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수목원에서 한적하고 느릿하게 보낸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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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멍, 물멍, 이곳엔 꽃멍도 있다.
이름처럼 푸릇푸릇하다. '푸른'도, '수목원'도 기분 좋게 마음을 당기게 하는 낱말이다. 두 낱말이 합쳐지니 어감도 좋다. 푸른 수목원, 이름에서부터 초록의 청량함이 가득하다. 푸른 수목원에는 말 그대로 푸르름이 넘치는 자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의 서남쪽 끄트머리, 서울인 듯 아닌 듯 한적한 곳에 위치한 푸른 수목원은 신록이 짙다. 서울시 구로구 항동 일대에 10만 3천㎡의 넓은 부지에 기존 항동 저수지와 함께 조성된 푸른 수목원은 다른 유원지와 달리 놀이기구, 자연, 운동시설을 즐기기만 하는 곳이 아니다. 자연 생태계의 유지를 위한 교육이나 전시도 진행되는 곳인만큼 친환경적으로 관리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정문 입구 전부터 듬성듬성 절로 자란 풀들이 자연스러운 폐선로가 친근하게 맞는다. 이곳 항동 철길은 구로 올레길 코스에도 속한다. 경인선 오류동 역에서 부천 소사의 옥길동까지 4.5km의 단선 철길은 어릴 적 기찻길의 추억을 소환한다.
수목원으로 들어서자마자 탁 트인 잔디마당이 보인다. 그 앞으로는 연잎으로 덮인 항동 저수지가 있는데, 드문드문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여유롭다.
계류원의 데크로드를 걷다 보면 물 위에서 잘 자라고 있는 수생식물들을 볼 수 있다. 그중에 요즈음 순백으로 피어나기 시작한 수련이 오롯하다. 고요하기만 한 물속에서 군데군데 짝을 이루어 유유자적 노니는 원앙과 잉어 떼들이 물살을 가르며 파문을 만든다. 식물과 동물의 공존이 자연스럽다. 이렇게 물을 바라보며 멍하니 바라보며 쉬는 것을 요즘은 '물멍'이라 하는데, 이곳에서도 느긋한 물멍이 가능하다.
푸른수목원은 수생식물원을 비롯해서 25개의 테마원이 있다. 그러나 굳이 순서를 정해서 표지판을 보며 돌아볼 필요는 없다. 습지, 연못, 개울과 프랑스 정원 등 다양한 콘셉트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다니는 게 자연스럽다. 홀로 조붓한 숲길로 들어갔다가 꽃길로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걷다가 멈추어 정자나 풀숲 그늘에 털썩 앉아 쉬어도 좋다.
하늘 높이 치솟은 메타세쿼이아 숲길에 조용히 앉아 이번엔 '숲멍'이다. 청정 숲의 짙어진 초록이 피곤했던 두 눈을 시원하게 정화시킨다. 그뿐인가. 정원길을 따라 그 길가엔 꽃들이 지천이다. 국내 자생식물은 물론이고 세계의 다양한 식물들이 2100여종 자라고 있다. 아름다운 갖가지 꽃들에 정신없이 빠져든다. 이런 걸 '꽃멍'이라 이름 지어 본다.
정원 길을 지나고 KB숲교육센터를 걸으며 어디서든 나타나는 벤치와 원두막엔 명상에 집중하듯 조용히 앉아있는 사람들. 작은 오두막 벤치엔 어느 부부가 앉아있고, 셀프 웨딩촬영을 하는 이쁜 연인들도 보인다. 산책 삼아 아이들과 손잡고 나와 자연 학습하듯 수목원을 즐기는 모습이 편안해 보인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온실과 북카페는 임시 휴관 중이다.
후문 쪽으로는 장미원이 이국적인 풍경으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로맨틱하던 장미원의 꽃들은 조금씩 시들어 떨어지고 있다. 내년 봄에 보여줄 화려한 모습을 기대한다. 비가 오면 꽃비 내리는 풍경도 멋지고, 촉촉한 분위기가 더 좋은 곳. 더위 속에서 걷다가 정자에서 한 숨 돌리며 느릿느릿 자연을 만끽하는 하루다. 코로나19 때문에 어디 훌쩍 나서지도 못하고 답답한 일상이다. 그러나 굳이 여행가방을 싸들고 나서지 않아도 된다. 책 한 권 담은 가벼운 가방에 교통카드 한 장 달랑 들고 나서도 멀리 떠나왔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서울 끝자락의 푸른수목원이 있다. 2013년 개원해서 역사가 길지 않아 갈 때마다 나무는 더 자라고 꽃은 더 늘어나있다. 푸른수목원은 날마다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생태의 섬, 푸른수목원에서 유의할 점과 가는 방법은 푸른수목원 홈페이지를 참고하기 바란다. http://parks.seoul.go.kr/template/sub/pureun.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