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좋은 죽음’도 준비가 필요하다.
품위 있고 존엄하게 생을 마감하는 일
웰-다잉(well-dying)은 잘 죽기 위한 준비다.
친구들과 술 한 잔 기울이며 마지막 죽음의 모습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아직은 피상적인 수준이지만, 각자가 바라는 죽음의 모습은 어렴풋하게나마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프지 않고 자다가 편안하게 죽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는 대다수가 동의하지요. 그렇지만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나요? 어떤 친구는 죽음의 순간이 오면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겠노라고 말합니다. 죽음에 대해 어지간한 내공이 쌓이지 않고서는 어려운 실행일 가능성이 큽니다. 오랫동안 도를 쌓은 고승이나 선인들에게서나 들어볼 수 있는 얘기이니까요. 또 어떤 친구는 나이 80이 넘어 불치의 병에 걸리면 살 만큼 살았으니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자연스레 죽음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생의 집착이 강해 이 역시도 장담할 수 없는 얘기지요. 이렇듯 친구들은 나이가 들어가며 죽음이 먼발치 남의 얘기가 아닌, 나의 얘기로 실감하며 ‘어떻게 죽는 것이 잘 죽는 것인가’, 웰-다잉(well-dying)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이런 저런 죽음관 에 대해서 이야기 들을 나눕니다.
세계에서 ‘죽음의 질’이 가장 좋은 나라라는 영국에서는 일찍이 ‘좋은 죽음’을 이렇게 정의했다고 합니다. “익숙한 환경에서 존엄과 존경을 유지한 채 가족·친구와 함께 고통 없이 죽어가는 것.” 한데 한국인은 일상적으로 낯선 병원에서 영문도 모른 채 기계에 둘러싸여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현실이죠.
대다수 한국인의 죽음은 넓은 의미에서 ‘고독사’라고 했던 ‘중앙선데이(2018. 2. 4일자) 기사가 공감이 갑니다. 기사 내용에 따르면, “사망 인구 4명 중 3명(74.9%, 2016년)은 병원에서 치료 중 사망한다. 치료의 공간에서 연명장치에 의존하다 의사의 사망선고로 생을 마감하고, 가족과의 작별인사와 같은 엄숙한 마지막 절차는 거의 생략된다. 임종은 자연스러운 삶의 끝이 아니며, ‘치료의 실패’로 쫓기듯 죽음으로 내몰리는 것이다. 생사의 문제를 의학이 주도하고, 죽음을 ‘의학의 실패’로 인식하며 어떻게 해서든 삶을 연장하려는 ‘죽음의 의료화’가 한국인의 ‘좋은 죽음’을 방해하는 주요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우리는 ‘좋은 죽음’의 모습이 어떤 모습이어야 할 거란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주위에 죽음의 모습을 보면 대개가 위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2012년 개봉한 영화 <엔딩노트>에서 어느 샐러리맨의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보면서 웰-다잉도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이미지 사진 출처 : Pixabay)
영화 <엔딩노트(2012)>속에 나타난 좋은 죽음의 모습
영화는 성당에서 장례식이 진행되는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영화 속의 주인공은 향년 69세,정년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준비하던 주인공 스나다 도모아키는 반년 전인 5월 정기 건강검진에서 위암 4기 말기 암 판정을 받게 됩니다. 주인공은 자신에게 닥칠 죽음에 대해 망연자실 슬퍼하기보다 제일 먼저 자신만의 엔딩노트를 작성합니다. 엔딩노트에 작성된 10가지 실천 과제를 주인공이 하나씩 하나씩 실행에 옮기는 과정을 막내딸의 내레이션과 함께 보여주고 있습니다.
평생 믿지 않았던 신을 믿어보기, 손녀들 머슴노릇 실컷 해주기, 한 번도 찍지 않았던 야당에 표 한번 주기, 꼼꼼하게 장례식 초청자 명단 작성하기, 일만 하느라 소홀했던 가족과 행복한 여행하기, 빈틈이 없는지 장례식장 사전 답사하기, 이왕 믿은 신에게 세례받기, 쑥스럽지만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기 등을 실행에 옮기며, 자신에게 다가온 죽음을 담담하게 맞이합니다.
임종의 시간이 되어서는 가족들에 둘러싸여 마지막 정을 나눕니다. 몸을 일으키지도,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사랑하는 손녀들이 왔다는 소리에 “응, 애들 왔어? 멀리서 와줘서 고맙다. 고맙다. 할아버지가 힘내려고 했는데.... 착하게 크렴” 손녀들이 할아버지 손을 꼭 잡고, “할아버지랑 즐거웠어요. 할아버지 덕분에 많이 웃었어요...”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마친 주인공은 마지막으로 부인과 단둘이 있게 해달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가장 소중했던 반려자에게 하지 못했던 마지막 한 마디 “쑥스럽지만 사랑했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울컥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입니다. “더 많이 사랑했어야 하는데, 미안해....” 부인도 이생의 작별 인사를 합니다. “살면서 당신이 잘 이끌어줘서 고마워요... 당신이 이렇게 좋은 사람인 걸 늦게 알았어요....” “세일즈맨은 물러날 시기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라는 말을 남기며, 주인공은 숨을 거둡니다.
우리는 이 영화가 시사하는 바를 웰-다잉 관점에서 생각해 봅니다.
자신에게 닥친 갑작스런 죽음이 두렵기도 했겠지만, 주인공은 40여 년 샐러리맨으로서의 지난 삶을 반추하며 ‘현재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엔딩노트에 기록합니다. 엔딩노트는 유언장, 유품정리, 장례절차, 사전의료의향서, 인생 회고 등 자신의 마지막 삶을 정리하는 기록입니다. 남아 있는 가족들에 대한 배려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가 국내에서 개봉되면서, 죽음을 준비하며 작성하는 엔딩노트가 큰 관심을 끌었고, 죽음을 대하는 긍정적인 인식변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또한 각종 영화제에서 재상영되며, 영화가 던지는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자신들 각자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고 합니다.
좋은 죽음을 준비하는 여섯 단계
영화 <엔딩노트>를 통해 좋은 죽음의 한 단면을 보았지만, 좋은 죽음은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준비해 가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래 <좋은 죽음을 준비하는 여섯 단계>를 지금부터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래픽 출처 : 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좋은 죽음도 준비된 선택이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하듯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도 선택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병원에서 무의미한 검사와 치료를 받느라 시간과 돈을 허비하는 죽음을 맞을 것인지 아니면 임종 전에 정신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통 없이 인생을 마무리하는 죽음(호스피스 진료)을 맞을 것인지 선택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임종 전 1년간 평균 3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하고, 병원비로 약 3,000만 원을 쓴다고 합니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이 CT나 MRI 같은 검사(53%)를 받고, 일부는 중환자실에 입원(13%)하고, 항암치료(7%)를 받기도 하지만, 상태가 나빠져 응급실에 가는 경우(37%)가 적지 않습니다. 반면 호스피스 진료를 받은 5명 중 1명은 대부분 통증 조절을 위해 마약성 진통제를 더 많이 투여(76%)받고, CT나 MRI 같은 검사(3%)나 중환자실 입원 치료(0%)는 거의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환자 상태가 잘 관리되니 응급실을 방문하는 경우(7%)도 드물다는 것이죠.
아직은 우리나라의 임종 전 호스피스 진료가 제대로 정착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상 질환의 제한, 턱없이 부족한 호스피스 병·의원의 숫자, 그리고 호스피스 진료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 등 해결해야 할 법적, 제도적, 환경적 제약 요인이 너무도 많지만, 점차 해결될 것이라 보고 지금부터 좋은 죽음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겠습니다. 준비된 죽음을 공부하고 실천해 의미 있는 삶의 마무리를 지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시민기자단 구세완 기자(swkoo021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