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가족 형태의 예능 프로그램 봇물
“예능 프로그램은 많은 사람에게 가족과 가족 구성원의 변화한 트렌드와 정보를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가족으로의 변화를 유도하는 긍정적인 영향도 미치고 있다”
중견 배우 백일섭은 30여 년의 결혼생활 끝에 졸혼(卒婚)을 선언한 뒤 독립해 직접 청소도 하고 요리도 하며 혼자 생활한다(KBS <살림하는 남자들 2>). 마라토너 출신 방송인 이봉주는 강원 삼척시 처가에서 장인과 함께 옥신각신하며 시간을 보낸다(SBS <자기야>). 지난해 결혼한 배우 구혜선과 안재현은 강원 인제에서 달콤한 신혼생활과 신세대 부부의 문화를 보여준다(tvN <신혼일기>). 예능인 김구라는 이혼 뒤 함께 사는 아들 동현이와 때로는 격의 없는 친구처럼 때로는 근엄한 아버지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채널A <아빠 본색>). 가수 황혜영, 정치인 김경록 부부의 부모들은 함께 식사하며 나들이도 하고 요즘 사돈 관계의 문양을 드러낸다(MBN <사돈끼리>).
요즘 눈길을 끄는 예능 프로그램들이다. 최근 주요한 트렌드 중 하나가 바로 이전과 달라진 가족 형태를 보여주는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의 증가다. 미혼, 비혼, 졸혼 등으로 혼자 사는 1인 가구를 전면에 내세운 예능 프로그램에서부터 실제 결혼한 부부와 가상 부부, 이혼 가족, 처가와 함께 사는 사위, 혈연 가족은 아니지만 함께 살며 정을 나누는 유사 가족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드러내는 예능 프로그램이 속속 시청자와 만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살림과 육아를 전담하는 남편, 생계를 책임지는 아내 등 가족 구성원의 역할 변화를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도 봇물 터지듯 쏟아지며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연예인과 일반인이 출연해 다양한 가족 형태와 변모한 가족 구성원의 역할을 드러내는 예능 프로그램이 주요한 트렌드이자 인기 예능 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가족 형태가 등장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현실을 반영하기도 하고 현실 속의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쳐 변화와 트렌드를 선도해나가기도 한다. 최근 사회와 산업구조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가족의 형태에서부터 가족 구성원의 역할 역시 크게 변했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자신의 책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밝혔듯 가족은 능동적으로 변화한다. 가족 형태, 가족 구성원의 역할, 가족생활 스타일 등은 사회·경제적 상황 변화에 따라 크게 변모한다.
근래 들어 우리 사회는 취업난, 100세 시대, 빨라진 은퇴 나이, 고령 인구 급증 등으로 미혼, 이혼, 비혼, 졸혼이 크게 늘면서 1인 가구가 증가했고 가족 구성원의 역할도 이전과 다른 양태를 보이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은 이 같은 가족과 관련된 실태와 변화, 그리고 트렌드를 수용해 다양한 포맷으로 보여주고 있다.
급증하는 1인 가구의 생활, 문화 등을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은 최근 38세의 토니 안부터 47세의 박수홍, 50세의 김건모까지 혼자 사는 30~50대 남자 연예인들의 생활과 문화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SBS <미운 우리 새끼>). 김국진·강수지·김완선·김광규 등 이혼, 미혼 등의 이유로 혼자 사는 40~50대 연예인들이 여행하며 연애와 결혼,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불타는 청춘>(SBS), 중견 연기자 김용건부터 개그우먼 박나래까지 혼자 사는 연예인의 일상을 담은 <나 혼자 산다>(MBC), 최근 졸혼을 선언한 뒤 혼자 살며 요리와 빨래 등 살림살이를 배우고 있는 백일섭 등이 출연하는 <살림하는 남자들>(KBS)도 1인 가구의 생활과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혼자 밥 먹는 혼밥족들의 다양한 모습과 실태를 보여주는 <조용한 식사>(올리브TV), 혼자 술을 먹고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8시에 만나>(올리브TV), 혼자 여행하는 모습을 담은 <나 혼자 간다, 여행>(스카이 트래블),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편의점 활용법과 편의점 음식을 활용한 요리 만들기 등을 알려주는 <편의점을 털어라> (tvN) 등도 1인 가구를 다루고 있거나 다룬 대표적인 예능 프로그램이다.
이전과 다른 신세대 신혼부부의 변화된 결혼생활과 문화 그리고 연애 트렌드를 보여주는 프로그램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결혼한 구혜선·안재현 부부가 출연해 요리하는 남편, 가구 등을 만드는 아내 등 기성세대 부부와 사뭇 다른 신세대 부부의 생활과 문화를 보여준 <신혼일기>(tvN), 가상 신혼부부와 재혼 부부를 통해 요즘 부부의 결혼 풍속도를 드러내는 <우리 결혼했어요> (MBC), <최고의 사랑>(JTBC) 그리고 미혼 남녀 연예인의 전화 통화 데이트를 통해 요즘 신세대의 연애 트렌드를 살펴보는 <내 귀에 캔디>(tvN) 등이 이전과 다른 부부 생활과 연애, 결혼 풍속도를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인기가 높다.
또한 부모와 자식이 출연해 변화된 부모-자식 관계를 드러내는 예능 프로그램도 크게 늘었다. 김종국, 허경환 등 미혼 남자 연예인과 어머니가 함께 여행하며 어머니와 아들 관계를 살펴보는 <맘대로 가자>(TV조선), 김구라·이한위·이수근 등이 출연해 자녀들과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통해 변화한 부자 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아빠 본색>(채널A), 이승연 등 여자 연예인과 자녀와의 생활을 통해 변모한 모녀·모자 관계를 생각하게 해주는 <엄마가 뭐길래>(TV조선) 등이 전통적 관계와 다른 오늘날의 부모 자식 간 관계를 조명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이다.
이밖에 사위가 장인, 장모가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통해 달라진 사위와 처가와의 관계 또는 장인, 장모에 대한 사위의 생각을 전달하는 <자기야>(SBS), 부부의 부모들이 함께 여행하거나 생활하는 모습을 통해 변화된 사돈 관계를 보여주는 <사돈끼리>(MBN) 등은 과거 어렵게만 여겨졌던 처가와 사돈 관계가 요즘에는 어떻게 변했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이처럼 예능 프로그램들은 현실 속 변화된 가족의 형태와 가족 구성원의 역할, 부부생활, 결혼과 연애 풍속도, 자녀에 대한 인식을 재미로 잘 포장해 보여주고 있다. 이들 예능 프로그램은 많은 사람에게 가족과 가족 구성원의 변화한 트렌드와 정보를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가족으로의 변화를 유도하는 긍정적인 영향도 미치고 있다. 하지만 남성 우월주의, 가부장주의, 1인 가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심화 등 일부 예능 프로그램은 현실과 동떨어진 모습을 보여주거나 가족에 대한 왜곡된 시선과 편견을 조장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다행히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다양한 가족 형태와 가족 구성원 역할 변화를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이다. 새로운 가족 형태와 구성원 역할 변화에 대해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글 배국남 대중문화 평론가 knbae2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