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

 

 

 유장근ㅣ50+스토리 공모전 최우수상

 

 

저는 대기업(LG)에서 30년간 근무하다가 2009년 말에 퇴직했습니다. 벌써 7년이 다 되어갑니다. 퇴직은 누구에게나 큰 아픔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아픔을 견디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직장의 굴레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을 즐겨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책도 읽고, 건강도 관리할 겸 운동도 시작하고, 새로 시작한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면서 제법 절제된 생활로 나름대로 퇴직 후의 여유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활이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습니다. 구속 받는 것이 없다보니 금방 나태해져 버렸고 어느 순간 저는 할 일이 없어서 빈둥거리는 ‘백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산티아고 여행]

 

 

산티아고 걷기여행

그럴 즈음 아내가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로 걷기여행을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보기에 백수로 빈둥거리는 제 모습이 본래의 제 모습은 아니라고 여겼던 듯합니다. 그리고 저 또한 점점 무뎌지는 제 생활에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차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그 여행을 가기로 했고 2011년 초봄에 산티아고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 산티아고 여행은그 동안 경험했던 편안하고 안락한 여행이 아니었습니다. 한 달 넘게 800Km를 걸어서 가야 하는 아주 고된 여정이라서 여행이기보다는 오히려 고행이고 수행이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그 길고 어려운 여정 속에서 부부의 정을 좀 더 키울 수 있었고, 저 개인적으로는 걷는 중에 깊은 사색을 하면서, 과거 직장생활을 할 때 그저 가족과 직장에만 ‘충실한 삶’을 살았던 저와 퇴직을 한 후의 저는 삶의 내용이 달라야 하지 않을까를 생각하게 되었고, 마침내 이제 남은 삶은 좀 더 ‘가치 있는 삶’이 되어야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고, 그런 삶은 바로 ‘남을 위해 사는 삶’ 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삶의 방향을 정립할 수 있었습니다.

 

[출판한 책 – 산티아고 길의 소울메이트]

 

 

제가 이 여행에서 얻은 이와 같은 내용들은 제게는 너무나 소중한 의미가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글로 정리하기 시작했고 결국 책으로 출판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 책은 지금도 <산티아고 길의 소울메이트>라는 제목으로 시판 중입니다. 그런데 이 책 출판은 퇴직 후의 제 삶의 내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던 책 출판은 제게, ‘무엇이든지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제 안에 숨겨져 있던 글 쓰는 재능을 저 스스로가 발굴하게 되면서 ‘제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은 저도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크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였습니다.

 

 

호스피스 환자 돌보기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은 <호스피스 환자 돌보기>이었습니다. 아내가 오래 전부터 활동하고 있던 서울성모병원에서의 자원봉사활동을 소개 받고는 저도 그 병원 호스피스병동에서 말기암환자를 돌보는 활동을 바로 시작했고 그이후 지금까지 5년 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죽음이 임박한 말기 암환자들의 몸을 씻겨 주거나 따뜻한 말로 대화를 나누어 주면, 곧 환자나 그 가족들로부터 진심에서 우러나는 ‘고맙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러면서 저는 ‘그래, 인생은 이렇게 남으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들으며 사는 거야’라고 생각하게 되며 벅찬 뿌듯함을 느끼곤 합니다. 또한 수많은 죽음을 대하면서 죽음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게 되고 그것이 결국 제 생활을 좀 더 성숙하게 만든다고 느끼게 됩니다.

 

 

 

 

미술관 도슨트 활동

다음으로 제가 찾은 일은 <도슨트>입니다. 도슨트는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을 관람객들에게 설명해 주는 사람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알게된 ‘서울노인복지센터’의 도슨트양성과정 교육에 참가해서 교육을 마치자마자 서울대학교미술관에 도슨트를 신청해서 지금까지 3년째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활동을 통해서 저는 배우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제게는 전혀 생소했던 미술이라는 분야, 그것도 누구에게나 어렵다는 현대미술을 접하면서, 기발하면서도 깊이 있는 작가의 생각을 이해하고 작품 속에 내재한 의미를 파악해서 관람객들에게 그 내용을 전달해 주는 기쁨은 그야말로 ‘논어’에서 얘기하는 ‘공부하고 배우는 즐거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작년 말에는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의 도슨트 자격도 획득했습니다. 거기서는 금년 초에 한 번밖에 활동하지 못 했지만 앞으로는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할것입니다. 또 장기적으로는 이 도슨트 활동을 하면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미술관련 책을 집필할 생각도 있습니다.

 

 

 

중국어강사 활동

가치 있는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은 또 있습니다. 저는 지금 ‘중림종합사회복지관’에서 초급 및 중급 <중국어 강사>를 하고 있습니다.

중국어 공부는 제가 퇴직 후 1년쯤부터 심심풀이로지역 복지관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자세대라서 그런지 공부를 할수록 재미가 붙어서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3년쯤 공부한 후, 제 수준이 이 정도면 기초 정도는 가르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시점에 강사 봉사자로 등록해 두었습니다. 그러다가 복지관에 초급반 강사의 기회가 생겨서 작년 2월부터 지금까지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데, 금년 초부터는 중급반 강사까지 추가로 맡고 있습니다. 강사 활동은 꽤 재미있습니다. 어르신 학생들의 실력이 조금씩 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 그분들의 뜨거운 학구열을 대하면서 미래의 제 모습도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한편 강사활동과는 별도로 저는 제 나름대로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그 결과 작년 4월에 HSK 5급을 취득했고, 앞으로도 계속 공부해서 내년에는 최고수준인 HSK 6급에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그런데 제 이런 활동들은 돈벌이가 아닙니다. 순수한 자원봉사입니다. 만일 제가 돈을 받는다면 그 일의 가치는 제가 받는 돈만큼의 수준으로 제한될 것입니다. 그러나 돈을 받지 않는 그 일의 가치는, 그 가치가 얼마이든 간에, 저 스스로가 부여하는 가치만큼 무한히 높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제 생각이 제가 추구하는 ‘가치 있는 삶’의 또 다른 방향타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 산티아고 여행

제가 이런 생각으로, 이런 활동을 하는 중심에는 항상 제 아내가 있습니다. 금년에 지난 9월20일부터 10월 30일까지 우리 부부는 또 다시 스페인 산티아고 걷기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이번에 걸은 길은 5년 전에 갔던 길보다 훨씬 어려운데다 거리도 약 1,000Km로 더 길고 힘든 길이었습니다. 이 또한 아내의 제안으로 이루어졌는데, 언제나 아내의 제안에 따라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고, 거기에 발맞춰 저는 삶의 가치를 찾아 또 다른 미지의 세계로 나아갈 것입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50+의 문화, 사회참여활동 등 다양한 활동사례를 발굴하고 50+세대의 활동이야기를 알리고자 ‘2016년 50+스토리 공모전’을 진행하였고 순차적으로 수상작을 선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