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떠나요, 서부캠퍼스 '방구석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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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프랑스, 50+ 시민기자단 '이선미' 기자와 떠나는 방구석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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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두기’로 이행되면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던 코로나19 상황이 다시 악화되고 있습니다. 초유의 전염병이 정말 많은 것을 달라지게 하고 있네요. 아직 끝나지도 않았고, 끝난 후에는 어떤 세상이 될지도 알 수가 없어서 더 모호한 시간을 겪고 있습니다. 

 

야심차게 준비했던 2020년 강좌를 모두 폐강했지만 50플러스 캠퍼스에서는 뭔가를 계속 준비해 이어가고 있더군요. 그 가운데에서 서부캠퍼스 힐링캠페인에 함께해봤습니다. ‘방구석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추억을 되짚어보는 이벤트였죠. 가을날 떠났던 프랑스, 저의 ‘방구석 여행’에 초대합니다.

 

대략 열흘의 일정이었는데, 처음부터 특별한 계획을 가진 건 아니었어요. 그래도 어느 정도는 목적지를 가지고 갔지만 북풍이 휘몰아치는 듯 변수가 많아서 계획과는 많이 다른 여정이 되었답니다. 그런데 이게 참 묘하죠? 이래저래 많았던 변수에도 불구하고 다녀온 후 생각하니 그 열흘을 관통하는 어떤 뼈대가 있어요. 그건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옛 프랑스 사람들의 길, 그 출발 도시들을 다 갔다는 점이었어요.

 

 

아를 알리스캉 입구에 있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표지

 

 

네 개의 루트가 있거든요. 파리와 베즐레, 르퓌앙벌레이, 그리고 아를. 일부러 찾아가려도 쉽지 않은 동선인데 이 도시들을 다 거치게 되었어요. ‘계획은 사람이 하지만 이루는 분은 신이다’라는 옛 조언처럼 뭘 해보려고 기를 쓰다가 제풀에 꺾이곤 했던 순간들 뒤로 이렇게 온전한 선물이 주어졌다는 걸 새삼 발견하게 된 여행이었습니다. 그 네 도시 얘기를 잠시 해볼까 해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야고보의 무덤이 있다는 도시입니다. 중세 유럽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성지는 단연 예수의 무덤이 있는 예루살렘이었죠. 그런데 그곳이 이슬람 세력에게 정복당한 후 순례가 어려워졌습니다. 이교도의 땅이라는 것도 꺼림칙한데 강도떼 등 현실적인 위험도 컸어요. 그즈음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에서 사도 야고보의 무덤이 발견됐다는 놀라운 소식이 들리고, 이내 그의 무덤으로 향하는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예루살렘에 가는 대신 스페인으로 향하게 된 것이죠. 성 야고보(San Diego)의 ‘별(stela)이 빛나는 들판(campus)’, 즉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이내 예루살렘과 로마에 이어 가톨릭교회의 새로운 성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유럽 곳곳에서, 즉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중세인들은 길을 나서 이 새로운 성지로 향했습니다.

 

 

안개 낀 르퓌앙벌레이의 아침. 수직으로 솟은 80미터 절벽은 화산 폭발의 흔적이다.

 

 

최초의 외국인 순례자는 프랑스 르퓌앙벌레이라는 도시의 주교였던 고데스칼크였다고 합니다. 그는 950년 말을 타고 카미노를 순례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와 화산 폭발이 빚어놓은 천혜의 벼랑 끝에 성소를 지어 봉헌합니다. 원래 제우스의 전령인 헤르메스, 머큐리의 성소가 있었던 거의 수직의 벼랑 꼭대기에 대천사 미카엘에게 바치는 작은 성당을 지은 겁니다. 당시 유럽에는 미카엘 천사에 대한 공경이 퍼져있었다고 하는데, 그 유명하고 놀라운 몽생미셸 역시 미카엘 천사에게 봉헌된 곳이죠.

 

 

절벽 꼭대기에 지어진 생미셸데귈에서 내려다본 르퓌앙벌레이.

저 너머로 보이는 성모상과 그 아래 대성당이 이 도시의 중요한 장소들이다.

 

 

중세 회화에 자주 등장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는 ‘참회’, ‘회개’의 아이콘처럼 여겨지는데요. 프랑스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마들렌에 대한 전설이 무척 많더군요. 몇 해 전 뜨겁게 휘몰아쳤던 <다빈치 코드>에서 보여준 것처럼 마들렌은 무척 신비로운 존재로 전해진 것 같습니다. 마들렌은 예수가 세상을 떠난 후 박해를 피해 배를 타고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 근처에 닿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생트마리 드 라메르’라고 불리는 도시죠. 그리고 거기 어디쯤 깊은 산속 동굴에서 은수하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집니다. 그런 전승 때문인지 프랑스 사람들에게 마들렌은 무척 친밀한 존재인 것 같아요.

 

프랑스 곳곳에 마들렌을 기억하는 장소들이 있죠. 파리 한복판 콩코드 광장의 마들렌 사원이 그렇고 베즐레라는 도시 역시 그렇습니다, 이곳에 마들렌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고 알려져서 중세에 순례자가 밀려들었답니다. 이 언덕 아래 평원에서 제2차 십자군 거병이 이뤄지기도 했다고 하는데 1991년에는 로스트로포비치가 이 성당을 찾아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녹음했다고 하죠. 생의 기념비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었던 그가 가장 완벽한 음악을 위해 선택한 곳이 바로 이 성당이었다고 합니다. 아름답고 담백한 백색 대리석의 집, 천 년이 넘은 돌의 집에서 그는 또 하나의 전설을 창조한 셈이죠.

 

 

중세에 마들렌의 유해가 안치되었다고 전해진 베즐레 대성당에서 로스트로포비치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녹음하기도 했다.

 

 

파리에서, 베즐레에서, 그리고 르퓌앙벌레이에서 내려온 순례자가 있었던 반면 프로방스에서 시작하는 순례길에서는 아를이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고흐의 아를, 론강의 그 별이 빛나는 아를 말이죠. 아를에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문을 연 공동묘지 알리스캉이 있어요. 그리스도교가 세상의 원리였던 중세에 성자가 묻힌 곳은 말 그대로 동경의 안식처가 됐겠죠. 아를의 주교, 아를의 순교자가 이곳에 묻히자 그들 곁에 묻혀 천국행에 동행하고자 하는 무수한 사람들이 사방에서 밀려들었답니다. 유해를 실은 배가 론강을 따라 아를로 향한 덕분에 뱃사공들이 특수를 누렸다고도 하더군요. 지금 알리스캉에는 뚜껑이 없는 빈 석관이 폐허의 한 풍경으로 남아 있습니다. 보다 정교하고 의미 있는 석관은 박물관으로 옮겨지고 지금은 그저 심상한 풍경이죠.

 

 

고대로마의 공동묘지 알리스캉 끝에 있는 생오노라 성당에서 순례자들은 새로운 길을 시작했다고 한다.

 

 

고갱이 아를에 왔을 때 고흐와 처음으로 그림을 그리러 간 곳이 바로 알리스캉이었어요. 그들은 저마다 알리스캉을 그렸는데 고흐의 ‘알리스캉’은 얼마 전 소더비 경매에서 수채화로는 가장 높은 금액으로 낙찰되기도 했다더군요. 단테의 <신곡>에서는 지옥의 한 장소로 언급되는 알리스캉에서 2018년 구찌는 이듬해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했죠. 이끼 낀 석관들 사이로 마치 무덤에서 걸어 나온 듯한 모델들이 경계를 넘나드는 의상으로 새롭고도 몽환적인 쇼를 가졌다고 합니다.

 

 

고흐가 ‘아를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를 그린 카페가 여전히 있다.

 

 

서부캠퍼스의 힐링캠페인 덕분에 상상으로나마 카미노 데 콤포스텔라로 향했습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흔히 ‘길’이라는 보통명사 ‘카미노’라고도 불립니다. 그래서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자들은 서로에게 ‘부엔 카미노’, 좋은 여정이 되라고 인사하죠. 서울에도 ‘카미노’는 많습니다. 특히 2018년에는 ‘해설이 있는 서울 순례길’도 열려서 얼마 전에는 ‘카미노 서소문’을 걸었습니다. 어디를 걷든 우리 서로에게 ‘부엔 카미노!’ 오늘 하루도 좋은 여정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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