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티 친 여사는 어린 시절, 문화혁명의 표적이 되어 홀로 길거리에 버려졌다. 온갖 고초를 겪고 어렵사리 중국을 탈출하여 미국으로 망명했다. 미국에 와서 안정을 되찾고는 어린 시절 자신이 경험한 것과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삶을 살기로 하였다.
미국에서 받은 환대와 친절, 행운에 대한 보답과 감사의 표현으로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 급식을 시작하여, 캘리포니아 유레카 지역에서 정신병자, 장애 재향 군인, 도망자 및 마약 남용자를 포함한 수천 명의 노숙자를 돕고 있다.
2013년 베티 콴 친 노숙자 재단(Betty Kwan Chinn Homeless Foundation)을 설립하여 가난한 사람들과 노숙자들을 위한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는 베티 친 여사의 사례를 소개한다.
노숙자를 돌보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지만, 마냥 행복한 베티 친 여사
노숙자들을 위한 푸른 천사
베티 친 여사는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다. 노숙자를 돌보느라 그렇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지만 지칠 줄을 모른다. 오히려 행복하다고 한다. 70대의 몸집이 작은 이 여자는 매일 해뜨기 전부터 밤늦도록 캘리포니아 북부 해안을 따라 사는 수백 명의 노숙자를 돌본다. 훔볼트 카운티에서 거의 50년간 살았던 중국 이민자인 그녀는 “누군가가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제 나갈 시간이다”라며 매일 아침 일찍부터 서두른다.
매우 이른 시간에 식사 준비를 시작한다. 온종일 푸드 트럭으로 11곳으로 옮겨 다니며, 수백 명의 노숙자에게 음식을 제공한다. 그녀는 먼저 그들과 개인적인 친분을 맺는다. 그런 다음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도와 드릴지를 물어본다.
그녀는 거의 40년 동안 급식뿐만 아니라 노숙자들을 돕는 다양한 비영리 활동을 해왔다. 현재 3개의 노숙자 재활 쉼터를 운영한다. 하나는 가족 전용으로, 종종 여기서 잠을 자며 당직근무도 하곤 한다. 주간에는, 가정이나 혹은 경제적으로 파탄을 겪은 사람들의 직업 훈련, 각종 정보 혹은 인생 전환을 돕는 다양한 지원을 제공한다. 지역 병원 및 이동식 클리닉과 협력하여 의료나 위생 서비스를 제공하며, 가족이 노숙을 겪고 있는 어린이를 위한 방과 후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재활 쉼터 중 한 곳은 마을처럼 만들었다. 노숙자들이 모여 살 수 있는 임시 거처를 컨테이너로 만들다 보니 어느새 작은 마을만한 규모가 되었다. 비상대피소라 불리는 이곳에는 24시간 상주하는 직원과 40여 명의 노숙자가 살고 있다. 최대 90일까지만 머물 수 있다.
석 달 동안 숙식을 제공 받으며 이동식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세탁소, 이발소, 도서관도 있다. 이 기간에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자립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지내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중국에서의 끔찍했던 어린 시절이 노숙자를 위한 삶을 살게 하다
유복한 집안에서 12남매 중 한 명으로 태어났지만, 1960년대 벌어진 문화혁명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미국 시민이자 서양 학문을 가르치던 교사에 종교까지 있었던 어머니는 숙청 대상이 되었고, 가족 전체가 불순분자로 낙인이 찍혔다. 아직 어렸던 그녀도 악마의 자식이라고 쓴 현판을 목에 걸어 다니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혼자 거리에서 방황하다 보니 항상 굶주림에 허덕였다. 고문, 학대, 가족과의 생이별, 버려진 고아, 배신 등... 이 모든 일이 어린 나이에 일어났다. 60년대 후반, 다행히 언니의 도움으로 홍콩을 거쳐 가까스로 미국에 오게 되었다. 미국에 온 후로는 말 그대로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그녀는 “미국 사람들은 나에게 매우 친절했다. 길에서 난생처음 보는 사람들이 날 보고 웃어주는 경험도 처음이었다. 그들은 따뜻한 미소로 나를 맞아 주었고, 그것은 진한 감동으로 다가와 내 가슴 깊이 자리 잡았다”라고 말한다.
모택동의 공포정치 아래에서 수년간 숱한 고문과 학대를 겪은 후, 다시 희망을 준 것은 미국이었다. 다른 형제들도 재회하고, 대학교수와 결혼하여 가정도 꾸렸다.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됐지만 어린 시절 겪은 굶주림과 고통만은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아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반 친구 중 한 명이 집 없이 노숙하는 여자아이였대요. 밥 먹을 때마다 빤히 쳐다보는 게 너무 안쓰러워 자기 도시락을 나눠줬다고 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듣고선 “그래 바로 이것이야. 나는 요리를 할 수 있잖아!”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고 한다. 그 이후 노숙자를 돕기 시작하였다. 비영리단체를 만들어 식사는 물론 의료서비스와 교육도 제공했다. “바로 그렇게 해서 이 일이 시작된 것이다.”라고 말한다.
맺음말
지역사회에서 지지해 주는 사람도 많지만 “왜 쓸데없는 짓을 하느냐?, 동네 분위기 망친다“ 며 반대하는 이들도 처음에는 많았다고 한다. 길을 걷다 고함과 조롱을 종종 듣기도 하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분위기가 바뀌었다. 시와 지역 사회가 지원에 앞장섰고, 처음엔 불만을 제기한 이웃 사장님들 중 한 분이 후원금을 보내면서 “당신이 노숙자들에게 무조건 퍼줘서 오히려 그들을 무력하게 만드는 줄 알았는데 그들을 진짜로 구제했어, 당신은 그들의 인생을 바꿨어! 정말 당신이 하는 일이 놀라워”라며 격려해 준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무급으로 봉사한다. 그러나 “매일 매일이 나를 위한 새로운 날, 나를 위한 새로운 시작이며, 누군가에게 음식을 줄 때, 내 자신이 성취되는 기분입니다. 아울러 나 자신이 과거의 아픔으로부터 치유되지요. 그리고 매일 제 인생의 새로운 다른 단면을 발견합니다.“ 라며 마냥 행복해 한다.
그녀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은 어린 시절 경험한 동병상련의 아픔과 또한 자신을 환대해 준 나라에 대한 보답으로 되돌려 주려는 오랜 열망에서 비롯되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출처 : CNN 2018 H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