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관계는 과감히 정리하는 것이 상책이다

 

 

33년 만에 초등학교 동창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동창생들은 그동안 얼마나 변했을까. 첫 모임 때에는 30명가량이 나왔는데, 다시 각자 아는 동창생들에게 연락을 해서 모일 때마다 인원이 늘었다. 나중에는 전체 동창생 500명 중 200명가량이 모였다. 그런데 덜컥 내가 동창회장으로 추대되었다. 재학 시절 전교 회장을 한 이력이 있어 봉사의 책임감도 느끼긴 했다. 이때부터 전체 모임, 각 지역 모임, 임원 모임, 경조사 모임 등 만남이 잦아졌다. 우리 모임을 계기로 후배들까지 동창회를 결성하다 보니 자동으로 총동문회장까지 맡게 되었다.

 

그렇게 동창회장을 5년이나 했고, 모교에 장학금을 전달하고 정기적으로 동창회보를 만드는 등 보람도 많았다. 이때 아내가 경고장을 날렸다. “동창회장을 계속하려면 이혼하고, 이혼하기 싫으면 동창회장을 그만두라”는 것이었다. 매일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오다보니 가정에 너무 소홀했던 것이다. 그래서 과감하게 동창회장 자리를 내놓았다. 할 만큼 했기 때문에 그만둔다 해도 책임 회피로 비난받을 처지는 아니었다.

 

중·고등학교 모임도 마찬가지였다. 대학교, 대학원 동창회도 그랬다. 필자는 활발한 사회생활을 하면서 새로 사귄 사람들도 많다. 휴대폰에 지인들 전화번호가 1000개가 넘는다. 하지만 발이 넓은 만큼 관계도 넓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관계에 소홀하다고 비난을 받을 소지가 크다. 무엇보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아 무리가 왔고 이때부터 관계를 어느 정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댄스 동호회도 그랬다. 영국으로 댄스 유학을 갔다가 돌아오니 주변에서 댄스 동호회를 만들자며 모여 들었고 회장으로 추대돼 5년간 회장을 역임했다. 그 동안 이 동호회를 주 5회 강습, 온라인 회원 3000명이 넘는 동호회로 만들어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열심히 할수록 시간 투자는 불가피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갈등도 많았다. 개개인의 인성을 보기보다 동호회 확장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사고를 치는 회원들도 꽤 있었다. 또 5년 동안 회장으로 있는 동안 적도 많이 생겼다. 많은 사람을 이끌고 나가려면 원칙이 있어야 하는데 이 원칙에 충실하다 보면 비정하고 독선적이라는 비난을 듣는 일이 많아진다.

 

한번은 동호회 운영 방침에 불만이 많은 회원 한 명과 술자리를 같이했다. 설득해서 화해를 하고 싶었던 자리였다. 그러나 설득도 안 되고 화해도 안 됐다. 필자는 이러면 헤어지는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홧김에 필자가 탈퇴를 하든지 그 회원이 탈퇴를 하든지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하고 말았다. 다음 날 인터넷 카페 게시판에는 필자가 “탈퇴하라”는 말을 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그 회원이 몰래 대화 내용을 모두 녹음까지 했다는데 “탈퇴하라”는 말만 강조해서 올린 것이다. 그 일로 필자는 곧바로 회장 자리를 내놓고 초야에 묻혔다.

 

돌아보니 어떤 자리이든 5년은 길다는 생각이 든다. 3년 정도가 적당하다. 열심히 하다 보면 점점 빠져나오기가 힘들어진다. 그럴 때는 과감히 정리하는 것이 상책이다. 새로운 무대가 또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 핸드폰 분실을 핑계로 과거의 전화번호와 명단을 다 잊고 새로운 사람들로 명단을 짜고 싶을 때도 있다. 꼭 만나야 할 사람들은 다시 연락이 오게 돼 있다.

 

 

 

강신영 동년기자 bravopress@e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