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이 피어나던 어느 날, 길거리 게시판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조각상이 담긴 포스터를 보고 발길을 멈추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릴 예정인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전(2019. 4. 29~6. 13)을 알리는 포스터였다. 평소에 절에서 보았던 근엄하고 진지한 나한상과는 사뭇 다른, 왠지 푸근하고 선한 표정에 마음을 빼앗긴 나는 전시가 시작되면 꼭 가보리라 마음먹었다.
그 얼마 후, 여행길에서 만난 불교조각을 전공한 후배가 자기 생애 최고의 전시회라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나한전을 추천했다. 나는 친구를 부추겨 박물관으로 향했다. 이번 박물관행에서는 봐야 할 전시가 여럿이었다. 영월 창령사 터 나한전, 근대서화전, 마곡사괘불 등등.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전
우리의 스승이자 보호자, 나한
먼저 특별전시실에서 열리는 나한전을 보기로 했다. 이 전시의 주인공 나한(羅漢)은 누구일까? 나한은 아라한(阿羅漢)의 준말로, 산스크리트어 아르하(Arhat)에서 왔다. 소승불교에서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존재다. 모든 번뇌(煩惱)를 끊고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불도를 닦는 사람에게 스승 같은 존재이자 공경의 대상이다.
전시장의 걸개그림
보주를 든 나한 고요 속에 든 나한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전에서 선보이는 90여 점의 나한상에는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 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의 희로애락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 어디 그뿐이랴? 소재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흔하디흔한 화강암이다. 게다가 표정이나 형태도 꾸밈이 없다. 이마가 불룩 튀어나온 짱구부터, 돌 뒤에서 고개를 내밀고 ‘까꿍’ 하는 아이처럼 장난기가 느껴지고, 화가 난 듯 혀를 내밀고 있는 모습까지 참으로 인간적이다. 돌을 다루었으되 손, 발 등의 기본적인 포즈만 살릴 뿐 단순하고 정교하지 않은 투박함이 깨달음을 이룬 성자라기보다는 내 가족이나 이웃처럼 평범하다.
짱구 나한 까꿍 나한
최고의 수준을 보여주는 전시장
전시장엘 들어가면 어두운 조명 아래, 여기저기 높은 좌대 위에 나한들이 앉아 있다. 나한상 사이를 이리저리 돌며 나한상을 보고 좌대에 적힌 이름을 확인한다. 그 이름들이 형태나 포즈 중심이라 조금은 식상하다. 모든 것이 이토록 완벽한데 전시 관계자의 작명 센스가 조금은 아쉬울 따름이다. 평소엔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는 전시장 바닥도 이번에는 평범함을 거부한다. 바닥에도 벽돌을 깔고 여러 가지 문구를 한글과 영어로 써놓았다. 그 글귀들도 전시회를 처음 갔을 땐 보지 못했다가 두 번째 갔을 때 발견했다. 단지 나한상만을 보여주기 위한 전시회가 아니라 온 마음을 다해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구나 싶어서 뭉클했다.
전시실의 나한들 화난 표정의 나한들, 가운데 나한은 혀를 삐죽 내밀고 있다
인간세상의 번뇌, 적막 속에 스미다
설치작가 김승영이 작업한 전시장 안쪽, 스피커 속에 앉아 있는 나한상들은 마치 천장이 높은 도서관에 책이 꽂혀 있는 느낌을 주었다.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오히려 고요함을 더한다. 어두운 조명, 물방울 듣는 소리, 비어 있는 좌대 하나, 좌대 위의 나한상들. 그 사이를 거니노라니 마치 태곳적 신비로운 숲 속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 이번 전시회를 보면서 우리의 전시 수준이 참으로 높아졌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국가의 경쟁력이 곧 문화로 대변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김승영 작가의 설치작품
고려 때 세워졌다가 조선 중기쯤 폐사되었을 것이라 여겨지는 강원도 영월의 창령사(蒼嶺寺). 이번 전시에 나온 오백나한(五百羅漢)은 2001~2002년에 발굴되었다. 나한상들은 그 긴 세월동안 땅속에서 현대인들에게 매력을 발산하는 법을 연구했던 것일까? 몇 백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그 특유의 친근함으로 우리를 단박에 사로잡는다. 일주일 동안 두 번이나 다녀올 정도로 중독성이 강한 전시다.
‘근대서화, 봄 새벽을 깨우다’전
근대서화전 포스터
잠시 다리를 쉰 후, 건너편의 기획전시실로 향한다.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 1861~1919)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근대서화, 봄 새벽을 깨우다’전을 보기 위함이다. 전시회의 이름에 걸맞게 입구를 긴 터널처럼 꾸며 안중식이 1915년에 그린 백악춘효(白岳春曉)도를 움직이는 영상으로 재현해놓았다. 맑은 봄날의 새벽 풍경이 너무도 청아해서 오히려 쓸쓸하다. 조선의 마지막 궁중화가였던 안중식은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지 5년 뒤에 경복궁 뒷산인 백악산을 배경으로 봄과 가을의 풍경을 그렸다. 그림에는 경복궁과 광화문, 그리고 해태상이 지금과는 다른 위치와 모습으로 남아 있다.
백악춘효도
근대화의 여명
전시장의 첫 번째 작품은 주미공사 박정양을 따라 미 공사관에서 근무했던 강진희가 고종과 순종의 생일을 기념해 그렸다는 ‘승일반송도(1988)’와 ‘삼산육성도’이다. 그린 이가 직업 화가가 아니라서 작품성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머나먼 타국에서 임금의 탄신일을 기념해 그린 그림이라는 점에서 임금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 느껴진다. 두 번째 전시품은 안중식이 영선사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쓴 일지다. 이번 전시를 통해 안중식이 중국의 선진문물을 익히는 영선사로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화가도 나라의 운명과 궤를 같이 하는 존재임에랴. 안중식은 애국계몽운동이 일어나던 시기에 오세창이 발간한 신문에 삽화를 그렸는데 그의 제자 고희동과 이도영 또한 날카로운 비판 정신으로 많은 신문과 잡지 등에 삽화를 그렸다. 화가들도 자신의 재능을 나라의 부국강병을 위해 쓴 것이다.
승일반송도((좌), 삼산육성도(우)
한성순보 영선사 일기
스승과 제자
이번 전시회에서 내 눈길을 끈 작품은 장승업이 그린 게 그림에 안중식이 글을 써넣은 작품이었다. 글을 모르는 스승 장승업을 위해 제자는 스승의 사후에 스승을 그리워하며 글을 써넣은 것이다. 장승업의 제자 안중식과 조석진, 안중식의 제자 노수현과 이상범. 그 속에서 피어난 스승과 제자, 친구 관계가 따뜻하게 느껴진 전시회였다.
일제강점 후 1911년 설립된 서화미술회는 강습소를 운영하며 신진 화가들을 배출했다. ‘서화미술회합작도(1917) 10폭 병풍’에는 노수현, 이상범 안중식, 김은호, 이한복, 최우식 등이 참여했는데 스승의 노련함과 제자들의 조금은 서툰 풋풋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조석진과 안중식이 함께 그린 8폭 병풍 또한 비슷한 듯 다른 두 대가의 그림과 유려한 글씨가 여전히 내 발길을 끌었다.
조석진과 안중식이 함께 그린 8폭 병풍
영광풍경에 담긴 근대성
이번 전시에서는 안중식의 ‘영광풍경(1915, 리움소장)’도 빼놓을 수 없다. 크기도 어마어마한 10폭짜리 대작이거니와 당시 전라도 영광읍성의 풍경을 담았다. 성문을 나서는 선비의 앞모습을 그린 것도 놀랍거니와 왼쪽 기와집 사이에 십자가도 보인다. 교회사 연구자에 따르면 당시 영광에는 미국 남장로회가 진출해 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영광풍경도
영광풍경 세부
젊은 시절부터 나는 청전 이상범을 좋아했다. 그러다가 그의 스승 안중식, 조석진의 그림에도 눈을 떴다. 그런데 얼마 전 서예박물관에서 치바이스와 팔대산인 주탑의 그림을 보면서 우리나라 화가의 그림이 조금은 유치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장승업 이후 ‘한국화’가 날이 갈수록 수준이 떨어진다고 한탄했다. 그런데 이번 전시회를 보면서 나라의 멸망과 식민지라는 엄혹한 현실 속에서 근대기 화가들이 우리 화단을 어렵지만 묵묵히 지켜왔음을 알게 되었다. 가슴 뭉클함과 함께 내가 참 섣불리 판단을 했구나 하는 생각에 화가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1902년 고종의 어진 제작에 참여했다는 안중식, 그는 1915년 백악춘효도를 그리면서 어떤 봄을 꿈꾸었을까?
당나라 시인 맹호연의 시 춘효(春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