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4, 다섯 글자로 본 취미

일상과 접목한 캘리그라피의 매력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우리 반에서 가장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을 뽑기로 했다. 친구들이 추천해서 결선에서 둘이 맞붙게 되었는데 그 선수 중 한 명이 필자였다. 우리는 작은 몽당연필을 잘 깎아서 친구들이 빙 둘러서서 보고 있는 가운데 공책에 글씨를 써내려갔다. 누구 글씨가 더 멋진지 갑론을박했지만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 사건이 계기가 되어 글씨를 정성스럽게 쓰는 습관이 생겼다. 일기나 편지를 쓸 때도 줄을 맞추고 위아래 배치를 신경 쓴다. 그림도 그려 넣는다. 그렇게 하면 편지도 작품처럼 만들 수 있다. 글씨는 그림과 비슷하다.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은 필체도 좋다. 이렇게 글씨를 재미있게 쓰는 게 일상화되었는데 어느 날 서점에서 캘리그라피 작품을 보게 되었다. 짧은 시구나 명언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고 액자에 넣었는데 아주 멋졌다. 도자기에도 넣었고 각종 소품에도 들어 있었다. 특별한 작품으로 탄생한 글씨를 보면서 매료되었다.

 

 

 

 

 

처음엔 선긋기부터 배운다

인터넷으로 캘리그라피 교육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보던 중 집 근처 지하철역 아래 큰 북카페를 지나게 되었다. 요즘 북카페에서는 인문학 강좌에서부터 독서토론, 자수 등 다양한 강좌가 이뤄지고 있다. 그 중 캘리그라피 강좌도 있다. 금액이 한 달에 3만원이라 부담이 없고 일주일에 한 번 평일 저녁에 잠깐씩 배우는 프로 그램이다. 필자는 조금 망설였다. 그 정도 시간투자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이왕 공부하려면 자격증도 따고 싶은데 북카페에서는 자격증까지의 과정이 없었다. 그래서 찾아낸 곳이 홍대 근처 전문디자인 학원이었다. 최소 3개월 과정이고 수강료는 재료비를 포함해 월 40만원이 넘어 좀 비싼 편이었다.

그러나 캘리그라피 민간자격증 발급기관이었고 무엇보다 재대로 배울 수 있는 전문학원이라 등록했다. 일요반을 신청했는데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꼬박 글씨를 썼다. 글씨를 쓰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무아지경이 된다. 다섯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몰입할 수 있다. 처음엔 선긋기부터 배운다. 수평·수직선을 긋고 자유 곡선을 그으면서 붓의 움직임과 그 끝에서 나오는 글씨의 형상을 체득한다. 어느 정도 기능이 익혀진 후에는 단순한 글씨 연습을 하고 그 다음으로는 문장을 쓰게 된다. 문장의 의미를 잘 살리고 자기만의 해석으로 글씨의 모양, 크기, 배열을 몇 번 연습하고 난 후 화선지에 쓰는 것이다. 문장을 쓰기 전에 상상을 해본다. 이 단계는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같은 문장이라도 다른 모양으로 쓴다.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보는 것도 재미있다. 글씨가 어느 정도 되면 인장을 파는 것도 배우고 도자기에다 글씨를 넣는 법도 배운다. 이 과정을 다 마친 후에 비로소 자격증 시험에 도전할 수 있다. 시험엔 두 가지 문장을 준다. 그 것을 화선지에다 자기 나름대로 잘 표현해야 한다.

 

 

부드럽고 자유로운 움직임에 매료

캘리그라피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처음 연습할 때는 잘 쓴 캘리그라피를 복사하듯 따라 써본다. 여러 글씨체를 가리지 않고 다 써본다. 그렇게 쓰다 보면 원칙이 보이기 시작한다. 주요 단어는 다른 글씨 보다 더 크게 쓰고 색상이나 글씨체도 눈에 띄게 쓴다. 전체 글씨의 배치는 사진의 구도와 같아서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여백이다. 이렇게 좋은 글씨를 따라 쓰다가 자기만의 글씨를 특화하면 나만의 캘리그라피 작품이 된다. 캘리그라피는 그 내용이 나 용지에 따라서 필기도구를 잘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볼펜이나 사인펜 등 딱딱한 재질의 펜에 익숙해진 시니어에게 붓은 좀 어색하다. 그러나 연습을 지속하다 보면 부드럽고 자유로운 움직임에 매료된다. 마음이 흐르는 대로 움직여주고 강약이 감정을 표현해준다. 요즘은 상의 안주머니에 만년필을 꽂고 다닌다. 사인이 필요할 때 만년필을 꺼내면 주위 사람들이 특별한 시선을 보낸다.

 

 

언제 어디서나 작품활동이 가능하다

캘리그라피 자격증을 따고 나서 글씨를 쓰는데 더 정성을 들이게 되었다. 작은 메모를 남길 때도 멋지게 쓰고 그림도 넣어둔다. 작은 메모지 한 장으로 신선한 즐거움을 줄 수 있다. 회의록을 쓸 때도 주요한 부분은 특별한 모양으로 글씨를 쓰고 여백에 작은 들국화 그림을 넣으면 보는 사람들이 작품이라 한다. 특히 손편지는 작품처럼 만든다. 아내는 필자의 손편지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도 한 다. 가끔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쓰고 그 시의 분위기에 맞는 그림을 그려 넣으면 시화전 작품이 된다.

 

결혼식 축의금 봉투 모서리에 멋진 꽃그림을 넣으면 특별한 기념품이 된다. 몇 년 전 부모님 팔순 때는 두 분에게 드리는 감사의 상장을 직접 만들었다. 감사의 글을 붓으로 쓰고 장정은 문구점에서 구입해서 그럴듯한 상장으로 만들었다. 그 상장을 받고 안방 탁자 위에 세워놓으셨다. 방명록을 준비해둔 전시회나 모임에 가면 모임 분위기에 맞는 그림과 글을 남긴다. 지인에게 액자 선물도 한다. 문구점에서 작은 액자를 사서 속지에 시 한 수 적으면 작품이 된다.

 

최근에는 활동하고 있는 시니어 커뮤니티에서 요청이 왔다.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좋아 시니어들에게 가성비 높은 식당을 찾아 ‘응원합니다’라는 액자를 만들 예정이라고 했다. 필자가 붓글씨로 써서 액자에 넣었다. 이렇게 캘리그라피를 일상과 접목하니 늘 작품활동을 하듯 즐겁다. 즐거우니 계속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은 도자기와 캘리그라피의 접목을 준비하고 있다. 직접 흙을 빚고 글과 그림을 넣으면 특별한 작품이 될 것 같다. 그 동안 작품화한 도자기와 일상의 작품들을 모아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여는 게 꿈이다. 캘리그라피를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언제 어디서나 작품활동이 가능하다는 것과 그 시간엔 잡념이 사라지고 필자만의 세계에 몰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손웅익 동년기자

 

 

 

 

 

‘몸결’ 한번 느껴보실래요?

 

“신기하네요. 선생님을, 제 몸이 기억하네요.”

지난겨울, 한 달간의 인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필자가 오랜만에 댄스스포츠(이하 댄츠) 수업에 나갔을 때, 한 여성 회원에게서 들은 말이다. 아~ 이런 짜릿한 말을 내 평생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자신의 취미가 3미(재미·흥미·의미)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는 질문은, 은퇴 후 취미활동을 고르는 이들이 많이 하는 질문이다. 이럴 때는 일단, 살아오면서 제일 재미있었던 종목을 회상해 선택하는 것이 답이다. 재미란 즐겁고, 짜 릿하고, 더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그 재미에 의해 더 알고 더 잘하고 싶은 흥미가 유발되면, 그것이 각자의 생활에 가치를 형성하며 의미가 된다. 그런데 필자에게 그 ‘즐겁고, 짜릿하고, 더 하고 싶은 것’이 생겼으니 바로 댄츠 되시겠다.

 

 

 

시작

필자가 댄츠를 만난 건, 같이 교직에서 퇴직한 친구에 의해서인데, 그가 필자를 꼬드긴 멘트는 딱 하나였다. “댄츠 여선생님이 너무 예뻐! 그냥 보고만 있어 도 수업 참가의 의미가 새록새록 느껴져!” 순간, 영화 <쉘 위 댄스>의 여선생 모습 이 떠올랐다. 갑자기 그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일본 영화가 미국에서 리메이크되었는데, 이번 한국판만은 내가 주인공이어야 한다고…. 그렇게 시작한 지 3년이 흐른 지금, 아직 이도 안 난 수준이지만 소개는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 감히 글을 써본다.

 

어디서, 어떻게?

동네 지역주민센터를 비롯한 거의 모든 지자체의 문화센터 및 체육관에는 댄츠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월 2만~3만원이면, 주 2회 2시간 수강이 가능하다. 워낙 저렴하니 일단 적성에 맞는지 위의 기관들에서 시작해보고, 적성에 맞으며 고수를 지향하려는 열정이 생긴다면 사설학원에서 개인수업을 받는 게 효율적이다.

 

준비는?

7만원 내외인 댄스화 하나면 족하다. 파티가 아니라 공부를 하는 것이기에 댄스복도 처음에는 따로 필요 없다. 다만 여성의 경우, 평상시에는 어디서도 못 입을 화려하고 과감한 옷을 입어볼 수 있는 기회이기에, 등록과 동시에 댄스복부터 장만하는데 그럴 경우 보통 20만원 내외부터 시작한다.

 

왜 댄스스포츠인가?

이젠 밝은 스포츠 과거, 어두운 무도장에서 숨어서 추던 춤이 이젠 밝은 ‘스포츠’로 올라왔다. 아직도 남녀의 신체적 접촉을 걱정하는 시각이 없지 않지만, 이제 그것에 흔들리지 않을 충분한 나이가 된 시니어들에게 오히려 적합한 종목이라고 할 수 있다. 늙어서 추한 사람은 젊었을 때도 추했던 사람이다!

열정과 우아함 흥겨운 중남미의 종목인 ‘차차차’에서 우아함의 극치인 유럽의 ‘왈츠’까지 자신의 성격이나 체력에 맞는 춤을 다양하게 선택하여 즐길 수 있다.

 

귀까지 즐거워

반향이 충분한 넓은 홀에서, 집에서 는 결코 들을 수 없는 큰 볼륨의 다양한 음악들에 맞춰 춤을 춘다. 음악이 좋아 댄츠를 배우러 나오는 회원들도 있을 정도다.

 

몸매와 체력까지 관리

처음 놀란 것은 여성 회원들의 몸매였다. 이른바 비만 여성들이 거의 없었다. 몸매를 드러내야만 하는 댄스복 때문이었다. 또한 댄츠의 기본자세는 ‘꼿꼿함’이다. 꾸부정한 노인의 자세로는 춤 자체가 안 나온다. 그러므로 몸을 세우는 기본체력훈련을 받아 자세와 체력이 좋아진다. 참고로, 파트너와의 간격은 주먹 하나 정도인데, 배 나온 남자는 그것을 지키지 못하기에 매우 인기가 없다. 눈 마주치기 전에 배부터 맞으면 참 곤란하기 때문이다.

 

거짓말 못하는 몸

댄츠동아리는 다른 종목의 동호회와는 차원이 다른 친밀감을 갖는다. 몸부터 친해지기 때문이다. 신입회원도 일단 서로 손부터 잡고 춤춘 후 통성명을 할 정도니 소위 ‘내숭’이 없다. 몸은 거짓말을 못하기에 더욱 그렇다.

 

춤과 음악에 한숨 없다

아무리 현실이 어렵고 우울하더라도, 즐거운 음악에 맞춰 춤에 집중하다 보면 저절로 밝아지고 명랑해진다.

 

적성에 맞는 이는?

음악이 없으면 춤을 못 춘다. 음악의 박자에 서로의 동작을 맞추어 같이 추는 것이 춤이다. 박자감각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아무리 몸치라 할지라도 노래방에서 18번을 완수하는 이는 누 구나 춤을 출 수 있다. 하지만 박치는 좀 어렵다. 즉 몸치는 치료 가능해도 박치는 치료 후 댄츠로 와야 한다.

 

어려운 점은?

라인, 방송, 재즈, 줌바 댄스는 파트너 없이 강사의 동작을 그냥 따라 한다. 그러나 댄츠는 일단 춤의 상대가 있고 더군다나 그 상대가 이성이다. 그러므로 ‘가해망상증’이 심하거나 자존심이 센 사람들은 피해를 주거나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아서 중도탈락하기 쉽다. 서로 배운다는 가벼운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부부가 함께?

일단 초보 때는 권하고 싶지 않다. 댄츠에 대한 이해의 폭이 좁은 시기에, 그 동안 아내에게서 못 보던 미소를 잘생긴 남자 파트너와의 춤에서 본다면 자괴감이 들게 된다. 또한 부부간에 수준차가 발생할 경우 ‘운전 가르치다 싸움’하는 경우를 맛보게 된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간 다음 부부가 함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여기까지 읽은 후, 선상크루즈의 파티에서 무도복을 입고 은발을 흩날리며 부드러운 선율에 맞춰 왈츠를 추는 자신의 모습이 상상된다면, 독자는 이미 댄츠를 배울 준비가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댄츠를 시작하던 시절 강사님이 가르쳐 주신 춤 세계의 용어가 생각난다. “이 세상에는 숨결, 살결, 바람결, 물결이 있지만, 댄서들은 ‘몸결’을 느낄 줄 알아야 해요!” 그래서 오늘도 필자는 그 몸 결을 찾아 댄스화를 챙기고 있다.

 

 

 

정원일 동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