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 사이에서 실패에 대한 부담이 극히 낮은 작품이 있다. 인현왕후와 희빈장씨를 그린 내용이다. 광복 이후 두 여인을 소재로 한 영화와 TV 드라마는 100편 이상 제작됐다. 관객과 시청자의 호응도 매우 높은 편으로 70년 이상 스테이디셀러이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는 작품에 사랑과 질투, 삼각관계, 정치 등 인간사의 적나라한 면이 고스란히 담긴 덕분이다.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은 덕성의 인현왕후에게 감정이입하고, 요부 희빈장씨에게 분노하고, 착한 숙빈최씨를 안쓰러워했다. 여인에게 휘둘리는 숙종의 우유부단함에는 가슴을 치기도 했다. 인간의 영원한 주제인 사랑에 얽힌 이 감정, 저 사연은 최고 흥행 요소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축함을 모신 대축과 제관들이 제향을 모시기 위해 옥산부대빈묘로 향하고 있다. (출처: 이한영)

 

드라마의 주인공인 숙종, 인현왕후, 희빈장씨가 잠든 곳이 서오릉이다. 세계문화유산인 서오릉은 서울 서쪽에 있는 5기의 능이라는 뜻이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32번지 553616(1,830,135.54) 드넓은 숲에 경릉(敬陵), 창릉(昌陵), 익릉(翼陵), 홍릉(弘陵), 명릉(明陵) 5기의 능이 조영돼 있다. 이곳에는 순창원(順昌園) 수경원(綏慶園) 옥산부대빈묘(玉山府大嬪墓)도 있다. 능은 왕과 왕비의 무덤이고, 원은 세자 부부나 대원군 부부의 무덤, 묘는 왕족과 일반인의 무덤이다.

 

경릉은 추존된 덕종과 소혜왕후, 창릉은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 명릉은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 및 인원왕후, 익릉은 숙종의 비 인경왕후, 홍릉은 영조의 비 정성왕후의 영원한 쉼터다. 순창원은 명종의 첫째 왕자인 순회세자, 수경원은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이씨의 안식처다. 옥산부대빈묘는 희빈장씨의 유택이다.

 

복지에 싸인 옥산부대빈묘의 제물 (출처: 이한영)

 

서오릉에는 숙종과 연인인 인경왕후 인현왕후 인원왕후 희빈장씨가 모셔져 있다. 숙종과 왕후들의 능은 승하 후 곧바로 조영됐고, 희빈장씨의 옥산부대빈묘는 처음에 경기도 구리에 위치하다가 숙종 때 경기도 광주로 천장된 뒤 1970년에 서오릉으로 옮겨졌다. 이로써 숙종과 연인들이 같은 영역에 함께 있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서오릉에서는 3백 년이 훌쩍 지난 옛이야기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연적들의 사랑과 평화, 애정과 질투, 분노와 화해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숙종과 왕후의 제사 때마다 때아닌 비가 내리는 것이다. 이를 제관들은 희빈장씨의 한 많은 눈물로 생각한다.

 

제향일은 홍릉 43, 창릉 416, 명릉 513, 수경원 913, 경릉 1017, 익릉 111, 옥산부대빈묘 119일이다. 모두 봄과 가을로 대체로 맑은 날씨가 지속된다. 그런데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유독 명릉과 익릉 제향 때는 자주 많은 비가 쏟아졌다. 5월과 11월은 계절로 볼 때 큰 비가 올 시기가 아니다. 두 능의 주인공은 숙종과 왕후들이다.

 

명릉제향은 양녕대군 후손들이 1979년부터 모시고 있다. 양녕대군은 세종에게 왕위를 양보한 태종의 첫째 왕자다. 숙종은 양녕대군의 행위를 의롭게 생각했다. 숙종은 양녕대군을 모신 사당의 증개수에 많은 도움을 주고 지덕사라는 이름을 내렸다. 또 그의 묘를 수호할 수 있도록 물질적 지원을 하고, 예관을 보내 제사를 올리게 했다.

 

  희빈장씨 제향 모습이다. 희빈장씨는 왕비 신분이 아니기에 봉등이 황색이 아닌 청사초롱이다. (출처: 이한영)
 

이 같은 인연으로 양녕대군 후손들이 명릉봉향회를 조직해 숙종과 인현왕후, 인원왕후의 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1989년에는 전주이씨들이 익릉봉향회를 결성해 인경왕후를 기리고 있다. 숙종과 왕후들의 제향은 1990년부터 연례행사로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제향일에 자주 비가 쏟아진 것이다. 제향을 담당하는 헌관과 집사는 물론이고 재위자도 불편함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여름도 아닌 봄과 깊은 가을이다. 처음엔 우연으로 생각한 제관들은 우비를 입고 제사를 지냈다. 여러 해 비가 계속되자 기청제를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하늘의 응답은 없었다. 이에 제관들은 혹시라며 원인 분석에 들어갔다.

 

제관들은 같은 서오릉 내에 있는 옥산부대빈묘에 모셔진 희빈장씨가 마음에 걸렸다. 희빈 장씨는 남편 숙종에게서 사약을 받은 비운의 여인이다. 또 왕후들은 희빈장씨의 연적들이다. 숙종과 왕후들의 제향에 희빈장씨의 마음이 편할 리는 없다. 제관들은 희빈장씨의 원혼이 분노한 것이라 데 생각이 미쳤다. 제관들은 옥산부대빈묘에 고유제를 올려 상한 마음을 위로하기로 했다.

 

제관들은 2001년의 익릉 제향 전날인 1030일 제수를 정갈히 차려서 제향을 올렸다. 그 후로 명릉과 익릉의 제향 때는 20년 동안 단 한 번도 비가 오지 않았다. 2020년에는 515일과 16일에는 봄비가 대지를 촉촉이 적셨으나 명릉제향이 모셔진 513일에는 산뜻하게 맑은 하늘이었다.

 

희빈장씨의 불편한 마음이 다소 가셨을까. 아니면 이것도 우연일까. 그러나 정성을 다해 예를 올리는 사람은 신명력을 믿고 있다. 조선 왕실의 후예들이 능 원 단 묘에 제향하는 것은 조상을 기리고, 감명을 얻으려는 정성이다. 전주이씨들은 2003년에는 대빈묘봉향회를 조직해 매년 칠궁의 대빈궁에서 제향을 올리고, 119일에는 서오름에서 희빈장씨 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희빈장씨를 기리는 축문 독축 때 참반원들이 부복하고 있다. (출처: 이한영)

 

많은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인현왕후는 부덕을 갖춘 왕비로, 희빈장씨는 패악질 요부로 그려지고 있다. 이는 남편 숙종의 여인 정치 탓이 크다. 숙종은 왕권 강화를 위해 당쟁을 이용했다. 세력이 강한 신하들의 힘을 빼는 환국 정치로 왕에 대한 절대 충성을 유도했다.

 

이 과정에서 서인이 후원하는 인현왕후와 남인의 지지를 받는 희빈장씨가 희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대부 중심의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서인과 인현왕후,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성장하는 중인 계층과 연계해 새 질서를 모색하는 남인과 희빈장씨, 신분 상승을 꾀한 숙빈최씨의 승부수는 드라마틱한 요소로 작용했다.

 

그러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으로 접근하면 인현왕후도, 희빈장씨도 사랑의 패배자가 아닐까. 그녀들은 남편의 사랑을 얻으려고 몸부림쳤을 뿐이다. 지극히 순수하고 아름답게도 치장될 수 있는 사랑이 권력이라는 불순물이 개입되면서 변질되었다. 아름다운 사랑의 본질은 러브게임으로 바뀌었다. 끝내는 희빈장씨를 포함한 세 여인의 가슴에 응어리가 남게 된다. 러브게임에서 승자는 인현왕후도, 희빈장씨도, 숙빈최씨도 아닌 유일한 남자 숙종일 것이다. 명릉과 익릉 제향에서 때아니게 내린 비는 어쩌면 희빈장씨, 인현왕후, 숙빈최씨 모두의 눈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