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들의 꼬리표 경력단절
주부들에게는 흔히 경력 단절이라는 꼬리표가 붙습니다. 사회에서 원하는 경력이 없다는 것인데 뭔가 발끈 억울합니다. 주부의 경력도 중요한 경력인데 말이죠. 그나마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주부경력도 알아주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수납전문가’ 혹은 ‘집밥활동가’ 라는 꽤나 정감어린 이름들이 생긴 겁니다. 뭐든 제대로 하면 인정받는 세상입니다.
문제는 주부이면서 대문밖에 마음을 둔 나처럼 어설픈 3급 주부입니다. 맘씨 좋은 시어머니를 만나서 사철 밑반찬이며 김치를 갖다 먹은 운 좋은 며느리라 직접 만들어 볼 기회가 적었습니다. 그저 솜씨 좋은 어머니가 오래오래 곁에 계셔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람은 늘 아쉬움으로 남더군요. 어머니는 팔십세를 막 넘긴 아까운 연세에 눈을 감았습니다.
이러니 ‘수납전문가’나 ‘집밥활동가’가 되기에는 애초에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3급 주부에게도 잘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글쓰기였죠. 아이들을 키우며 생기는 소소한 일들. 혹은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끄적끄적 풀어놓은 시간이 주부 경력만큼 쌓였거든요. 경험한 분은 알겠지만 글을 쓰다보면 어지간한 일은 자연스레 해결되거나 사라집니다. 쓰는 행동이 마음을 다스려주는 것 같아요.
이래저래 용도가 분명치 않던 경력단절 3급 주부의 2급쯤 되는 글쓰기는 SNS에서 소통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글이 따뜻하다’였어요. 때마침 92세에 처음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시바타 도요’의 기사를 읽었습니다.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짓지 마 /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 쪽 편만 들지 않아 /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있어 좋았어 / 너도 약해지지 마❞
그녀의 시작은 아들의 권유였습니다. 2009년 자신의 장례비용이었던 100만 엔으로 첫 시집 <약해지지 마>를 출판하게 되죠. 2010 년 대형출판사와 손잡고 삽화와 글이 추가된 시집이 나오게 됩니다. 이 시집은 일본에서 150만부가 넘는 높은 판매를 기록했어요.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시집이 이렇게 많이 팔리는 일은 일본에서는 매우 드물다고 합니다. ‘시바타 도요’의 글은 매우 긍정적이고 순수합니다. 2013 년 102세의 나이로 별세했지만 생전 그녀의 바람대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이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기사를 읽었을 때 ‘나도 한 번 써 볼까?’ 하는 당돌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시작을 어떻게? 라는 막연한 물음표 하나가 따라다녔습니다. 그리곤 깨달았지요. 찾으려고만 하면 인생의 답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요. 기다렸다는 듯이 출판을 할 수 있는 조금 손쉬운 방법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전자책 출판이었어요. 그때는 몰랐습니다. 책 한 권 출판하리라는 꿈을 안고 들어선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가 내 삶의 전환점이 되리라는 것을요.
서울시50플러스에서 경력 만들기
서울시50플러스 캠퍼스는 서울시민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해 준 곳이었습니다. 50+세대가 주눅 들지 않게 이름에 50플러스가 붙은 공간이었어요. 서울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했습니다. 캠퍼스는 나와 같은 50+세대를 위한 배움터이며 놀이터였어요. 이제야 알 게 된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2017 년 50+세대의 필수 입문과정인 서울시50플러스 ‘인생학교 4기’로 본격적인 캠퍼스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내 생각에 머문 시기였어요. ‘인생’만으로도 좋은데 ‘학교’까지 붙은 ‘인생학교’ 입학식에서 이렇게 말했거든요.
❝아이가 셋인 전업주부입니다. 아이를 키우다보니 내 욕심대로 자라는 것도 아니더군요. 그래서 차라리 내가 성장하자. 하고 나왔습니다. 지금부터 글을 써서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출판하고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 그 내용으로 강의를 하고 내 사후 70년까지 우리 아이들이 인세를 받게 해주고 싶어요.❞
대책 없이 당돌한 자기소개였습니다. 인생학교 4기 동기들이 ‘저 용기는 뭐지?’ 하고 참 신기했다고 하더군요. 집에서는 아이들이 사회에 잘 적응하는 엄마를 신기해했습니다. 이름처럼 용감했고 진심이었습니다. 실제로 서부캠퍼스에서 하는 ‘전문강사양성과정’을 듣고 있었으니까요.
큰소리 뻥뻥 친 3급 주부의 첫 경력은 2 년 전 사회공헌활동으로 했던 ‘리포터’였습니다. 시작도 우연이었지요.
“정 선생님 말하는 거 보니 리포터 하면 잘하겠어요.”
당시 전자책 출판 과정을 수료하고 커뮤니티를 같이 하던 분이 말했습니다. 나는 커뮤니티 총무였고 그분은 대표였어요.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이었습니다.
“그런 거 어디서 할 수 있어요?”
살면서 생기는 우연들이 사실은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그 때 알았습니다. 마침 도심권50+센터에서 진행하는 사회공헌활동을 그분이 속한 시니어 카페에서 홍보 중이었어요. 그 중에 리포터도 있었죠. 이웃에 사는 평범하지만 바람직한 50플러스 세대 한 사람을 인터뷰 하는 활동이었습니다.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바로 지원을 하고 리포터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캠퍼스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다양한 경력이 쌓였습니다. 전문강사양성과정에서 강의 스킬을 배운 덕에 여행기획과 관련 된 ‘N개의 아카데미<버킷리스트-혼자 떠나는 자유여행> 에 강사로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도시해설가 3기 수료 후에는 인생학교 동기들을 인솔하여 월드컵 경기장과 문화비축기지 근처를 안내하기도 했습니다.
리포터 활동을 계기로 60대 이상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니어블로거‘와 ’시니어타임스‘ ’이투데이브라보마이라이프‘의 ’동년기자‘ ’유어스테이지‘에 글을 썼고 브런치 작가, 당사자필진 등 자유기고가로서 활동 중입니다. 2018 년에는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시민기자 활동도 하였습니다. 어머니의 장맛이 그리워 참여한 ‘서울시 장 담그기’ 인연으로 ‘서울시장독대아카데미’에서 종로구 코디네이터 활동도 했어요. 단지 서울시50플러스 캠퍼스를 드나들었을 뿐인데 어느 순간 좋아하는 일들을 맘껏 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경력단절 주부인가요? 혹은 오래 다니던 회사를 나와 쉬는 중인가요? 걱정하지마세요. 잠시 쉬면서 마음에 오래 담아 둔 꿈을 깨워 보세요. 두드릴 용기만 있다면 머지않아 현실이 되어 있는 꿈을 만날 겁니다. 서울시50플러스에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