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손짓한다. 바람 불어와 나뭇잎이 흔들린다. 그제는 우체국에 볼일이 있어 집 나서는데 코스모스가 반겼다. 해마다 만나는 코스모스가 사뭇 정겨웠다. 고향 집으로 가는 길가에 핀 추억이 손짓했다. 추억 중 가장 즐거웠던 날은 소풍 가는 날이었다. 가기 전날은 들떠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호기심도 있지만, 수업이 없는 날이라 마냥 신났다. 어머니가 싸 주시던 김밥과 삶은 달걀, 밤 게다가 군것질할 용돈이 생기는 날이었다. 내가 소풍을 기다린 거처럼 어머니는 오일장 날을 기다리셨다. 살 것을 빼꼼히 적으셨다. 그날이 오면 어머니와 마을 사람들은 코스모스 길 따라나섰다. 부화시킨 병아리들도 닭장에서 나와 좋다고 삐악거렸다. 달구지도 곡식 자루를 싣고 따라갔다. 오일장은 고된 농사에서 벗어나 어머니와 마을 사람들이 소풍 가던 장소요. 유일한 십리길 여행이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인의 <귀천>
소풍하면 천상병 시인이 생각난다. 이 세상이 아름다운 소풍이었다고 시인은 고백했다. 가난했던 현실을 뛰어넘어 어찌 즐겁고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었는지,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간 삶이 소풍처럼 즐거웠던 것일까? 새벽빛과 이슬과 노을빛에 순응한 긍정의 사고에 숙연해진다.
소풍 가듯 여행길에는 준비할 것이 있다. 집을 나서기 전에 챙겨야 할 필수품이 있다. 소위 준비물이다. 해외로 가거나 장거리 갈 때는 더 많은 걸 챙겨야 한다. 현재 복용하는 약은 꼭 챙겨야 한다. 처방전 없이는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약간의 비상금도 필요하다. 카드가 있다 해도 비상시에 필요하다. 세면도구와 상비약이다. 상비약 중 벌레 물린 데 바르는 약, 소화제. 해열제. 상처에 바르는 연고, 대일밴드 등 위급 상황이 일어날 경우가 있으니, 준비하는 것이 좋다. 기후 변화에 대처해야 한다. 여고 동창들과 유럽을 가게 됐다. 기후가 덥다고 해서 여름옷 위주로 챙겼는데, 국경을 넘을 때마다 날씨 차이가 있어서 후회한 적이 있다. 그 경험으로 다음 여행 때는 옷을 골고루 챙기게 됐다. 볼펜, 모자, 우산, 나이 듦으로 인해 당이 떨어질 수 있으니, 사탕이나 초콜릿도 챙기면 좋다. 손전화기에 있는 메모장을 이용해도 되지만 이왕이면 수첩도 챙기자
홀로 떠나는 여행은 어떤 목적이 있는 경우가 있다.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고 쉬고 싶거나, 추구하는 목적을 달성하고자 할 때 혼자 떠난다. 청소년 교양 도서로 선정된 ‘사라져 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 의 저자는 홀로 여행을 즐겼다. 신문 기자였던 그는 카메라 한 대, 수첩 한 권을 가지고 우리나라 후미진 곳을 누볐다. 시골에서 태어난 기자는 이 땅에서 사라지거나 잊혀져가는 것들이 안타까웠는지도 모른다. 유년의 추억이 사라지는 것처럼. 외나무다리, 흙집, 공동우물, 헛간, 모시 길쌈 등과 교회 종소리, 성냥공장, 썰매, 금줄 등을 찾아다녔다. 사진으로 남기고 취재하고 메모하면서 즐거워했을 것이다.
홀로 떠나는 여행도 좋지만, 대부분 여럿이 동행한다. 동창 모임이나 동아리 모임, 직장 소속 단체나 가족 단위로 간다. 공유하는 것이 있을수록 이야깃거리가 많아 화기애애하다. ‘우리 소풍 온 거 같다’ 라던 친구의 표정은 천진난만하였다.
나뭇잎이 물드는 계절에는 떠나고 싶다. 자유롭게 가지 못하는 올해는 마음 여행을 떠나자. 마스크를 하고 중고 서적을 넣을 배낭을 멘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선다. 색다른 공기가 느껴진다. 2호선 전철을 타고 한강을 건넌다. 창밖을 본다. 도시의 풍경이 높은 하늘 아래에 있다. 강물은 흘러간다. 다리를 건너는 동안 다시 가서 보고픈 연초록 다리가 떠오른다.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시가 마음을 훔친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이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흐르는데 나는 기억해야 하는가? 기쁨은 늘 괴로움 뒤에 온다는 것을~’
다리 아래 한강물이 나지막이 출렁인다. 양떼구름 사이로 들어난 하늘빛은 쪽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