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의 외도는 정도를 위한 디딤돌이다
생각하기에 따라 외도란 정도의 차원을 높여주는 디딤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인간은 정도를 걷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외도를 통해 확실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탄성을 넘어서는 외도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르지 않은 길을 가다 보면 어느 순간 잘못된 길임을 깨닫게 되고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다. 충동적으로 평소 해보지 않던 일을 해봄으로써 지금까지 자신이 해온 일들이 얼마나 내가 잘할 수 있고 즐거운 일이라는 사실을 깨우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인간이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 중 하나가 ‘외도’ 아닐까? 그것은 마치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제목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처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 동경 같은 것이 항상 마음속에 내재돼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탄의 유혹에 빠진 이브와 아담처럼 삶의 곳곳에서 인간은 그런 유혹을 받으면서 사는 존재인 것 같다.
필자에게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세 가지가 있다. 인생관, 직업관 그리고 결혼관이다. 필자에게는 필자만의 그릿(Grit)이 있다. 그중에서 결혼관을 소개하면, 선택을 할 때 최대한 신중을 기하되 한 번 결혼하면 그 결혼에 대해 책임을 지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배우자에게 부족한 면이 있다면 좋게 만들어줘야 한다. 이러한 삶은 결코 쉽지 않지만 결혼할 때 대부분의 부부는 그렇게 사랑하고 노력하며 살 것을 약속한다. 이러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면 실존주의 철학자로 잘 알려진 사르트르처럼 계약결혼을 해야 하지 않을까. 결혼할 때 약속한 것들을 서로 이행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졸혼이나 이혼이라는 것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이는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사랑과 용서가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인간은 실수를 행하기 마련이고 신은 이를 용서한다”는 말이 있다. 한정된 지능을 지닌 인간이 무한한 변수가 작용하는 이 세상을 사는 과정에서 한 번쯤 실수나 외도는 있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존재하는 말이 아닐까? 그래서 성당에서는 고백성사를 통해 신부님이 신자들의 실수나 지은 죄까지도 용서를 해주는 것 같다. 물론 보속이라는 속죄의 과정이 필수적으로 따르기는 하지만. 따라서 배우자가 외도나 실수를 했을 때도 한 번쯤은 용서해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실수는 한 번으로 끝나야지 두 번 다시 반복돼서는 안 된다.
나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이혼한 사람에 대해서는 좋지 않게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그만한 사정이 있어 어찌할 수 없이 선택한 예외적인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대동소이한 삶을 살고 있기에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노력하면 문제는 극복이 된다고 본다.
우리는 정도와 원리원칙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외도를 했을 때도 한 번쯤은 정도를 걷기 위한 디딤돌로 이해하고 용서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필자의 아내는 필자가 너그러운 사람인 줄 아직 모르는 것 같다. 마치 단 한 번의 실수나 외도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그런 사람으로 볼 게 분명하다. 이제 필자의 아내가 이 글을 읽는다면 다소 그런 편견이 바뀔 수도 있을 것 같다. 여기서 한 번쯤의 외도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외도가 아닌 일상에서의 탈출, 보다 확실한 정도를 걷기 위한 한 번쯤의 일탈이라고 해두면 어떨까?
글 신용재 동년기자bravopress@e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