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50이 넘어가는 친구나 지인들의 지갑 속에 어린 아이 사진이 고이 들어있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자신의 SNS 프로필 사진에도 아기 사진이 등장한다. 그들의 손주 사진이다. 여자들이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에 흥미가 없듯,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의 손자 이야기에 별 재미를 못 느낀다. 그럼에도 자기 손주 이야기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날 정도로 손주 자랑을 하고 싶은 것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마음인 것 같다. 아이가 웃어줄 때는 온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고, 재롱을 부릴 때면 사랑과 기쁨이 넘친다고 한다. 손주 이야기 하려면 돈 내고 하라는 말에 돈을 내고 하는 사람이 많아서 이제는 듣는 사람이 자기가 돈을 낼 테니 그만하라는 농담까지 한단다. 손주를 직접 기르건 아니건 상관없이 손주에 대한 사랑은 끝이 없다. 그런데 손주가 예쁜 것과 손주를 내손으로 기르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 것 같다. 

 

황혼 육아의 빛과 그림자

살다보면 어떻게 하는 것이 맞는 일인지 그 명쾌한 답을 찾기가 쉽지 않은 문제들이 많다. 독립해 나간 자녀들이 낳은 손주를 조부모가 길러줘야 할지, 말지의 문제도 그 중 하나다. 이를 말해주듯 한 토크쇼에서 황혼육아에 대한 견해를 물었는데 ‘해야 한다’가 52%, ‘하지 말아야한다’가 48%로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아이들이 결혼을 해 독립한 이후 집안이 텅 비고 할 일이 없어 잡념이 많았었는데 손주를 돌보게 되면서 생활의 활력소를 찾았어요. 내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손주가 얼마나 예쁜지 직접 길러보지 않은 사람은 잘 알 수 없어요. 난 손주 보는 재미로 삽니다. 두 노인네 사는 집에 웃을 일이 없는데 손주 때문에 웃어요.”

“손주 기르는 일은 소중한 일이기도 하지만 힘든 자식들을 도와주는 값진 일입니다. 내가 좀 고생하더라도 자식이 편하다면 손주는 길러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로가 필요할 때 돕고 살아야 가족의 끈끈한 정이 생기고 화목한 가정이 됩니다. 부모와 자녀의 가정이 손주 육아로 인해 더 가까워질 수 있어요.”

“길러주는 고마움으로 아이들이 주는 용돈이 쏠쏠합니다. 그것으로 손주에게 주고 싶은 것 사주고 우리 생활에도 도움이 되요.”

황혼 육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은 손주 보는 즐거움과 보람, 가족의 화목과 경제적 도움을 찬성의 이유로 들어 말한다.

 

반면 황혼 육아를 반대하는 이들은 이런 말들을 한다.

“손주가 예뻐서 짧은 생각으로 손주를 길러주겠다고 했지만, 막상 부딪혀보니 후회가 막심합니다. 몸과 마음이 힘들 뿐더러 이러다 얼마 남지 않은 내 인생 속절없이 다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주변에 손주 돌보는 친구들을 보면 몸이 남아나지 않는다며 아프다는 소리를 달고 삽니다. 손주 기르는 것은 운동이 아니라 중노동입니다. 그런데 자식들은 내가 아직 젊고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평생 자식농사 짓느라 내 삶의 시간이 없었잖아요.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일하며 남은  인생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손주 육아에 매여서 그리 못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요.”

“손주를 기르다보면 서로 다른 육아 방법이나 생활 방식 등의 차이로 부딪히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속상할 때가 있고 심한 갈등까지 생겨 부모 자식 간에 금이 가기도 해요.”

“손주 길러주는 대가를 크게 바라는 건 아니지만, 나의 수고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적은 용돈 정도 밖에 주질 않습니다. 그리고 자식이 주는 돈은 받을 때 마음이 편치 않아요.”

이들은 신체적인 한계, 남은 인생의 삶의 방향과 가치, 관계 속의 갈등, 무심한 자식들에 대한 서운함을 말하고 있다. 

 

 

손주, 봐줘? 말아?

정답은 없다. 각자의 생각과 형편에 따라 적절히 알아서 선택할 문제이다. 어쩔 수 없이 손주를 돌봐주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황혼육아를 피할 수 없는 형편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손주를 돌볼 일이다. 그러나 선택 대안이 있는 상황이라면 황혼 육아의 여러 가지 빛과 그림자를 깊이 생각해보고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 

아이는 아이를 낳은 부모가 양육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리고 적어도 두 살 까지는 엄마 아빠의 품과 손에서 자라야 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형편과 현실이 엄연히 존재하는 만큼 조부모가 길러주는 것이 차선책이 될 수 있다. 황혼에 손주를 돌봐주기로 했든, 말기로 했든 어떠한 선택을 하든지 잘못된 선택은 아니다. 결과의 좋고 나쁨을 떠나 각자의 입장과 처지에 맞는 선택을 한다면 그것이 최선의 선택임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황혼 육아와 관련하여 덧붙이고 싶은 바람이 있다. 육아에 대한 갈등과 고민을 덜어줄 수 있는 사회적 돌봄 체계가 지금보다 더 든든하게 뒷받침되고, 특히 영유아기 때 부모의 손에서 자랄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알맞게 갖춰지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