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근에 구입한 책의 제목은 무엇인가요?

2. 그 책은 어디에서 구매하였나요?

3. 그곳에서 구매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역의 문화예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인 네트워크 파티에 참석한 적이 있다.

비끗한 인생(非예술인, 非전문인, 非직업인 등), 방구석 음악가, 마켓을 핸드메이드하다, 예술×교육人세탁소, 골목에서 book적이다, 예술×문화×교육.

이름만 들어도 재미있는 상상이 되는 테이블 중에서 ‘골목책방’에 자리를 잡았고 함께 둘러앉은 사람들과 위의 질문을 나눴다.

 

  

 

사람들의 답변을 보니 알라딘, 교보문고, 예스24, 총알배송, 쿠폰, 중고 판매, 할인, 적립금, 이벤트… 나름 책을 사랑하고 골목책방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겸연쩍어하며 털어놓은 답변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1. 밭매다 딴짓거리

2. 고창 책마을해리

3. 탐방 가서 그곳에서 출판된 책이어서

 

으쓱댈 만한 대답이었을까? 그 한 권은 그랬지만 나도 평소엔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내가 사는 지역엔 요즘 유행한다는 골목책방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에서 교육 특구로 꼽히는 지역인데도 말이다.

엄마들이 교육에 신경 쓰느라 책이나 책방엔 관심이 없나?

아니면 걸어서 10분 거리에 크고 작은 공용 도서관이 있어 굳이 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일까? 그러면서 이야기는 골목책방 혹은 작은 책방이 필요한 이유, 장점으로 이어졌다.

 

우선 작은 책방은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세련되어서, 촌스러워서, 작아서, 귀여워서, 재밌어서, 옛날 생각이 나는 분위기라서, 고리타분해 보여서, 예뻐서, 겉모습만으로도 찾아가 볼 이유는 너무나 많다. 그래서인지 요즘 핫플레이스로 뜬 책방을 데이트 코스 삼아 들어와서는 책방을 배경으로 사진만 찍고 나가버리는 이들도 부지기수란다.

 

 

마포구 성산동의 [조은이책]

 

작은 책방은 책방 주인의 큐레이션이 있어 취향이 맞으면 책을 고르는 수고를 덜 수 있다. 하루에도 수많은 새 책이 쏟아져 나오다 보니 사람들이 책을 선정할 때 의지하게 되는 것은 광고와 책 관련 기사, 베스트셀러 목록 등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책들이 이와 같은 수혜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돈을 쏟아 부어 광고를 할 수도, 입소문을 기대할 수도 없는 수많은 책 가운데 어떤 책들은 작은 책방 주인을 만나 빛을 보기도 한다. 독자로선 세상에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 했던 책을 만날 기회를 얻는 것이다. 이런 책도 있구나, 하는 발견하는 재미와 함께 취향을 넓혀 줄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음은 덤이다.

 

불광동의 [한평책빵] ‘그림의 영토’ 큐레이션

 

또한, 작은 책방에서는 책과 관련한 문화 행사가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가장 많은 것이 독서 모임이다. 하나의 책을 그 자리에서 같이 읽기. 같은 책을 미리 읽어 와서 토론하기, 서로 다른 책을 읽고 나누기, 책 주제로 자기 경험 나누기 등 책방만큼이나 독서 모임 성격도 제각각이다. 그리고 작가를 초청하여 작품 얘기를 나누는 북토크도 성행 중이다. 대형 서점에서도 북토크는 자주 열리는데 큰 회의장에서 열리는 반면, 작은 책방에서 열리는 북토크는 대개 오붓하고 가까운 사람들끼리의 책모임 시간이 되곤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은 책방의 경우, 사람과의 소통이 있다. 계산대에서 “봉투 필요하세요?” 외엔 주고받을 말이 없는 관계가 아니라 주인장과 눈 맞춤이 되고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때에 따라선 소소한 대화를 주고받기도 하다가 친구가 되기도 한다. 사람에 대한 경계가 낮은 곳, 가끔 내 이름을 알려줘도 되는 곳이다. 물론 서로 무례하지 않을 관계의 거리가 유지될 때 얘기다.

 

물론 이런 작은 책방의 매력이 동전의 양면처럼 불편할 때도 있다. 작은 책방이 단골이 되면 익명으로 숨는 것이 어렵다.

또한, 작은 책방에선 책만 둘러보거나 뒤적이다 그냥 나오기가 어렵다(어려울 것 같은데 그런 사람이 아주 많다고 한다). 그런 점에선 대형 서점이 편할 때가 있다. 큰 책방에선 책을 뒤적일 때 미안함이 덜하다. 때론 그 편리함을 남용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책은 그대로 반품되어 출판사에 손실을 입히기도 한단다.

대형서점이 편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택배 서비스를 이용하여 중고로 되팔기 쉽다는 답변도 있었다. 집 안에 일정량 이상의 책을 두는 것이 부담스러워 깨끗하게 읽고는 바로 중고로 내놓는단다.

내 경우, 책을 사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다 읽고 난 후 집에 쌓이는 게 싫어서 웬만하면 빌려 보곤 한다. 그런데 최근에 작은 책방에 드나들면서 책방의 분위기를 즐기기만 하는 것이 미안하고, 또 뒤적이다 보면 읽고 싶어지기도 해서 매번 책을 사 들고 나오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머리맡엔 늘 책이 쌓이고 책장은 비좁아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던 차에 문득 발상의 전환을 했다.

책을 가볍게 소비하는 것이다. 책에 대해선 많은 사람들이 경외심까진 아니더라도 소중하게 다뤄야 하는 것, 함부로 대하면 안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랬다. 책에 밑줄 긋기 같은 건 아예 안 하고―이는 오랜 습관이다. 교과서를 포함해 책에 낙서나 줄 긋는 것을 싫어한다―다른 물건에 비해 책을 버리거나 훼손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었다. 그런데 달리 생각해보면 내용이 귀한 것이지 그 자체가 귀중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또한, 필요하면 쉽게 구할 수 있으니 다 읽거나 더는 읽지 않게 된 책은 책장에 모셔둘 일이 아니라 다른 주인을 만날 기회를 주면 어떨까 싶다. 곳곳에 있는 공유 서가에 갖다 두어도 되고, 주변 사람에게 건네도 좋을 일이다.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책, 내가 좋아서 밑줄 그은 구절에 그 누군가 공감한다면, 아니면 다른 구절에 눈길을 준다면 그 또한 좋지 않을까?

 

 

50+중부캠퍼스 지하 모임방 앞 공유서가

 

"돈으로, 수치로써 매길 수 없는 경험을 책방을 하면서 정말 많이 했다. 적자와 흑자를 떠나서 돈으로 얻을 수 없는 것들을 얻었다는 점에서 저는 성공한 사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모든 것의 기준이 돈이기 때문에 제가 처음에 책방을 한다고 했을 때도 돈을 못 벌 일인데 왜 하느냐는 말을 들었던 거고. 돈만으로 무언가를 전부 평가하는 사회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책방무사의 운영 방식도 그런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 같다."

- 손화신 기자 ‘별들의 책장’, 2019년 8월 30일 자 「오마이뉴스」 기사

 

책방 주인이 책방을 통해 이런 경험을 얻었다면 고객으로서 나도 얘기하겠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어서 작은 책방에 간다고. 작은 책방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면, 그리고 이 책방들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답은 자명하다. 책방이니 책. 을. 사. 면. 된. 다.

 

요즘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하면 당일 배송, 할인과 적립, 사은품까지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사적인서점에서 사고 싶어요”라는 말과 함께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불편을 감수하는 손님이 꾸준히 늘고 있다. 똑같은 책도 다르게 사는 재미를 알아버렸다고, 이 번거로움이 참 좋다고 말하는 손님, 사적인서점이 자신에게 바람직한 공간이 되어 주었으니 나도 이 서점에 바람직한 손님이 되겠다고 응원하는 손님, 이렇게나 든든한 손님들이 있어서 매일매일 서점을 꾸려갈 힘을 얻는다.

- 정지혜,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_한 사람만을 위한 서점』 16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