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가고 봄도 가겠지
다가오는 여름도 갈 거야
비록 겨울과 봄이 지나가고,
여름날이 시들고, 그리고 한 해가 가도,
그래도 내가 약속한대로 나는 기다릴 거야
노르웨이 가곡인 ‘솔베이지의 노래’ 가사 중 일부이다. 아리랑을 연상시키는 애잔한 곡조를 듣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페르귄트와 솔베이지의 길고 애달픈 사랑의 사연이 담긴 노래는 더딘 사랑과 더딘 행복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솔베이지의 노래’는 노르웨이 작곡가 그리그(Edvard Hagerup Grieg 1843~1907)의 원곡<페르귄트: PeerGynt>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곡으로 서정적이고 우울한 선율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솔베이지의 노래'에 얽힌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가난한 청춘의 사랑에서 시작된다. 노르웨이 어느 산간 마을에 가난한 농부 페르귄트와 아름다운 소녀 솔베이지가 살고 있었다. 둘은 사랑했고 결혼을 약속했다. 가난한 농부였던 페르귄트는 돈을 벌기 위해 외국으로 간다. 갖은 고생 끝에 돈을 모아 10여 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다가 국경에서 산적을 만난다. 돈을 다 빼앗기고 간신히 살아난 페르귄트는 그런 모습으로 차마 꿈에도 그리던 솔베이지를 찾아 볼 낯이 없었다. 다시 이국땅을 전전하며 걸인으로 살다가 늙고 병들어 고향집으로 돌아온다. 지친 몸을 이끌고 겨우 어머니가 살던 오두막집에 도착하니 어머니 대신 백발이 다된 솔베이지가 페르귄트를 맞이한다. 병들어 허약해진 페르귄트는 그날 밤 솔베이지의 무릎에 머리를 누이고 눈을 감는다. 차갑게 식어가는 페르귄트의 몸을 끌어안은 솔베이지는 남편을 위해 마지막 노래 '솔베이지의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그녀도 페르귄트를 따라 눈물 없는 곳 하늘나라로 떠나간다.
노르웨이 가수 시셀 슈샤바가 부르는 ‘솔베이지의 노래’를 들으며 사랑에 대해 생각해본다. 사랑은 오랜 기다림 끝에 오는 열매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왜 이다지도 슬플까. 슬플수록 감동이 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쉽게 이루어진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한다. 조급한 사랑은 쉽게 깨질 수 있다. 젊은 시절의 사랑은 낭만적이고 감각적인 사랑이지만 50+세대가 되어 맞이하는 사랑은 젊은 시절의 사랑과는 색깔이 다르기에 ‘솔베이지의 노래’는 더욱 감동으로 다가온다.
더딘 사랑 더딘 행복 : 달과 지구의 사랑 이야기
사람들이 달을 보며 연인과의 사랑을 연상하는 것은 창백한 달빛의 애잔함 때문이기도 하고 은은하게 비치는 달빛으로 인해 연인들의 마음이 들뜨기 때문일 것이다. 달은 지구에게 한 달에 한 번 윙크를 하고, 지구는 한 달에 한 번씩 사랑의 열병을 앓는다. 둥근 보름달의 환한 표정에 행복해 하기도 하고, 반쯤 자신을 가린 반달의 내숭에 초조해하기도 하며, 새벽에 동쪽 지평선에서 둥근 눈썹 모양으로 떠올라 뭔가 모르게 처량해 보이는 그믐달의 애처로움을 보며 덩달아 울적해하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해질 무렵 서쪽 하늘에서 떠올라 가녀린 여인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초승달의 청초한 자태를 바라보며 애간장을 태우기도 하고 몸이 달아 어쩔 줄 모른다. 이렇게 변신을 거듭하는 달의 모습은 지구를 설레게 하기도 하고 감정을 고조시키기도 한다. 달빛은 지구를 어루만지는 달의 은근한 손길이고, 달그림자는 지구를 포옹하는 달의 몸짓이다. 달을 향한 주체할 수 없는 애정으로 인해 지구는 밀물과 썰물로 자신의 격정적인 사랑의 에너지를 분출한다. 인간도 달과 지구의 사랑에 장단을 맞춘다. 여자들은 한 달에 한 번 월경(月經)을 하며 달의 주기에 맞춰 생명을 잉태할 준비를 하고, 달과 지구는 한 달에 걸친 사랑의 주기를 반복하며 영원토록 행복을 이어간다. 더디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사랑은 이처럼 더딘 것을 행복으로 여기며 즐길 줄 아는 한결같은 마음에서 온다.
시인 이정록은 <더딘 사랑>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대여, 모든 게 순간이었다고 말하지 마라
달은 윙크 한 번 하는데 한 달이나 걸린다.’
호기심과 불타는 욕망으로 눈을 반짝이며 가슴 설레는 때만이 사랑은 아니다. 그 기간을 지나 그 다음에 시작되는 이해와 공감도 사랑이다. 그것이 더욱 진정한 사랑이고 그로부터 행복이 잉태된다. 50+세대는 이제 이런 더딘 사랑과 더딘 행복에 눈을 뜰 때가 되었다. 50+의 부부관계는 이런 관계를 지향하고 있다. ‘솔베이지의 노래’에서 사랑은 죽어가면서 완성된다. 하늘나라에서 행복한 부부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말이다. 진정한 사랑은 더디 온다. 애태우다가 다가오는 사랑은 더욱 애절하다.
하지만 늙어 죽을 때가 되어서야 완성되는 사랑이라면 누가 그렇게 더딘 사랑을 기다릴 수 있을까? 더딘 사랑은 결과로 말하지 않고 과정으로 말한다. 기다림의 과정 자체가 사랑이다. 페르귄트는 아내를 위한 사랑으로 외로움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타향살이의 설움을 견딘 것이고, 솔베이지 또한 남편을 만나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 거라는 기대로 변심하지 않고 약속을 지킨 것이다. 달이 잠시 온 몸을 감추는 월삭(月朔)을 맞이하여서도 지구는 결코 달에 대한 사랑을 배신하지 않는다. 밀물과 썰물로 달에 대한 간절한 사랑의 마음을 변함없이 전한다.
사랑과 행복 - 가을은 두 번째 봄, 50+는 두 번째 청춘
더딘 사랑은 그만큼이나 더딘 행복을 예고한다. 인생을 고해(苦海)라고도 하고 생존을 위한 전쟁터라고도 한다. 자본주의와 물질주의가 팽배하고 치열한 생존경쟁으로 미래가 불확실해진 시대를 맞이하여 행복과 불행의 문제는 이제 인류 모두의 관심사가 되었다. 사랑 없이 행복을 논할 수는 없다. 50+세대는 사랑과 행복을 어떻게 조절하며 살아야 할까.
<이방인>을 쓴 소설가 알베르 까뮈가 말했던가. 가을은 두 번째 봄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50+세대는 두 번째 청춘을 맞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청춘이 시작되는 마음으로 사랑과 행복에 대해 다시 생각할 때가 되었다. 사랑은 젊은 청춘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50+세대의 배우자들은 어떻게 사랑을 일궈가야 할까. 사랑은 육체적 쾌락과 낭만적 관계를 즐기는 단계에서 더 나아가 상대방을 진심으로 배려하고 인간적인 측은함과 연민의 감정을 지닐 때 한 단계 더 진전될 수 있다.
사람들은 사랑보다 더 쉬운 일은 없다고 여기지만 사랑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행복은 사람들과의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 불현듯 스쳐 지나가듯이 느껴지는 평온하고 기쁜 감정이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행복의 크기는 똑같다. 어떤 사람은 돈이 많은 대신 가족과의 불화나 건강이 행복을 갉아먹고, 또 어떤 사람은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업과 지위를 가졌으면서도 그 내면은 끝없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주위 사람들을 혼란에 빠트린다.
50+세대는 인생의 역정을 통해서 사랑과 행복의 걸림돌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50+세대가 부부관계에서 사랑의 즐거움과 그로 인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배우자 각자가 자기 자신과 상대방의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주의를 집중해서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어떤 감정과 꿈을 지니고 있는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와 더불어 부부관계에서 배우자들이 서로 노력하여 ‘함께 있는 것’의 의미를 되찾고 유대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바야흐로 새로운 청춘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단번에 쉽게 되지 않는다. 두 번째 맞이하는 새로운 청춘의 길은 길고도 먼 여정이다. 어찌 꽃길만 있겠는가. 아내는 갱년기를 지나 남성호르몬이 나오기 시작하여 공격적인 말투로 변해가고 남편은 은퇴한 이후 여성호르몬이 나오기 시작하여 우울해지기 시작할 때이다. 사랑의 길은 늘 그렇듯이 어긋나기 십상이며 미로를 헤매고 갈 곳 몰라 방황하기 일쑤이다. 그러나 젊은 시절과는 달리 그 미로는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 있고, 그 방황은 너무나 익숙한 방황이다. 고통스럽게 보이는 미로와 방황조차도 사랑과 행복으로 가는 과정의 일부이다. 그래서 더딘 사랑이고 더딘 행복이다. 50+세대는 이제 더딘 사랑과 더딘 행복의 의미를 이해하고 즐길 때가 된 것이다. 부부관계에서 사랑과 행복이 성숙해지고 완성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