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과 봉사활동 두 마리 토끼 잡은 강성호씨
“은퇴 후 삶 준비에 취미가 기반이 됐어요”
“여보, 나 이제 회사 그만두려고.” 정년을 2년도 남겨두지 않은 남편이 툭 내뱉은 말. ”뭐, 그래요 그럼.” 별일 아니라는 듯 아내의 대답이 돌아온다. 한가한 일요일, 햇살 가득한 거실에서 마치 식사 메뉴를 결정하는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내용은 사뭇 다르다. 이런 선택을 하는 가장과 아내는 얼마나 될까. 하지만 강성호(姜成鎬·61)씨는 그랬다. 결정은 신속했고, 주저함도 없었다.
평생을 국립대학교에서 전산직으로 근무했다. 컴퓨팅 환경이 도입되고 변화한 모든 과정을 바라 본 전산직 1세대인 셈이다. 그가 아름다운 은퇴를 꿈꾸기 시작한 것은 2010년부터. 정년이 2016년 12월까지였으니 6년을 앞두고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된 것이다.
“베이비부머들이 이제 곧 사회로 쏟아져 나와요. 1958년생, 1959년생이 정점에 있는 사람들이죠.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60년을 살고 나서 나머지 40년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이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어요. 저도 비슷한 세대인 만큼 이들 과 경쟁할 수밖에 없는데, 살아남기 위해선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준비를 시작하게 됐어요.”
은퇴 준비, 수많은 ‘경쟁자’ 고려해야 강씨는 은퇴 준비를 위해 먼저 원칙을 세웠다.
“우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고 생각했어요. 건강이 유지되어야 생활의 영위가 가능하니까요. 그리고 가능한 한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어요. 힘든 육체노동은 어려워질 테니까요. 연금 이외에 용돈 정도는 해결해야 하고, 봉사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살아가야 할 40년 중에 적어도 20년 정도는 남을 돕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선택한 일이 사진이다. 고2 때 아르바이트 한 돈을 모아 가장 먼저 한 일은 작은 하프 카메라 (35mm 필름을 절반씩만 사용하는 사진기)를 산 것 이다. 은퇴에 대한 원칙을 세우며 완성한 버킷리스트는 스마트폰 바탕으로 만들어 휴대폰을 켤 때마다 되새겼다. 그리고 주저 없이 명예퇴직을 결정했다. 준비가 됐으니 특별히 정년까지 기다려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준비 과정을 잘 알고 있던 아내도 흔쾌히 동의했다.
은퇴 후 그는 지역 문화센터 사진클럽에서 사진 이론에 대해 다시 공부했다. 물론 포털사이트 사진동호회 활동은 이전부터 하고 있었지만 다시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스톡사진 분야를 알게 됐고, 직접 조사하고 공부해서 회원들에게 강의까지 한 차례 했죠. 스톡사진의 개념은 그리 어렵지 않아요. 내 사진을 내 저장장치가 아닌 스톡사진 회사 서버에 저장할 뿐이에요. 내가 찍은 사진을 나만 볼 수 있는가, 타인도 볼 수 있는가의 차이죠. 다른 사람이 내 사진을 사용하려면 돈을 내야 하니 제겐 수익이 생기죠. 얼마나 좋아요. 몇몇 사람들은 거부감을 갖기도 하지만 관점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사진은 훌륭한 봉사 수단
2016년 7월 강씨는 대표적 스톡사진 기업인 셔터스톡의 작가가 됐다. 그는 셔터스톡에 주로 나뭇잎 사진을 게재한다. 강씨가 찍은 아름다운 나뭇잎 사진들은 인쇄물 바탕이나 홈페이지 제작을 위한 재료가 된다. 수익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작품활동에 대한 자기만족 정도는 된다”고 설명한다.
사진은 때론 봉사의 수단이 된다. 20년은 봉사하고 싶다던 그가 사진을 제2인생의 키워드로 선택한 이유 중 하나도 이 때문이다. 강씨는 사진봉사 동아리를 통해 정기적으로 촌부들의 장수 사진(영정사진)을 찍어준다. 사진으로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은 또 있다. 바로 미혼모 자녀들의 백 일 사진과 돌 사진 찍어 주기다.
“싱글맘 중 대부분은 저소득층이에요. 자녀들의 기념일이 다가와도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어주기가 쉽지 않죠. 후원자를 통해 스튜디오를 빌리고 의상과 장비를 준비해 아이들 사진을 찍어줍니다. 카메라 앞에서 활짝 웃는 아이들을 보면 그렇 게 예쁠 수가 없어요.”
사진 외에 그가 준비해온 봉사활동 수단은 우리말, 한국어다. 한글봉사단을 통해 한글이 서툰 노인들이나 외국인들에 우리말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다. 이를 위해 2013년 한국어 교사자격증 2급을 미리 따놨다. 꼬박 2년이 걸렸다. 또 우리말을 가르치기 위해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지난해 고려사이버대학교 실용외국어학과에 편입했다. 논리적이지 않은 듯하지만 그의 설명은 앞뒤가 맞는다.
“물론 은퇴 후 외국어 하나쯤은 배워둬야겠다고 생각했죠. 워낙 여행을 좋아하는 데 이곳 저곳 다니려면 중국어가 많은 도움이 되겠더라고요. 또 한국어를 잘 가르치려면 먼저 제가 언어를 배워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타국의 언어를 배워 본 경험 없이 외국인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는 것이 말이 되겠어요? 하나를 배우면 둘을 까먹는 수준이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웃음).”
준비가 되면 해외에 장기간 체류하면서 그곳 아이들에게 한국어와 사진을 가르치는 것이 그의 소망 중 하나다.
“주변에 보면 은퇴 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예요. ‘놀면서 결정 하면 된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러면 늦어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바탕으로 나머지 40년 동안 무엇을 할지 미리 결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돈을 버는 일이든 노는 일이든 말이죠. 그리고 미리 철저한 준비와 공부를 하면 퇴직이 즐거워질 겁니다.”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