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행동과 생각을 글로 적는다는 것. 그 행위 하나만으로도 복잡했던 생각들이 정리되고 새로운 생각이 쑥쑥 자라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성장기에서의 일기라면 자신의 성찰과 정신적 성장을 안겨줄 것이고, 청년기의 일기라면 인생의 혼란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인생의 과도기를 지나 정점에 이른 삶이라면?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인생의 무게를 내려놓거나 새로운 삶의 지표를 세울 수 있게 할지 모른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기록물에도 여러 가지의 형태가 있기는 하다. 개인의 일기는 물론이고 직장인의 업무일지나 연구자의 연구일지와 관찰일지도 있고 작가들의 성찰을 다루는 에세이도 개인의 사유를 다룬 문학적 형태의 기록물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세계 최대의 역사책인 「조선왕조실록」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태조에서 철종에 이르기까지 조선왕조 이십오 대에 걸친 오백여 년의 일들이 기록된 유네스코 등재의 기록유산이다. 앞선 왕이 사망하고 나면 다음 왕이 전 왕대의 기록들을 수집해 사관들로 하여금 편찬토록 했다. 「조선왕조실록」은 왕실과 조정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당시의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는 물론 이와 관련한 제반 제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처럼 「조선왕조실록」이 한 나라의 전반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개인의 기록은 개인의 인생사와 더불어 시대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 물론 공개가 되었을 경우라는 전제가 있을 때만. 아무튼 왕이나 특별한 사람들만 기록물을 남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요즘의 출판계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다룬 에세이가 대세다. 글 쓰는 직업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자신의 일상을 에세이로 펴내는 일은 전 연령층에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특별한 삶을 살지 않아도 우리는 어쩌면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는 일이 SNS를 통해 매우 자연스러워졌다는 사실이다.
내가 아는 번역가 한 분은 자신의 일상이나 생각을 SNS를 통해 기록한다. 일정 분량이 되면 그 기록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는 작업을 한다. 개인 소장용으로 「조선왕조실록」 아니 개인 실록인 셈이다. 글을 다루는 직업을 갖고 있으니 어떤 내용들은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일반 독자와 만나게 되기도 할 것이다.
아무튼 인생의 절반인 오십이 되면 한 번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그 삶을 정리해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삶의 길을 잃었다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고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고 생각한다면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과 후대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려볼 수도 있지 않을까.
자서전을 인생 말미에 쓰기보다는 오십 무렵에 쓸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해 이른 자서전을 쓰기도 하고 남다른 삶의 고비를 경험한 이들은 자신의 체험과 경험을 위로받기 위해 세상에 내놓기도 한다.
개인의 일상을 인생을 기록하는 일은 특정인의 소유물이 아닌 세상이 되었다. 특별한 삶이 아니더라도 타인의 잔잔한 일상을 글로 함께하며 공감하고 위로를 나누기도 한다. 기록함에 있어 혼자만 보는 것이라면 상관은 없겠으나 문제는 나 자신의 일상을 타인과 공유할 때다.
개인의 SNS나 출간 등이 이뤄질 때 말이다.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남이 볼 것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제대로 된 기록은 남길 수 없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친히 말을 달려 노루를 향해 화살을 쏘다가 말이 거꾸러져 떨어졌으나 왕은 다치지 않았다. 왕이 주위를 돌아보고 말하기를 '사관이 이를 알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
사냥을 하다가 말에서 떨어진 태종이 이를 부끄럽게 여겨 사관이 모르도록 하라고 했는데 왕이 지시했다는 말까지 「조선왕조실록」은 친절하게도 적어놓았다. 태종이 직접 적었다면 우리가 이런 상황을 「조선왕조실록」에서 보게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왕이 아니다. 나 자신에게 일었던 일을 내 스스로 기록하니 얼마든지 편집이나 윤색이 가능하다. 자신의 잘못이나 부끄러운 점이 있다면 감추게 되기에 십상이다. 공개될 글이라면 신경은 더욱 쓰일 수밖에 없다.
인생이란 틀을 놓고 본다면 개인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다른 이들의 삶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사건의 양상이 다를 뿐이다. 어떤 전문 분야에서 일정의 삶을 살아온 이들의 경험은 그 분야에 있지 않은 이들에겐 특정한 직업군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한다. 실수나 잘못도 정직하게 적었을 때 더욱 공감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자신이 직접 쓰는 글이라고 해서 감추고 꾸미려 들면 그 기록은 이미 무용지물이다. 그 어떤 공감도 감동도 얻어내지 못한다. 남이 보든 안 보든 자신의 삶에 대해 좀 더 솔직하게 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요즘은 다양성을 존중받는 시대다. 개인의 경험과 사유를 기록하고 이를 책으로 펴내는 연령층도 폭넓다. 빠른 시대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세대 간의 이해를 돕는 데 유용하게 읽힌다는 점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직업군과 상관없이 자신의 일상을 적고 공유하는 일은 그런 면에서 소중하다. 다양한 삶의 방식, 서로 다른 생각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솔직함과 진정성을 담아내야 한다.
삶 전반에 걸쳐 기록하는 인생은 바람직하다. 그런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살아온 인생의 반을 돌아보며 기록하는 일은 한 번쯤 해볼 만하다. 글쓰기와 무관한 사람일지라도 권해보는 바다. 개인의 얘기를 있는 그대로 적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지만 말이다. 나 자신의 고통이나 어려움을 떼어놓고 볼 수 있게 되고 한편으론 나 자신에게서 벌이지는 일들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올해 초 나 또한 출판사의 의뢰로 에세이를 쓰게 되었다. 상상력이라고는 일도 없는 내 자신이 어떻게 상상력을 발휘해야만 되는 작가가 되었는지에 관한 글을 말이다. 그동안 다양한 글을 써왔으나 내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일 앞에서 나 또한 머뭇거리기 일쑤였다.
소설을 쓰는 것과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글을 쓰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나를 드러내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구나. 나의 평범한 수강생들에게 과감하게 자신을 드러내라고 나도 못 하는 것을 권했구나. 아무튼 내 사적인 역사의 글을 쓰자니 나 자신의 못남도 드러내야 하고 나와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에게 본의 아니게 폐를 끼치게 되는 것은 아닌가, 고민이 많았더랬다.
일반인이라면 고민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어쩌면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일 앞에서 체념하는 일이 더 쉬울지 모르겠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의 과거가 고스란히 담긴 에세이가 출간되고 부끄러운 일면도 있었지만, 굳이 나에 대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는 득이었다. 또한 내 삶에 홀가분해진 일면도 있었다. 나의 에세이를 읽은 많은 분이 나의 삶 안으로 들어와 나를 더 깊이 알게 되었다거나 좋아지게 되었다거나 독자로부터 친구가 되고 싶다는 말을 듣게 되었을 때는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내 반평생의 삶을 나는 그렇게 털어냈다. 그리고 가뿐한 마음이 되었다. 새롭게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사로잡혔다. 살아온 인생의 채무를 해결한 기분이랄까.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든 지난 삶을 위로받기 위해서든 지난 성공담을 남겨놓기 위한 것이든 인생 중반에 와 있다면 개인의 실록을 남기는 경험은 귀하다. 쓰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더 나은 앞으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올해 2월에 출간된 나의 지난 실록을 담은 호접지몽 에세이 「혼자는 천직입니다만」 (출처 : 박영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