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다녀온 결혼식에서 받은 감동과 느낌이 아직까지 남습니다. 친구 결혼식에서도 안 해본 혼인 축가를 함께 봉사하는 동역자 자녀 결혼식에서 불렀습니다. 처음으로 부른 혼인 축가인데다 자녀 결혼식에 아버지 축가단으로 초대를 받았으니 얼마나 감동적인가요. 가수나 친구들이 아닌 아버지가, 아버지 친구들과 함께 혼인 축하 노래를 불러달라는 자녀는 보기 드뭅니다. 주례사를 들어보니 자녀는 아버지를 닮고 싶었다네요.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아내를 사랑하며 자녀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풀며 보호하는 자신의 아버지. 아버지가 만든 가정처럼 자신도 새로운 가정을 만든 첫날, 첫발을 떼기 전에 아버지가 만든 가정의 모습을 자신도 가지겠다는 주요한 의식을 치른 셈입니다.
다른 소식 하나는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배우자가 저지른 중대한 범죄 행위로 가정이 해체됐다는데. 짧은 소식 내용으로 다 알 수는 없지만 또 하나의 가정이 무너졌다는 것이 마음을 우울하게 합니다.
15~49세 기혼여성(1만1천207명)을 대상으로 이혼에 대한 수용성을 조사해 발표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8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 실태조사'(2019. 4. 22, 연합뉴스)를 보면, 기혼여성 10명 중 7명 이상이 부부 사이의 갈등을 풀 수 없으면 헤어지는 게 낫다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매일 전해지는 것이 가정해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가정의 존재와 가치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또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야구에서 타자는 진루하기 위해서 먼저 타석에 서야합니다. 타석에서 타자는 다양한 모습의 결과를 보이는데, 안타를 치고 진루를 하거나 홈런을 쳐 열광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경기에서 지고 있는 팀은 타자가 나올 때마다 홈런 한방에 기대를 겁니다. 하지만 홈런을 치고 싶다고 홈런이 되는 것은 아니죠. 많은 타자들이 헛스윙으로 기대를 무너뜨리고 뒤돌아섭니다. 볼을 치고 진루하는 타자도 있지만, 진루한다고 안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방 팀의 수비로 되돌아와야 하고, 파울로 되돌아옵니다. 홈런인줄 알고 환호하며 달렸다가 수비에 막혀 축 처진 어깨에 고개를 숙이고 돌아오기도 합니다.
타자가 처음 선 자리는 홈베이스입니다. 안타와 홈런으로 한 바퀴 돌아 다시 홈베이스를 밟으면 동료들은 모두 뛰쳐나와 환호합니다. 아웃이 되어 되돌아온 자리도 홈베이스입니다. 처진 어깨, 숙인 고개를 하고 들어오면 등을 두드리거나 헬멧을 툭 치며 만지기도 합니다. 괜찮다는 격려의 표시입니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음 타자와 경기에 주목합니다. 누구나 처음 선 자리와 다시 밟은 자리는 홈이며, 홈은 나갔다 들어오는 곳입니다. 홈은 안전한 곳으로, 동료가 있습니다. 홈에서 머물러 쉬다가 다음 타석에 들어가거나 계속 경기에 임합니다. 이전 타석의 실패를 가다듬고 새로 힘차게 야구 방망이를 휘두릅니다.
가정은 홈베이스가 되어야합니다. 세상에 나갔다가 들어와 충전이 되어 다시 나가는 곳이어야 합니다. 실패하고 두들겨 맞고, 넘어지고 깨어져 가정으로 들어옵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들도 딸도 매일 성공하며 잘 살아낼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하고, 불완전하기에 상처받고 힘들어하고 아파하고 웁니다. 그래서 기대고 치료받고 싸매져야 합니다. 아파할 때, 힘들어 할 때, 울고 싶을 때, 어디로 가야 할까요. 누가 나를 받아줄까요. 그곳은 가정입니다. 홈베이스인 가정은 되돌아오고 싶은 곳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힘을 내 세상으로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는 곳이어야 합니다.
가정은 변화와 자극에 민감하게 움직이는 살아있는 유기체입니다. 경기 중 팀 내에서 큰 변화는 동요를 일으킵니다. 자녀의 사춘기, 입시와 진학 및 유학, 취업으로 독립과 결혼은 자칫 홈베이스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또한 가장의 실직이나 조기 퇴직과 은퇴, 출산과 육아로 경력단절, 다시 사회활동으로 복귀도 큰 변화여서, 삶의 패턴과 가정의 변화를 일으키는 요인이 됩니다. 가정을 이루고 있는 구성원은 자신이 가족과 가정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항상 민감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누군가 안 좋은 영향을 준다고 여겨지는 경우 헬멧을 툭치는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가정 안에서는 모든 것이 용납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문화나 분위기 환경이 아이들을 밖으로 내 몰고,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로. 용납되지 않은 분위기가 가정해체로 이어집니다. 가족의 실수를 용서하고 받아들이고 같이 아파하며 가족의 기쁨은 내 기쁨으로 여기고 가족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셀 수 없이 많은 실수와 아픔을 준 나를 말없이 받아준 부모님의 용납이 언제나 달려가고 싶은 집이 되게 했습니다. 사고치고 문제를 일으켜 호된 곤욕을 치르고 있었을 때도 한마디 책망을 하지 않은 부모와 내 형제는 안전한 가정임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말없이 지켜봐준 것은 ‘나도 아프다’는 무언의 표시였습니다. 다시 힘을 내 일어셨을 때 ‘그때 왜 그랬어.’ 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용납하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가족은 세상에 나가도록 새 힘이 되어 주고 등을 도닥여 주었습니다.
산비둘기 우는 소리 들리고 아카시아 향이 코끝을 자극하는 방안에서 글을 쓰고 있노라니 참으로 마음이 포근하고 행복합니다. 며칠 동안 앓았던 봄 감기가 사라진듯합니다. 맛있는 요리거리를 준비해 온다고 함께 저녁먹자는 둘째 녀석의 메시지가 더 행복하게 만듭니다. 감기를 떨쳐내고 내일은 활기차게 홈베이스에서 일터로 나가야겠습니다.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행복한 가족들은 행복함에 있어서 서로 닮았다. 하지만 불행한 가족들은 각자 그들만의 방식에서 불행하다.”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