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토리가 지난해 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생후 2개월일 때 만나 열 살이 훌쩍 넘으면서 “개 나이가 사람 나이의 7배라지... ” 마음 깊은 곳의 불안을 애써 눌러두고 있었는데,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이다.

 

 

갑자기 밤새도록 기침을 하고 난 2년여 전 어느 날, 13살 말티즈 종 토리는 심장병 진단을 받았다. 12시간마다 꼬박 강심제와 이뇨제, 보조영양제로 잘 버티는 듯했지만, 결국 15살을 넘기지 못했다. 토하는 증세로 들른 단골 동물병원에서 검사용 주사바늘을 찌르는 순간 토리의 심장이 멎었고 CPR(심폐소생술)로도 돌아오지 않았다.

부랴부랴 동물장례업체를 알아보고 그날 하루는 집에 데려와 재웠다. 늘 편안하게 늘어져 있던 마약방석 속의 토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아주 자연스러워 보였지만 차가워진 체온과 굳어져가는 몸체가 이제 우리 개가 정말로 이승을 떠났음을 깨닫게 했다.

 

사람 못지않은 반려동물 장례식

'반려동물 장례' 라고 검색해서 나온 십여 곳 중에서 일산 시 외곽에 있는 업체를 택한 것은 '해피엔딩'이라는 상호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몇 시간 만에 토리는 뜨거운 불길 속에서 한줌의 재가 된 채 옥수수 재질의 조그맣고 하얀 항아리에 담겨졌다. 불과 며칠 전까지도 흔들어대던 토실한 엉덩이와 꼬리의 살랑거림이 생생한데... 믿어지지 않게 변한 토리를 데리고 나온 우리 가족은 모두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반려동물 장례식 중 오동나무함에 입관된 반려견 토리 / 장례식장 한 켠의 추모메시지들

 

토리가 떠난 지 시간이 꽤 흘렀지만 아직 많이 허전하다. 15년 가까이 반복해오던 현관 포옹 세리모니가 사라진 것이 토리의 부재를 매번 실감케 한다.

남편과 나, 딸 모두 여전히 씩씩하게 지내지만 각자 핸드폰 속의 토리 사진들은 그대로다. TV에서 강아지용 우유 광고가 나오면 ‘저거 사주면 잘 먹었을까?’ 생각해본다. 길을 걷다 산책중인 개와 주인을 만나면 유심히 돌아보게 된다. 잘해주지 못한 것들이 떠오를 때면 눈물도 ‘툭’ 흘리게 된다.

 

반려동물 천만 시대의 단면, 펫로스 증후군

최근 우리나라에도 펫로스 증후군(Petloss-syndrome: 반려동물과의 사별로 인해 우울감, 상실감을 경험하는 것)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2000년 전후로 국내에 펫문화가 확산되었는데 시기적으로 이 반려동물들의 수명이 다하는 정도의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반려동물 천만시대에 관련 시장이 2조가 넘는다고도 한다.

나도 이제 이용객이 되고 말았지만 동물 장례업체들도 많이 늘었다. (홈페이지에 나온 그대로의 서비스가 아니어서 실망한 점이 있지만 그 얘기는 생략한다.)

언젠가 동물장례식에 다녀온 친구가 들려준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동생이 키우던 슈나우저의 장례식에 가게 됐는데 동물장례식장에 개, 고양이에 이어 이구아나 상가가 차려졌더라. “이제 별이 아가의 염을 마쳤습니다.” 까만 옷을 입은 장례사들의 모습이 사람 장례식 못지않게 진지했는데 장례사에게 안겨 있는 이구아나의 꼬리가 길게 나온 걸 보니 피식 웃음이 나더라’ 면서 그 상황을 어찌나 생생하게 묘사하던지, 같이 듣던 사람들 모두 웃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 내게도 멀지 않아 올 일이로구나.’ 하는 불안감을 품은 웃음이었다.

 

우리 집은 다시 반려동물을 키우게 될까?

집에는 아직 토리의 흔적이 많이 남았다. 집, 방석, 계단, 영양제, 샴푸, 이발기 등을 어떻게 처분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남편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이제 다른 아이 데려오면 써야지” 라고 말한다. “뭐? 벌써 다른 애를 들인다고? 우리 개는 아직 토리뿐이야. 죽은 개 머리맡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던 남자 맞아? ”

 

나는 버럭 하며 우리 집 개는 토리뿐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나도 몽글몽글 토실한 엉덩이와 따뜻한 체온을 가진 누군가가 그립다. 때로 사람보다 더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 어찌 보면 그냥 안고 예뻐하기를 주로 했던 나보다 산책도 목욕도 이발도 배설물 치우기도 훨씬 더 많이 해준 성실한 주인이었던 남편이기에 헤어짐에 대한 미련이 덜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이런 상황을 주변에 얘기했더니 ‘사이가 좋았던 부부들이 사별하면 더 일찍 재혼을 한다’ 면서 반려동물로 인한 슬픔은 또 다른 반려동물을 맞음으로써 없어질 수 있다고 위로를 해주었다.

 

 영원한 우리집 멍뭉이 1호 토리

 

늙은 개와 같이 늙어가기, 위로 VS 상실

우리 토리는 15살 고비를 넘지 못했지만 요즘 동물들은 20년 넘게 장수하기도 한다. 지금 누군가를 맞이하게 된다면, 50+ 초중반인 우리 부부는 70이 넘을 때까지 그 생명체를 책임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고희를 넘긴 나이에 반려동물과의 이별을 겪는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들지 않을까 걱정이 들기도 한다.

아직은 떠나간 우리 개를 조금 더 그리워하며 지낼 것이지만 앞으로 어떤 인연이 찾아올지 모를 일이다. 유기견이라도 한 마리 데려오면 어떨까 싶기도 하고 50+캠퍼스의 ‘펫시터 도전하기’ 프로그램에도 눈길이 간다. 이런 생각들이 맴돈다는 것 자체가 인연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인 걸까.

그럴 때가 오더라도 우리 토리가 너무 서운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집의 멍뭉이 1호는 영원히 토리이니까. 토리야. 그동안 고마웠다. 아프지 말고 잘 쉬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