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급식소에서 노숙자나 저소득층의 사람들에게 일반적인 음식이 아닌, 고급 음식을 요리하는 자원봉사를 하며 인생 2막을 보람있게 살아가는 사례를 소개한다. 화제의 주인공은 워렌 슐러라는 74세 남성이다.
요리하는 워렌 슐러
미국 뉴저지의 킨즈버그에 지역 재생 센터가 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곳이다. 그 사업 중의 하나가 무료급식이다. 이곳에선 집이 없거나 소득이 낮은 사람들에게 매일 아침과 점심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한 달에 평균 4,000인분 정도 제공한다. 매일 식사하는 인원은 60~70명 정도이다.
워렌은 이곳에서 매주 화요일 점심을 조리하여 제공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화학 교사가 제빵, 요리 교육을 하다
워렌은 처음부터 요리 교육을 하게 된 것은 아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뉴욕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화학을 가르쳤다. 1975년 뉴욕시 재정이 파탄 났을 때, 뉴욕시는 2만 2천 명의 교사를 해고하였다. 워렌의 학교에서는 가정 과목 선생님은 해고되었지만, 워렌이 담당한 화학은 필수 과목이라 해고를 면했다.
그런데 뉴욕시는 남아 있는 교사들에게 현재 가르치고 있는 과목 이외의 다른 것을 할 수 있는지를 조사했다. 마침 워렌은 대학 시절, 학생 식당과 브롱스의 빵집에서 제빵 일을 했던 경력이 있어서 그것을 적어냈다. 시에서는 제빵 과목을 새로 만들고 워렌이 가르치도록 조처를 했다. 그래서 워렌은 고등학교에서 화학과 제빵을 가르치며, 14년을 더 근무할 수 있었다.
교사로 근무 중, 1989년에 워렌은 리차드 그로스만이라는 재력가를 만나게 된다. 리차드는 '요리기술 프로그램을 통한 직업'이라는 교육과정을 만들고 있었다. 그는 훌륭한 요리 강사가 필요했다. 리차드는 워렌을 만나 이야기해보고는 워렌이 마음에 들었다. 자기가 돈을 댈 테니 제대로 된 요리 공부를 하는 것이 어떠냐고 워렌에게 제안했다. 워렌은 이를 승낙하고, 2년 동안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뉴욕의 맨해튼에 있는 프랑스 요리학교에 다녔다. 그 후, 고등학교에서는 제빵이 아니라 요리 과목을 가르치게 되었고, 화학보다 요리를 더 많이 가르치게 되었다. 말하자면, 화학 선생님에서 요리 선생님으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학교에서도 소속 부서를 과학부에서 기술직업부로 옮겨주었다. 부서를 옮길 때, 과학부의 책임자가 한마디 했다. “훌륭한 화학 교사를 한 사람 잃게 되었다. 그는 도넛을 만들러 간다.”
요리가 주 과목이 되자, 워렌은 요리의 폭을 넓히기 위해 유명한 미국 요리학교에서 더 공부했다. 그리고 기본에 더 충실하고자 뉴욕 레스토랑 학교에도 다녔다. 또 런던에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요리학교인 '꼬르동 블루'에 1주간 연수도 다녀왔다. 57세인 2002년에 학교를 떠났다.
학교를 떠난 후에는 리차드 그로스만이 운영하는 요리 직업인 양성 과정에서 가르쳤다. 67세인 2012년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무료급식소에서 조리 봉사활동
은퇴한 후 신앙생활과 취미생활을 하며 쉬고 있었다. 그런데 2012년 허리케인 샌디가 미국의 동부 해안 지역을 강타하여 뉴저지의 킨즈버그 지역 수재민들이 음식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접했다. 기부하고 싶은 사람은 기부하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바로 냉장고에 있는 식자재를 전부 꺼내, 조리해서 수재민들에게 제공했다. 그리곤 월요일마다 조리 자원봉사에 참여했다. 그런데 화요일에는 조리할 사람이 없어 워렌이 화요일 조리 담당으로 배정되었다. 자원봉사를 하던 게리와 팜에게 함께 하자고 제의했고, 두 사람도 흔쾌히 승낙하였다. 그들은 지금까지 7년간 줄곧 음식을 조리하는 봉사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무료급식소에서 식사하며 친교를 하는 사람들
워렌은 화요일에 조리하기 전, 어떤 요리를 할 수 있는지를 확인한다. 우선 일요일에 미리 주방에 와서 냉장고 안에 어떤 식자재가 들어 있는지 확인한다. 그리곤 어떤 음식을 만들지 고민한 다음 메뉴를 결정한다. 그런 다음 급식소 책임자에게 보고한다.
가끔 책임자가 돼지고기 재고가 많은데 좀 처리해달라고 하며 메뉴를 바꿔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메뉴를 바꾸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워렌이 결정한 메뉴대로 음식을 조리한다. 아침 9시 30분부터 세 사람은 음식 준비를 시작하여 점심시간에 제공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어려운 형편에 처한 사람들이 무료급식소의 단골손님이다.
예를 들면, 빌리라고 하는 단골이 있는데, 원래 페인트 일을 하는 기술자였다. 2007년 자기 트럭이 그를 덮치는 사고를 당하여 불구가 되었다.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이곳이 없었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거라고 한다. 단순히 음식을 무료로 먹을 수 있는 차원을 넘어, 친절하고 따뜻한 분들이 위로하고 격려해줘 삶의 의욕을 얻을 수가 있다고 좋아한다.
빌리의 경우에는 일할 수가 없어 여기서 계속 식사를 해결하곤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2, 3개월 정도 신세를 지다가 다른 거주할 곳을 찾거나 일자리를 구하여 옮겨간다.
워렌이 만드는 음식은 여타 무료급식소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일반 음식이 아니다. 고급 음식이다. 워렌은 여기 오는 사람이 끼니를 해결하는 수준의 음식만 먹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비록 무료급식소의 신세를 져야 하는 어려운 형편이지만 그들도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쁨을 가져야 하고, 자기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여기 손님들은 평생 이런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어 정말 맛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하고 매우 감사해한다.
사람들은 이런 음식을 레스토랑에서 먹으려면 최소 25달러 내지 30달러는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워렌은 평범한 식자재를 사용하여 맛있는 음식으로 만들어내는 솜씨가 탁월하고 대단히 창의적이다”라고 감탄한다.
워렌의 제일 큰 보람은 자기의 고급 요리로 많은 사람이 음식을 맛있게 먹는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것이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를 할 때, 본인이 제공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오히려 그들로부터 얻는다고 기뻐한다.
워렌이 단순히 여기서 요리만 하는 것은 아니다. 더 많은 사람에게 좋은 음식을 제공할 수 있도록 이 무료급식소를 확장하는 기금 모금 운동에도 앞장섰다. 기부해준 사람들에게 일일이 감사 편지를 손수 써 보내기도 한다.
그는 우선 주방 시설을 확장하여, 더 많은 사람에게 음식을 제공할 계획이다.
그리고 지역 주민들에게 요리 강습을 하여 주민들이 직접 자기 집에서 제대로 된 고급 요리를 해먹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이 지역은 가난한 지역이라 대부분 냉동식품을 전자레인지로 데워 먹는데 급급한 실정이다. 맛있는 음식을 직접 조리해서 먹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가르쳐 주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그리고 본인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여기서 계속하여 이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출처: secondactstorie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