리고 있는 동안, 당신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내게 내밀어줍니다. 그러고는 내가 고맙다는 말을 다 하기도 전에, 그러니까, 땡큐 뒤에 쏘 머치 하기도 전에 당신은 다른 곳으로 가버립니다. 나는 당신이 준 동전을 손에 꽉 쥐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백원짜리 동전을 손에 꽉 쥐고 문방구나 만화방으로 달려갈 때처럼, 손바닥에 땀이 고입니다.

이쯤 되어서는, 당신은 아마 내게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답니까? 내가 이런 편지를 받아야 하는 이유가?

맞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당신은 기억도 하지 못하는 어떤

한국 여자의 시간과 수고를 아껴주기 위해 동전 몇 개를 주었다는 이유로 지금 이 편지를 받고 계십니다. 게다가, 내 마음의 이야기까지 들어주어야 할 판입니다. 당신이 바란 일은 결코 아니었겠지요. 당신은 그저, 먼 곳에서 온, 혼자인 여행객이 당신의 나라, 당신의 도시를 잠깐이라도 좋은 마음으로 바라보다 돌아가기를 바랐을 뿐일 텐데요.

그 사소한 친절은 그러나 사소하게 흘러가지 않고 오래 따듯한 마음으로 남습니다. 생의 어떤 고비마다 문득문득 가파른 길에 서있다고 여길 때마다, 그래서 누군가를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때마다, 그러나 누구의 짐도 되고 싶지 않을 때, 나는 내가 오래전에 받았던 당신의 친절을 떠올립니다. 고작 동전 몇 개, 버스 한 번 탈 돈, 그러나 외면하지 않고 베풀어진 친절, 그런 게 정말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나는 당신이 준 동전 덕분에 싱가포르 시내를 구경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편안한 자리에 앉아 한가롭게 시내 한 바퀴를 돕니다. 그날의 햇살, 그날의 적당히 기분 좋던 나른함을 나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고양이를 떠나보내고 돌아오던 길, 나는 내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를 누구에게 할 수 있을지 생각했었습니다. 그날 그 시간의 내 마음을 함께해줄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어쩌면 아주 많이, 내 생각보다도 훨씬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그럴겁니다. 그러나 때로는, 아주 낯선 사람의 아주 사소한 친절만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 친절을 동전처럼 손에 꼭 쥐고, 땀을 흘려가며, 잊지 말아야지, 잊지 말아야지, 하고 싶은 겁니다.

적당한 거리의 타인에게 내 이야기를 하고, 그 누군가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친절이 내 마음을 녹이는 순간 말입니다. 슬픔이 동전처럼 손안에서 땀으로 흘러내려, 그게 위로라고 여겨지는 순간, 그런 것 말입니다.

그 낯선 사람이 당신이라면, 당신은 내게 ‘이제 그만해’라고 말해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너무 사랑하면, 그런 말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서나 그런 말을 들을 수 있을 것 같고, 듣고 싶습니다. 당신의 주머니에 아주 많은 동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 어디에서나 몰려드는 많은 여행객들에게 그 동전이 하나씩 하나씩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괜찮다는 마음, 이제 그만해도 된다는 위로, 당신은 의도치 않았을지 모르나, 그 마음을 담고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제 와서, 땡큐 뒤에 끝내 못 부쳤던 말, 쏘머치를 붙입니다. 감사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김인숙(金仁淑소설가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198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상실의 계절>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이수문학상, 대산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김인숙 소설가  bravo_lo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