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라는 낱말이 소원이나 바람을 뜻하면서, 동시에 잠잘 때 보는 어떤 현상을 뜻하는 것이 우리말에서만 그런 것이 아닌 거 같다.

내가 좋아하는 책 <끝없는 이야기> 뒷부분에 ‘그림들의 광산’이란 것이 나온다.

주인공 ‘바스티안 바타자르 북스’가 환상세계로 들어가서 바라는 것을 하나씩 이룰 때마다 자기 자신을 조금씩 잃어가다가, 결국 자기 이름 말고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된다. ‘바스티안’이 생명의 물을 마셔야만 다시 인간세계로 돌아올 수 있는데 그것을 찾기 위해 광활한 눈밭을 헤매다가 만난 사람은 눈먼 광부 ‘요르’였다.

길 잃은 나그네가 되어 만난 사람이 눈먼 사람이라니! 왜일까? 명상이란 걸 잠시 해보니, 눈을 감아야 더 잘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있었다. 어쩌면 감각 총량 법칙이란 것이 있는 건 아닐까? 아마도 ‘미하엘 엔데’는 제대로 된 길을 안내해줄 사람으로 눈은 멀어도 오히려 길을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걸 오랜 경험이나 혜안으로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요르’는 그림광산 ‘민루트 갱’을 지키고 있는데, 그림광산은 생명의 물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광산이라고 한다. 광산에 묻혀있는 그림들은 설화석고 결정으로 된 아주 얇은 판인데 투명하고 천연색이며 갖가지 크기와 여러 모양이다. 그림의 내용들은 모두 인간 세상 누군가에게서 잊힌 꿈들의 장면이다.

사람들의 꿈은 한 번 꾸고 나면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환상세계 그림광산에 아주 섬세한 층을 이루며 차곡차곡 쌓이는데, ‘민루트 갱’이 바로 그곳이라고 한다.

 

꾼 꿈이 사라지지 않고 그림광산에 쌓인다니 얼마나 재미있는 상상인가? 나는 가끔 뭔가 기억이 날 듯, 말듯 한 꿈 때문에 하루의 시작이 명쾌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내 꿈이 저장되어 있을 ‘민루트 갱’을 생각해 본다. 내가 갈 수 없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요르’는 ‘바스티안’이 잊어버린 꿈을 찾게 될 때, 자신의 이름마저 잊어버리고 생명의 물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바스티안’은 자신이 잊어버린 꿈을 찾기 위해 수많은 갱도를 지나며, 조용히 참을성 있게 그림들을 찾다가 한 그림을 보는데, 그림 속 남자에 대한 아픈 그리움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때까지 가지고 있던 자신의 이름마저 잊어버린다.

결국 자신의 이름마저 모르는 아이 ‘바스티안’은 생명의 물을 찾아, 갈증이 가실 때까지 마시고 마시며 그 물로 온몸을 적시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기쁨이 가득 차오른 것을 느낀다.

살아있는 것이 기쁨이라는 것, 그 자신이 기쁨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다음 ‘바스티안’은 다시 태어난 듯 환한 표정으로 말한다.

“난 이제 다시 내가 누구인지 알겠어.”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은 후 비로소 알게 되는 나!

 

요즘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는 ‘방탄소년단’의 ‘인트로-페르소나’라는 노래 가사 중에 “나는 누구인가, 평생 물어온 질문. 아마 평생 정답을 찾지 못할 질문...” 이란 가사가 있는데, 이만큼 나이 든 나에게도 공감이 가는 말이다. 그런데 ‘바스티안’은 깨달았다. 그가 환상세계에서 겪은 일들 하나하나는 그만큼 격렬했고, 그를 철학적으로 성숙시켜주었다. ‘바스티안’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평범하다 못해 오히려 부족함이 많은 그대로의 자기를 기쁨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바스티안’이 ‘민루트 갱’에서 본 그림 속 남자는 ‘바스티안’의 아버지였다. 아내를 잃고 그 상실감으로 아들조차 돌보지 못했던 아버지. 어머니를 잃고, 무심한 아버지에게 상처받은 어린 ‘바스티안’의 꿈은 아버지를 되찾는 거였다.

 

내 꿈은 무엇이었을까? 지금의 내 꿈은 무엇일까? 과거의 내 꿈은 겉만 그럴싸한 그 무엇이었다면, 이제는 삶에 대한 철학이 바탕이 된 무언가가 내 꿈이어야 하는데 아직도 확신에 찬 뭔가를 말하기 어렵다. 그래도 나는 꿈꾼다. 꿈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만약 잠 속으로 찾아오는 꿈이 내 소망, 내 갈 길과 연관 있다면 나는 매일 꿈을 꾸고 싶다. 그리고 그 꿈들을 잊어버리지 않게 기록해야겠다.

꿈 기록 노트에 ‘민루트 갱’이라고 제목을 써 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