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모습으로 살 것인가?

 - 사노요코의 '100만 번 산 고양이' -

 

 

'백만 번 산 고양이'는 동화작가 사노 요코의 세계적 베스트셀러입니다. 어린이을 위한 그림책이라고 얕잡아 보았다간 가슴에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런지는 사람마다 다르고 언제 보느냐에 따라 다르고 읽는 장소에 따라 다르지만, 가슴을 싸르르하게 만드는 지점은 아마도 많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어렸을 때 이 책을 본 적이 없는 저는 우연히 조카의 방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이 그림책의 주인공은 멋진 얼룩 코트를 입은 고양이입니다.  백만 년이나 죽지 않은 고양이에요. 사실 죽지 않은 게 아니라 백만 번을 살았다는 게 더 맞을수도 있습니다. 한 번 만나 보실래요?

 

 


 

 

이 멋진 얼룩무늬 주인공은 한때는 임금님의 고양이로 태어났습니다. 전쟁을 좋아한 임금님은 전쟁에 나갈 때마다 고양이를 데리고 다녔는데 고양이는 그만 화살에 맞아 죽고 맙니다. 임금님은 슬피 울며 고양이를 정원에 묻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얼룩 고양이는 슬퍼하지 않았어요. 뱃사람의 고양이로 태어난 적도 있는데 뱃사람을 따라 세계를 돌아다니던 고양이는 바다에 빠져 죽고 말았답니다. 헤엄을 칠 줄 몰랐기 때문이에요. 뱃사람은 슬피 울며 고양이를 항구마을에 묻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얼룩 고양이는 울지 않습니다. 또 한 번은 서커스단의 고양이로 태어났는데 마술사는 고양이를 상자에 넣어 톱으로 자르는 묘기를 선보이다 그만 진짜로 반 토막을 내버렸습니다. 댕강!

 

그러다가 고양이는 주인 없는 길고양이로 태어났습니다. 처음으로 자기만의 고양이가 되었고 고양이는 자기 자신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멋진 얼룩 코트를 입은 고양이는 인기가 무척 많았지만 늘 시큰둥해하며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난 백만 번이나 살아봤다고".  주변의 모든 고양이들이 감탄을 하며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사 다 그렇듯 딱 하나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새하얗고 새침한 고양이만은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얼룩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백만 번이나 살아봤다고”

“그래서?”

전혀 예상치 못한 하얀 고양이의 반응에 얼룩고양이는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그러던 얼마 후

얼룩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합니다.

“네 곁에 있어도 될까?”

“으응”

 

'연애의 기술' 1호라고 칭할 수 있거나 '교감의 기술'로도 통할 수 있는 '네 곁에 있어도 될까?'라는 결정적 한 방 이후 얼룩 고양이와 하얀 고양이는 함께 지내면서 새끼 고양이도 낳고 참깨를 볶으며 살았습니다. 놀랍게도 얼룩 고양이는 자신보다 하얀 고양이와 새끼들을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은  흘러 새끼 고양이들은 아주 훌륭한(?) 도둑고양이가 되어 집을 떠나고 얼룩 고양이는 지금이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너무 행복한 지금처럼 하얀 고양이와 오래오래 살고 싶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하얀 고양이는 움직임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얼룩 고양이는 백만 년 만에 처음으로 울었습니다. 살면서 한 번도 울어본 적이 없는 얼룩 고양이는 밤이 되고 아침이 되도록 울고 또 울고,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울고 또 울고 울었습니다.

 

 

 

 

 

몇 날 며칠을 울고 난 뒤  울음을 멈추고 얼룩고양이도 조용히 움직임을 멈춥니다. 그러고는 두 번 다시 되살아나지 않았습니다.

 

'백만 번을 산 고양이'는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하얀 고양이를 껴안고 엉엉 우는 얼룩 고양이의 그림을 보자 같이 울어버린 기억이 납니다. 주인이 수백 번 바뀌고 자신이 수천 번 죽어도 한 번도 슬퍼하거나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자기애로 똘똘 뭉친 '나잘난 고양이'가  마침내 자기보다 더 좋아하는 누군가를 만나고 그 행복감으로 가득한 순간에 바로 그 순간이 사라져 버리는, 어찌 보면  '일장춘몽'과 같은 우리네 삶의 모습이 투영되어 보입니다.  자기를 휘감고 있던 오랜 관념의 빗장들이 자기도 모르게 허물어지고 새로운 감정과 느낌이 자신을 채우는 그 순간은 완성과 동시에 사라지고 만다는 가장 모순적인 삶의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무감각한 반복의 생을 마침내 끝낸 얼룩 고양이는 스스로 가장 자기다운 모습을 찾은 건 아닐까요?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키며 가장 자연스러운 격이 있는 삶을 꿈꾸는  50플러스의 고민과 무척 닮아있어 보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50+의 서재를 찾는 누구나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이 얇고 그림으로 가득한 책을 펼쳐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미영

(서울시50플러스재단 홍보협력실)

 

                                                                                                                                                                                                                

 

『50+의 서재』는 편안하게 책과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만남과 소통의 공간으로, 서울시50플러스중부캠퍼스 1층에 자리한 복합문화공간입니다. 이번 달에는 50+세대를 위해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이미영 님이 직접 고르고 추천한 ‘100만 번 산 고양이’를 소개해 드립니다. 언제든 서재에 들러주세요.

 

 

[중부캠퍼스 1층에 위치한 50+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