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평소에 듣던 노래와는 아주 다른 노래를 읊조리시곤 했다. 어린 마음에도 할아버지의 노래가 멋있어 보였다. 아버지께 물으니 ‘시조창’이라 하셨다. 할아버지의 노래는 아마도 “청산~~리~~~ 벽계~~수~~야~~”나 “태산~~이~~~ 높다~~하~~~되~~” 같은 시조가 아니었을까. 세월이 흘러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서야 나는 할아버지의 노래를 녹음이라도 해둘 것을 하고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할아버지의 노래는 그렇게 내 마음에 남았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직장을 다니며 아이를 키우던 바쁜 현실 속에서 할아버지의 노래는 점점 희미해져 갔다.
그러다 아이들 어렸을 때 종묘대제에 갔다가 종묘제례악의 웅장한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다. 급기야는 2015년, 한불수교 130년을 기념해 프랑스에서의 공연을 앞두고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린 종묘제례악 오픈 리허설 연주 때 나도 모르게 가슴 뭉클해지며 눈물이 났다. 가만 생각하니 할아버지도 이런 노래를 부르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종묘제례악을 좋아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궁중음악과 정가도 내 마음에 들어왔다.
넓은 무대 위에 단아하게 앉아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여성 연주자, 군더더기 없는 담백함과 기품이 느껴지는 남성 연주자의 정가를 들으며 나도 저런 노래를 배우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되었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했던가? 드디어 올해 3월, 김영기가곡전수관에서 시행하는 일반인 대상 가곡 강습회에 수강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번 강습을 듣기 전에는 나도 정가(正歌)가 뭔지 정확하게 몰랐다. 그래서 내가 부를 노래의 정체라도 알아보자는 마음으로 인터넷의 바다로 뛰어들었다. 인터넷과 김영기 선생님께 들은 정보를 정리해보면, 정가(正歌)는 ‘바른 노래’라는 의미의 우리 고유 음악으로 시조(時調), 가사(歌詞), 가곡(歌曲)이 이에 속한다. 조선 시대에는 정가라는 개념으로 불리지 않고 각각의 장르로 존재했지만 1960~70년대에 정가라는 명칭이 등장하면서 이 셋을 포함하게 되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민중의 음악인 판소리나 민요가 ‘소리’라 불리는 데 반해 정가는 ‘노래’로 불렸을 뿐만 아니라 선비들이 즐긴 음악이다. 정가는 거문고나 가야금, 해금, 대금, 피리 등의 관현악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정가의 세 장르 중에서 시조와 가곡이 많이 불린다. 그 가운데 가곡은 1969년 국가중요무형문화재 30호로 지정되었고 2010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가곡은 고려 시대부터 이어져 온 노래로서 “동창이 밝았느냐~~” 같은 시조를 5장 형식에 맞춰 길게 늘여 부르는 노래이다. 가곡은 판소리, 범패(불교음악)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성악곡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선구자>나 <그리운 금강산> 같은 가곡은 1920년대부터 시작된 예술 가곡으로 서양식 발성으로 노래한다는 점에서 앞의 가곡과는 다른 음악이다.
내가 이번에 가곡을 배운 김영기가곡전수관을 이끄는 김영기 선생님은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 보유자로서 중학교 3학년이던 1973년부터 가곡 전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월하 김덕순(月荷 金德順, 1918~1996) 선생에게 가곡을 전수받았다. 대학에서는 거문고를 전공하고 KBS 국악관현악단 거문고 부수석으로도 활동한 선생님은 한 인터뷰에서 가곡에 대해 “클래식 중 클래식”이라 말한다. 김영기 선생님은 “가곡이 변화가 적어 지루하고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고급스러울 뿐만 아니라 듣고 나면 그 편안함에 매료될 거”라 덧붙인다. 또한 “단조로움과 절제미가 강조되지만 내재된 감정을 표출하면서 느끼는 깊이가 스스로를 더욱 성숙하게 만든다.”며 정가의 자기 수양의 미덕을 강조한다. 노래를 길게 늘여 부르는 순간 느껴지는 유장한 선율이 아름다운 정가. 그래서 정가를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노래라고 생각한다는 김영기 선생님의 정가 예찬을 듣다 보면 왜 조선의 선비들이 정가를 애창했는지 알 것 같다.
일반인 정가학교 수료발표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가곡 예능보유자 김영기 선생님
김영기가곡전수관은 가곡을 널리 알리고자 마포구, 문화재청과 손잡고 연 2회 일반인 정가학교(초급, 상급)와 어린이 정가학교를 무료로 연다. 김영기 선생님과 이수자들은 오랜 경험과 사명감으로 낯설어서 더욱더 어렵게 느껴지는 정가를, 초보자도 따라 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나도 2019년 3월부터 6월까지 12주 동안 시조, 여창가곡, 남창가곡 각 한 곡씩 모두 세 곡을 배웠다. 수강 마지막 주엔 수강자가 무대에 올라 가곡 한 곡을 부르는 발표회를 가졌다.
일반인 정가학교 수료발표회에서 노래하는 수강생들
개강 첫날, 생전 처음 평시조를 배우던 그 날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기초도 없던 내가 선생님이 이끄는 대로 따라 했더니 어느새 평시조 한두 소절을 대충이나마 흉내 내고 있었다. 평시조를 배우며 우리 할아버지께서도 이렇게 노래를 하셨겠구나 생각했다. 이번에 배운 노래 가운데 나는 남창가곡인 편락 “나무도~”가 가장 마음에 든다. 여창가곡의 기교 넘치는 노래에 비해 묵직하고 힘이 넘치는 “나무도~”의 음률이 좋다.
우리 반에서는 가야금을 전공한 딸이 친정엄마와 함께 가곡을 배웠는데 이따금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따라오곤 했다.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고 몇 가지 질문을 했다. 토요일에 열리는 어린이 정가학교에서 정가를 배운다는 4학년 아이에게 정가의 좋은 점을 물으니 뜻밖에도 “미래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답한다. 아이의 난데없는 대답에 옆에 있던 엄마가 “아이가 집에서 꾸준히 연습해서 수강생 중에서 중간 정도의 수준은 된다며 아이가 정가를 배우러 가기 싫다고 하지 않고 열심히 참여해서 대견하다,”고 대답해주었다. 곁에 있던 외할머니도 정가에 대해 “처음에는 가곡이 지루하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배울수록 흥미가 높아지고 처음엔 어려웠던 호흡도 이젠 가사를 음미할 만큼 자연스러워지고 마음도 편안해졌다.”며 가곡 3대 수강생다운 애정을 드러내셨다.
사진 뒷부분의 아이와 젊은 여자분, 그 옆의 중년여성이 가곡 3대 수강생이다 (사진: 김영기가곡전수관)
수강생 대부분이 시작하는 단계라 박자감도 없고 음정도 못 맞추고 헤맬 때 유난히 힘차고 정확하게 노래를 부르는 두 젊은이가 있었다. 그중 한 젊은이는 대학에서 타악기를 전공하는 남학생이었고 또 한 사람은 작곡을 전공하고 프랑스 유학을 앞둔 음악도였다. 수료식 날 발표회를 마치고 뒤풀이를 하는 자리에서 작곡 전공자에게 소감을 물으니 자신은 서양음악 전공자라 박자나 음정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정가를 배우기가 처음에는 무척 힘이 들었노라 고백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께 하나하나 묻고 꼼꼼하게 기록했단다. 시간이 흐르고 적응을 하니 정가가 정말 매력 있는 음악이라며 자신이 앞으로 작곡을 할 때 서양 음악과 우리 음악을 접목해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드러냈다. 음악 전공자들은 역시 우리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12주를 배워도 한결같던 그 음들의 미세한 차이를 느꼈다니 그런 귀를 가져보지 못한 나로서는 절대음감이라는 게 그런 것이구나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곳에서 3학기를 끝낸 상급반인 남자분(73세)은 정가를 배운 계기를 묻는 질문에 자신은 대금을 연주하는데 가끔 정가 반주를 하다 보니 정가의 고졸한 느낌이 좋아 배우게 되셨다 한다. 그는 대금, 시조, 가곡 등 우리 음악과 악기를 배우고 연주하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하다, 하셨다. 격조 높고 품위 있는 가곡이 좋다는 그는 여태까지 가사 4곡, 가곡 6곡을 익혔다고 하셨다, “일반인이 정가를 배우기도, 배울 곳을 찾기도 어려운데 이곳에서는 집중해서 배우고 익힐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며 가곡과 우리 음악에 대한 예찬을 이어가셨다.
김영기가곡전수관에서 만난 우리 모두는 삶의 배경도 나이도 추구하는 것도 다를 것이다. 하지만 정가를 배우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13주를 함께했다. 그 과정 또한 쉽지 않아서 우리 반의 서른 명 수강생 중 수료자는 많지 않았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나무~도 바으히이~돌도우 없느은~”이라는 편락(編樂)이 입에 맴돈다. 12주를 배웠지만 세 곡 모두 완벽하게 부를 만큼은 익히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다가오는 9월에 시작하는 가곡 초급반 강습을 또 신청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배우면 귀도 트이고 입도 열리게 되려니 기대한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을 믿고 우직하게 한번 따라가 볼 참이다.
김영기 선생님의 지도 아래 가곡을 배우는 수강생들 (사진: 김영기가곡전수관)
프랑스에서는 악기 하나쯤 다뤄야 중산층에 든다는 언론 보도를 본 적이 있다. 중산층에 대한 기준이 경제력보다는 ‘삶의 질’에 집중하는 프랑스인들의 생각이 반영되었을 것이라 추측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프랑스인의 기준에 걸맞은 중산층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노래 한 곡쯤은 부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다.
최근 들어 몇 년 동안 세상을 둘러보니 놀 거리, 즐길 거리가 무궁무진하다. 굳이 많은 돈을 들이지 않아도 약간의 정보력과 발품을 팔 의지가 있다면 즐겁고 신나는 나날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부추기는 뒤늦은 쾌락주의의 발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