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오후
공영방송 아침 프로그램에서 ‘100세 시대를 준비하는 일자리’가 방송 된 후 많은 분들이 상담센터에 찾아왔다. 교육과 상담, 사회공헌형 일자리 창출을 포함한 서울시 50+지원정책은 50세부터 64세의 연령대를 대상으로 하지만 찾아온 분들의 나이는 40대부터 70대까지 폭넓었다. 중장년에서 노년까지 일을 하고자 하는 열망이 얼마나 큰 지를 보여주는 현상이다.
일이라는 말 속에는 일자리, 일거리, 소일거리, 사회공헌, 재능기부, 자원봉사가 두루 포함이 되지만 퇴직한 후에도 직업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녹아있다. 혹시 아침 방송을 보자마자 달려온 분들이 원하는 것은 일자리뿐이었을까.
새로운 일을 찾으려면 그동안 살아온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자원이 무엇인지 탐색해야 한다. 그들이 그리는 인생곡선에는 수많은 골짜기와 광야가 보이고 불확실한 미래가 한 개의 선으로 이어진다. 그 선이 급격히 내리막을 그리거나 점선으로 표시되기도 하고, 가파른 오르막을 지나 완만한 내리막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인생 2막에서는 일뿐 아니라 재무, 사회공헌, 가족, 사회적관계, 여가, 건강 영역에서 비중과 속도의 재조정을 예고한다. 인생 후반기를 맞이하는 분들은 대체로 수동적인 순응의 양상을 보이지만 이미 살아온 여정 속에 자원이 광맥처럼 숨어있으므로 그것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선택과 집중을 하는 이들에게는 보람 있는 기회가 찾아오기도 한다.
남다른 용기와 변화의 의지
그런 의미에서 상담센터를 오는 분들은 남다른 용기와 변화의 의지가 있는 분들이다. 노후에 안정된 생활이 가능하지만 퇴직 후 사회에 기여하며 일하는 소일거리가 없을까 찾는 연금생활자들과 장기간 해외에서 일하며 살다가 역이민 온 분들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30대의 청년들도 심심치 않게 찾아와서 일과 관계에 대한 인생재설계 상담을 요청하는 것을 보면 인생설계란 중장년 이상에게만 해당되지 않고 전 생애에 걸쳐 필요한 과제임을 알 수 있다.
퇴직예정자들을 위한 집단상담에서 인생을 무엇으로 상징할 수 있는가 물었다. 여러 가지 대답 중에 ‘인생은 생방송’이라 이미 방영된 내용을 돌이킬 수 없다고 하는 분이 있었다. 인생이 생방송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데 생방송이라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긴장감과 지나가는 것에 대한 회한이나 체념을 동시에 내포한다. 인생이 녹화하고 편집하여 아무 때나 다시보기를 할 수 있는 재방송이 아니지만 매순간 의미와 가치를 더할 수 있다.
살다 보면 통제 불가능한 일과 통제 가능한 일이 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통제 가능한 일에 집중하는 것뿐이다. 과거를 바꿀 수 없지만 지나간 일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고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기억 속의 이야기는 대부분 그 당시의 감정과 해석에 의해 편집되고, 그 기억에서 비롯된 신념이나 가치관들은 현재의 생각과 행동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과거는 끊임없이 발목을 붙잡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부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결단해야 한다.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대본은 본인만이 바꿔 쓸 수 있다. 과거에 대한 수용과 긍정적인 의미부여, 그 안에 있는 자신의 자원을 찾아내는 통찰력을 갖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시각이 열린다.
인생설계
일반적으로 인생설계는 1:1 상담과 코칭을 통해서 하거나 그룹으로 진행하며 기존의 일방적인 강의 아니라 직접 체험하며 참여하는 방식을 택한다. 인생설계의 의미를 나누고, 나는 누구인가 답을 찾아 정체성을 확장하고, 인생의 목적과 사명을 체계화하고, 인생 전반에 대한 시간 관리와 계획,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이루어가는 지도, 개인과 공동체의 상호관계 속에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인생설계도를 만든다. 물론 인생설계도는 얼마든지 수정과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며 한 장의 설계도를 만들어가는 동안 깊이 있는 질문을 던져서 통찰력을 일깨운다.
인생설계를 통해 삶에 대한 자신감, 자기인식, 자기효능감이 증가하면 담대하게 지나간 이야기에 대한 의미와 해석을 새롭게 하고 본인이 설계하는 새로운 미래에 집중할 수 있다. 외부에서 강요한 규칙에 따라 살아온 삶은 전편으로 충분하다. 남은 후편의 삶에서 내가 작가와 주인공의 역할을 선택할 수 있다.
100세 시대에 나의 인생시계는 몇 시쯤일까. 오전 시간이 지나갔다 해도 점심식사 후에 차 한 잔을 마시며 맞이하는 인생의 오후는 길고도 눈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