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을 앞둔 김국민(56) 씨는 고민이 깊어졌다. 거들떠보지 않던 국민연금 안내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은퇴 후 월세를 받을 목적으로 준비한 도시형 생활주택에 공실이 생기면 어떡하나 걱정이 앞선다. 나름 은퇴 후를 준비한다고 퇴직연금 1억원을 마련해놓았고, 예전 직장부터 가입한 연금저축신탁에 8,000만원, 공제혜택을 더 보려고 가입한 IRP에는 4,000만원이 가입돼 있고,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와 은행 예금이 전부인데 이 정도면 충분한지, 부족하다면 얼마나 부족하고 그 자금은 어디서 마련해야 하는지 궁금해졌다.
노후 필요 자금은 얼마일까?
은퇴설계 상담을 받는 분들의 최대 관심사는 ‘노후에 필요한 자금이 얼마인가?’다. 그리고 내가 준비한 것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객관적인 평가를 받고 싶어 한다.
KB국민은행 연구소에서는 5가지 기준으로 나눠 유형별로 월 생활비를 예상한다. 기본형에서 표준형, 건강형, 여가형, 운용형으로 구분해 부부 기준 생활비가 최소 220만원에서 550만원까지 필요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것은 통계로 제시된 금액일 뿐이고 소비 성향, 금융자산이나 부동산 같은 자산 규모 등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은퇴 후 생활비는 은퇴 직전 생활비 규모의 70% 내지 80% 정도로 예측하는데, 매월 소비하는 생활비 수준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필수 생활비를 구분할 수 있고, 줄이거나 절약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 생활비 누수를 막을 수 있다. 소득이 있을 때는 규모가 크지 않다면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지만 은퇴 후에는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현재 생활비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부부간 지출에 대한 솔직한 대화가 필요하고, 나를 위해 쓰지 않더라도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지출의 종류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각종 세금과 공과금, 보험료, 부모님 용돈 등이 해당된다. 최근 부동산 가격이 급등해 재산세 규모가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 여부, 나아가 지역의료보험료가 오를 것에 대비하여 부동산 기준시가 상승과 관련하여 연간 이자, 배당소득 등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자나 깨나 자식 걱정
상담을 하다 보면 자녀의 결혼 비용을 예상하는 질문에 “이만큼 키워주었으면 지들이 알아서 해야지”, “우리 때는 단칸방에서 시작했는데…”, “1억원 정도는 줘야 하지 않나?” 이런 반응이 주를 이루지만 속내는 “전세는 어떻게든 마련해줘야 할 텐데… 집도 사줘야 하나?” 등 자녀 걱정이 대부분이다.
김국민 고객도 이제 막 취직한 28세 아들과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미취업 상태인 24세 딸을 두고 있다. 자녀들의 결혼 비용은 평균적으로 아들은 1억7,000만원, 딸은 1억원 정도 소요된다는 말씀드렸다. 현재 기준으로 전셋집 구하는 데 턱없이 부족할 수 있으나 신혼부부를 위한 각종 전세 제도를 이용하면 소요 자금의 80% 범위 내에서 5억원까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 결혼 전까지 스스로 목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조기 증여 방안을 고려해볼 것을 제안했다. 증여자산은 펀드 같은 투자자산으로 활용하거나 ISA 일임형 등 절세 상품에 가입해 자산을 늘려놓으면 결혼이나 주택 취득 시 자금 출처로 사용할 수 있다. 최근에는 부동산 관련 취득 자금에 대한 세무조사가 강화되는 추세이니 조기 증여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주거용 부동산 투자는 안전할까?
많은 이들이 은퇴 후에도 안정적으로 월세 소득이 들어오는 부동산에 관심이 높다. 하지만 막상 임대 사업을 시작하려면 수많은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내가 사려고 하는 원룸이나 오피스텔의 매입 가격이 적절한지, 임차인은 어떨지, 건물 관리와 보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원하는 가격에 팔 수 있는지, 소득 신고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걱정거리가 한둘이 아니다.
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에서 부동산의 시세와 대출 가능 금액 등 매물 정보를 비교적 쉽게 살펴볼 수 있지만 소규모 오피스텔이나 빌라, 원룸 관련 정보를 꼼꼼하게 알아보려면 직접 발품을 팔아야 할 때가 많다. 신문 광고에 자주 나오는 부동산, 분양형 호텔이나 외국인 전용 레지던스 오피스텔과 같이 유행을 많이 타는 부동산은 특히 주의해야 한다.
무엇보다 주 수요층의 주거 형태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최근 젊은 직장인 사이에서 도심 외곽 집에서 출퇴근하기보다는 회사 인근 호텔에서(3성급) 한 달 숙박료 66만원 정도의 가격으로 출퇴근 시간을 아끼고 교통비를 절약하면서 주거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우가 있다. 물론 외국인 관광객 격감에 따른 호텔 측의 자구적인 상황이 반영된 것이지만, 주거용 부동산에 투자하는 은퇴 세대는 주 수요층의 니즈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공실 등 문제에 대응할 수 있다.
내 연금으로 충분할까?
은퇴를 앞두고서야 내 퇴직금이 얼마인지 확인하는 직장인이 많다. 특히 DC로 운용하는 퇴직연금 가입자를 보면 개인적 성향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안전자산 위주로 운용한 경우와 적절한 투자자산으로 운용한 결과가 큰 차이를 보인다.
연금은 장기 투자가 가능하고 국내 주식형뿐 아니라 해외 주식형 등 다양한 자산을 편입할 수 있어 수익률을 제고할 수 있다. 물론 시장의 변동 상황에 따라 수익률 부침이야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투자 기간이 장기간이기 때문에 충분히 변동성을 상쇄할 수 있다. 참고로 지난 10년간 주요국 지수 흐름을 보면 우리나라 코스피 지수는 60%, 일본 니케이 지수는 172%, 미국 S&P500 지수는 194%, 나스닥 지수는 무려 400% 상승했고, 상대적으로 부진한 유로스탁50 지수는 21% 상승, 홍콩H 지수는 -6%에 그쳤다. 자산 배분과 지역 배분을 통해 수익을 충분히 올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김국민 고객의 경우 퇴직연금 DC는 옮길 수 없다면 채권으로만 투자하는 연금신탁은 연금저축펀드로 전환할 수 있다. 적극적으로 투자를 원하면 고려해볼 만한 옵션이다. 많은 직장인이 연금저축을 소득공제 받는 데만 관심을 두는데 최대 1,800만원까지 가입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잘 활용하면 은퇴자산을 늘릴 수 있다.
은퇴 후에 받는 연금에 따라 세금도 다양한데, 국민연금은 종합과세, 퇴직금으로 받은 IRP는 퇴직소득세, 소득공제를 받은 연금저축은 연간 1,200만원까지는 연금소득세, 초과할 때는 종합소득으로 합산된다. 김국민 고객은 은퇴 전까지 연금저축과 IRP에 1,800만원을 5년 동안 납입하면 원금만 9,000만원이 늘어나고 소득공제를 받지 않은 원금은 과세되지 않을 뿐 아니라 운용 수익은 일반 과세가 아니라 추후 연금소득세로 5.5~3.3% 저율 과세되므로 실질적인 절세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연금 수령 기간에 2.5% 정도로 운용한다고 해도 3억원을 20년 동안 나눠 받으면 180만원 정도의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확보하면서 국민연금과 합산할 경우 300만원 이상의 연금을 수령할 수 있게 된다.
누구나 꿈꾸는 멋진 은퇴
“일하지 않으면서 받을 수 있는 시스템 소득을 마련해야 한다.” 얼핏 들어서는 불로소득을 의미하는 말 같지만, 실제로는 원하는 은퇴 생활을 보장하는 다양한 은퇴 자산을 의미한다. 고가의 아파트만 있는 고소득자와 고가는 아니지만 자기 집과 연금 및 금융자산이 있는 은퇴자 중 누가 더 행복할까? 집을 팔면 해결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자산의 쏠림은 노후 생활을 압박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은퇴 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제일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그래야 내게 필요한 자금 규모를 알 수 있고, 더 모아야 할지 아닌지 알 수 있다. 그것을 모르니까 막연히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고 조바심을 내고 욕심을 내는 것이다.” 어느 강연에서 나온 말이다. 지금 기대여명은 남자의 경우 82세다. 은퇴를 앞둔 시점은 보통 60세다. 10년 지나면 기대 여명은 분명 늘어날 것이다. 장수 가능성이 무척 높아지고 있다. 나를 위한 준비에 더 많은 관심을 두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