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떠나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니, 집이 거의 비상 대피소 같았다.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일어날 것을 대비한 방공호 같은 느낌도 들었는데, 가장 심한 곳은 냉장고와 그 옆 수납장이었다. 양문형 냉장실과 냉동실은 먹을 것이 꽉꽉 채워져 있어서 불빛조차 새어나오지 못했다. 7단 수납장에도 라면, 국수, 각종가루, 술병이 ‘덕용포장’으로 쌓여 몇 달을 먹어도 될 만큼 쟁여져 있었다. 냉동실을 열 때마다 바윗돌 같은 음식물에 발등을 조심해야 했다. 깊숙이 들어있는 음식물들은 유통기한조차 식별하기 어려웠다. 김치냉장고 사정도 비슷해서 과일과 김치가 플라스틱 그릇에 칸칸이 채워져 있었다. 물자가 풍족하지 않은 개발도상국가에서 냉장고라고는 관광모텔에 비치된 손바닥만 한 곳에다 벌레를 막기 위해 단 것들만 겨우 넣어두고 살다 온지라 넘쳐나는 먹거리에 식욕이 솟기보다 ‘먹어 치워야할’ 숙제처럼 난감했다.
부엌세제는 큰 통에 가득한데 보충용이 따로 있었고 세탁세제도 마찬가지, 욕실용품은 한 손으로 들기도 무거운 것들이 즐비했다. 화장품 수납장이나 서랍엔 포장도 뜯지 않은 각종 화장품이 딸려온 샘플까지 포장으로 묶여있었다. 고추장이나 참치 캔도 다발로 묶여 테이프가 칭칭 감겨있었다. 1+1, 2+1, 큰 것 사면 작은 건 덤, 야채도 두 개씩 묶어 팔았다.
집에 있노라면 하루에 두세 번씩 택배기사가 벨을 눌렀다. 박스는 내용물을 빼내도 비닐과 포장재가 그득한 채 발아래 쌓여갔다. 어쩌다 물건이 이리도 많게 되었냐니까 대답은 간단했다. 많이 살수록 싸니까. 큰 것 사면 작은 걸 거저 주니까. 가게에 갈 시간이 없으니까.
분리수거 하는 날에는 이른 바 재활용품이 너무 많아 이삿짐 나르듯이 ‘擧案齊眉거안제미’하듯 날라야 했다.
텅 빈 듯 간결한 방, 승방처럼 해놓고 싶다
2년 살던 스리랑카에선 물건 몇 개 받으려면 워낙 절차가 복잡하고 우체국이 먼 데다 모든 게 수기로만 이루어져 부지하세월이라 아예 택배자체를 이용하지 못했다. 거기 사람들은 음식을 냉장고에 저장하지 않았다. 그날 먹을 것은 그때그때 준비해서 먹고 남은 것은 나무에 올려놓아 다람쥐나 새가 먹게 만들 뿐, 랩으로 싸놓거나 용기에 담아 두지 않았다. 하다못해 코코넛도 상온에 두었다가 잘라 마실 뿐, 해가 지면 마시지 않았다. 차가운 모든 음료수는 몸에 좋지 않다며 냉장고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 방식을 따라 살다보니 몸에도 남은 열량을 지방과 글리코겐 상태로 저장하지 않아 적당히 가벼워졌는데.
돌아온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모든 것이 ‘저장’되고 있었다. 앞으로 절대 옷이나 물건을 사지 않겠다! 고 다짐을 거듭하면서도 물건은 줄지 않았고 공간은 비워지지 않았다. ‘정리’라는 것을 해보려고 나섰다가 재차 그로기상태에 빠지고야 말았는데, 이유가 있었다. 재활용, 분리수거, 환경, 에코를 부르짖느라 바뀐 이 세상은 점입가경, 새 환경제품들이 남발되고 있어서였다. 비닐 가방 버린 자리에 에코가방이 색깔별로 수십 개 들어앉았고 일회용 컵 줄이라며 공짜로 나눠 준 텀블러도 평생 쓸 만큼 수십 개, 대형슈퍼마켓에서 카드회원에게 선사한 장바구니도 서랍마다 튀어나왔다. 플라스틱 반찬용기는 사은품이란 이름으로 버릴 수도 없게 딸려 들어왔다. 버린다고 버린 자리에 또 다른 형태의 새 것들이 더 많이 자리 잡았다.
가장 필요한 것만 두고 작은 집에 사는 사람. [이미지출처 Imdb]
애착과 집착이 고착된 자리, 빈자리는 채우지 않아도 되겠지
책들은 표지와 표지가 붙어 떨어지지 않는데, 다시 볼 것 같아 버릴 수가 없다. 시디플레이어가 없어 음원으로만 듣는데 음악CD는 장식장에 꽂힌 채 그대로다. LP음반은 하도 오래전 것들이라 절로 휘어져 있는데, 턴테이블도 고장 나서 버렸는데 젊은 때 추억이 가득해 다시 껴안을 수밖에 없다. 도대체 물건들을 버리기가 어렵다. 만졌다가 올려놓고 닦아서 쌓아놓고 큰 맘 먹고 노끈으로 묶었다가 다시 풀어 쌓아두고야 만다. 이유모를 애착과 떨어지지 않는 집착이 번거롭고 걸리적거리는 날이 계속되던 날, 덜컹 뜻하지 아니한 곳에서 계기가 찾아왔다. 가을에, 겨울에, 그리고 더 추운 한겨울에 가까운 이들이 이 세상을 떠나갔다. 눈 번히 뜨고 있던 얼굴 보던 그 어느 날, 눈앞에서 사람들이 빈손으로, 그 많은 것들 다 두고, 그저, 몸만 사라졌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몸피가 조그맣고 몸짓도 단정한 일본여자 곤도 마리에가 웃는 얼굴로 자꾸자꾸 말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찾아서 봤다.
곤도 마리에는 이름난 정리전문가. 버려라, 버려라, 버려라. 설레지 않으면. 그 물건에서 더 이상 기쁨의 스파크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 프로그램의 원제는 <Does it spark joy?>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곤도 마리에의 정리법. [이미지출처 : Imdb]
설렘은 어떻게 아느냐하면, 만져보는 것이다. 옷을 잡고 가방을 잡고 책을 잡고, 내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몸으로 느껴보란다. 떨림이, 기쁨이, 설렘이 없으면 그건 내게서 떠나보내야 하는 것, 내게로 올 때의 수명이 다한 것. 그저 쟁여놓고 있으면 쓰레기를 쌓아놓고 사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아무 것도 버리지 못하면 물건을 저장만 해대는 저장증후군 환자 호더hoader가 된다.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날 때 완전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한주먹 가루로 남아 흙과 비벼져 흔적도 없이 세상 떠나는 것을 본 이후 집을 둘러봤다. 쌓이고 쌓인 것들은 철제 옷걸이까지 휘게 하고 뭉텅뭉텅 먼지를 만들어낸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지금은 버려야 할 때다.
사람은 사랑하고 물건은 사용하세요. 그 반대는 소용없으니까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에서 곤도 마리에는 어쩌면 저러냐싶게 항상 웃는 얼굴로 정리하지 못하고 창고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이들을 찾아간다. 정리를 도와달라고 곤도를 부른 사람들은 눈물을 흘린다. 떠난 사람의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둔 채, 공간에 널브러진 물건에 치이고 그 공간에서 관계가 틀어진 사람들 때문에 운다. 곤도는 맨 먼저 그 집에 인사한다. 단정하게 무릎 꿇고 엎드려 눈을 감고, 일본식으로 깊게 절하면서 집이여, 감사하다. 그 동안 품어주고 쉬게 해주고 살게 해줘서 고맙다, 고. 열이면 열, 집주인들이 감동한다. 주인이면서 정작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으니까.
곤도 마리에가 물건에 파묻혀 사는 이들을 도우러 온다. [이미지출처 : Imdb]
이 집구석이 싫어, 싹 바꾸고 싶어, 너 때문에 집이 이 모양이야, 바쁘니까 할 수가 없어, 서로 탓하던 이들이 그제야 손을 잡는다. 곤도는 설레지 않는 물건들을 버릴 때도 획 집어던져 쓰레기처럼 버리지 말라한다. 집에게 감사하고 큰 절하고 옷을 버릴 때도 가슴에 품었다가 버리라는 그녀의 충고가 처음엔 민망해도, 반짝이는 눈빛으로 조용조용 말하는 걸 보고 있으면 덩달아 숙연해진다. 추억의 소품 즉 Sentimental Item을 정리하고 버리는 방법은 더 경건하고 조심스럽다. 아기 어릴 때 옷들, 죽은 남편의 물건들, 몇 십 년 모아놓은 사진과 편지들, 깊이 사랑한 취미용품들은 감정의 애착을 정리하는 것이므로. 덕분에 천천히 버림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다.
공간과 사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정리의 달인. 감사하고 잘 버리고 인사하고 살아가라는 깔끔한 충고. [이미지출처 : Imdb]
8편의 에피소드를 보면서 천천히. 이름이 적힌 책 앞장을 뜯어 태우고 버렸다. 안 듣는 음반도 정리했고 소매가 낡은 옷들은 잘 때 입고 아직도 설레는 낡은 옷은 염색약을 사서 물을 들였다. 긴 옷은 잘라내서 짧게 리폼 했다. 버리지 않은 것들은 오랜만에 새 옷처럼 다시 왔다. 신기하게도 물욕이 옅어지는 경험 속에서 그래도 주춤주춤 더 무엇을 사고 싶은 욕심을 버리려고 <미니멀리즘>, 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저 찾아봤다. 이 다큐멘터리는 제목 미니멀리즘답게 군더더기가 별로 없다. 원제목은 A Documentary about the Important things. 가장 중요한 것들에 대해 말하기만 한다.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고 렛 고, 레팅 고
<The Minimalist>라는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두 남자, 라이언 니코디머스와 조슈아 필즈 밀번은 어느 날 확 삶의 방식을 바꾼다. 세 살 아이에게 휴대폰을 파는 일을 하다가, 전자제품 대리점을 수십 개 운영하는 자본주의적인 삶을 살다가 어느 날, 집에 쌓인 모든 물건들을 버리기 시작한다. 평생을 아기들에게 휴대폰 잘 파는 법만 연구하다가 죽을 순 없지 않나, 회의하느라 엄마가 죽어가는 순간에도 전화를 못 받으며 살 순 없지 않나. 두 남자는 어린 시절부터 달라붙은 감정적 애착과 정리되지 못한 관계를 반성하면서 감정과 물건의 미니멀리스트가 된다. 넥타이와 양복을 벗고 가볍게, 간단하게 사는 방식을 공유하기 위해 여행을 계속한다. 미국 전역을 돌면서 지금 모든 물건에 목적이 있거나 자기에게 기쁨을 주는 것만을 갖고 사는 즐거움을 이야기한다. 아무 생각도 없이 수천 개의 물건들을 사다 쟁여놓고 물건에 치인 삶을 정리한 후, 버린 후에 찾아온 평화와 기쁨을 전한다.
미니멀리스트, 두 남자. 가장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러 강연여행을 떠난다. [이미지출처 : Imdb]
렛고let go, 레팅고letting go. <미니멀리즘>에서 반복되어 나오는 말이다. 심리학자가, 작은 집 디자이너가, 명상수행자가, 정신과의사가 한 결 같이 말하는 것.
버려야 해요. 버려요. 놓아두세요.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고 흘러가버리게 둬요.
미니멀리즘 다큐멘터리. 사람은 사랑하고 물건은 사용하는 것. 사랑하고 사용하세요. [이미지출처 Imdb]
두 편의 버리기에 관한 프로그램을 스트리밍 서비스로 본 것은 주제와 어울린다. 수없이 많은 미니멀리즘 책이나 정리나 수납용 가이드북을 산 것이 아니니 쌓아두지 않아도 된다. 스트리밍. 그냥 지금, 당장, 흘러가게 두고 보는 것. 이제 인터넷 쇼핑 몰에서도, 삶에서도, Add to Wish list 쓰기를 그만 둔다. 장바구니로 옮겨 담기를 멈춘다.
<Everything that remains> 두 남자가 쓴 책 제목이다. 남아 있는 모든 것. 물건을 사랑하느라,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사용했던 날들을 후회하며 미니멀리스트가 된 그들은 강연 여행을 끝내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들 가정의 대화는 I love you 대신 I want that으로만 남아 있다. 물건은 쌓아놓고 사용하지 않으며, 사람은 관계 밖으로 밀쳐놓고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당신들이 어디로 여행을 가려는지 모른다. 당신이 어떤 삶을 사는지, 어떤 여행을 할 것인지, 어디로 가려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긴 여정을 떠나려는 여러분에게 해줄 말이 딱 하나 있다. 사람은 사랑하고 물건은 사용하라. 그 반대는 아무 소용없다.”
Love People and Use things. Because the opposite never wor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