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선생님의 설레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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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같은 존재들, 40년 전 초심으로”

구로구 서울항동초등학교 돌봄교실, 50+다문화(원격)학습지원단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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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구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서울항동초등학교를 찾아갔다. 정문에서 보안관 선생님의 발열 체크를 받고, 교무실로 갔다. 평소 같으면 운동장이 왁자지껄한 아이들 웃음소리와 쿵탕~쿵탕~ 내달리는 소리로 가득할 텐데, 은근 조용하다. 안내를 받고 들어선 <행복돌봄 3> 교실. 아이들의 뒷모습이 보인다. 색깔 예쁜 마름모꼴 책상에 앉아 마스크를 쓴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다. 만화 <짱구>에 나올 것 같은 작은 체구와 오동통한 팔뚝에, 뒤통수에는 장난기가 담겨 있다. 수업 내용은 점과 점 사이에 자를 대고 직선으로 줄긋기이다. 옆으로 해보고, 사선으로도 해보고, 두 점뿐만 아니라 세 점도, 네 점도 이어보라고 선생님은 말씀하신다. 집중력 증강 수업이다. 어깨가 흔들흔들, 엉덩이가 들썩들썩, 하지만 잘도 참아내며 줄을 긋는다. 잠시 후 학습지를 들고 와 선생님께 검사받는다. 칭찬해 달라고 초승달 눈빛을 보이더니, 이내 친구들과 장난을 친다. 선생님은 할아버지 선생님, 서울시50플러스 남부캠퍼스에서 오신 50+다문화(원격)학습지원단 선생님이다.

 

 

‘자를 대고, 점 이어보기’ 학습활동(좌), 아이를 지도하는 50+다문화(원격)학습지원단 선생님(우)

 

오늘 참가한 수업은 초등학교 ‘1, 2학년 ‘긴급 돌봄 학생 대상 원격학습’이다. 현재 주 1회만 등교수업을 실시하고 있다. 코로나 19가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어린이들은 정규 수업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맞벌이 부모 가정의 ‘돌봄 학생’ 아이들은 매일 학교로 나와 하루를 보낸다.

 

서울항동초등학교에는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이 많다. 그래서 학교 선생님 이외에 어린이를 돌볼 수 있는 선생님이 많이 필요했고, 서울시50플러스 남부캠퍼스가 여기에 응답했다. 처음엔 50+다문화학습지원단을 운영할 계획이었지만, 코로나 감염병 사태로 활동이 어려워지자, 서울특별시 남부교육지원청과 협조하여, 지난 6월부터 ‘50+다문화학습지원단’을 ‘50+원격학습지원단’으로 전환했다. 서울시50플러스 남부캠퍼스에서 원격학습도우미로 나오신 선생님이 두 분 계신다. 김두성 선생님과 김치환 선생님이다.

 

 

김두성(좌), 김치환(우) 선생님이 EBS 방송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수업은 아이들의 EBS 방송시청을 두 선생님이 도와주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담당부장인 임재환 선생님은 “두 분 선생님들이 이미 교직에서 오랫동안 몸담고 계셨던 분이라 저희보다 현장 경험이 훨씬 풍부하고 학생 지도를 잘하시기 때문에 특별한 지침이나 교육은 따로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학교 측에서는 '50+원격학습지원단'을 서울시50플러스재단을 통해 더 요청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서울항동초등학교 돌봄교실은 아침 7시 반부터 시작해서 오후 7시까지 운영된다. '50+원격학습지원단' 선생님들은 9시부터 1시까지 일한다. 그리고 다른 돌봄 봉사자 선생님과 교대한다. 1일 4시간 근무, 월 14일 출근한다. ‘항동 지구’는 신도시 교통 인프라가 아직 미흡해서 출퇴근이 꽤 불편한 편인데도 불구하고, 30분 일찍 나와서 청소하고 아이들을 기다릴 때 설레는 마음이 든다고 선생님들은 말했다. 처음 교직을 시작할 때 그 마음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할아버지 선생님들에게 아이들은 너무나 사랑스런 보석 같은 존재이다.

 

김두성 선생님은 돌봄교실에서 50+원격학습지원단 역할을 맡은 것이 자신의 교직 경험을 바탕으로 한 번 더 열정을 쏟을 수 있어서 더없이 좋다고 했다. 선생님은 초등학교에서 40년 동안 평교사와 교감으로 지냈다. 퇴직 이후에는 중국 학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재능기부를 했다. 한국어 교사로서 해외 봉사활동도 계획했지만 코로나가 계획을 뒤로 밀쳐냈다. 김두성 선생님에게 에피소드 하나를 말해 달라고 주문하자, 처음에는 할아버지 선생님에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아 여러 날 서먹서먹했었는데, 어느덧 1달이라는 시간이 흐르자 아이들이 서서히 마음을 열고 자신을 받아 주었다고 했다.

 

아이들은 어쩌면 1주일 한번 만나는 담임 선생님보다 거의 매일 보는 할아버지 선생님을 더 의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두성 선생님은 맞벌이 가정의 학부모들이 직장에 있어도, 학교에 있는 아이들이 더 마음에 걸리지 않을까 생각되어 부모님들과 단톡방을 개설했다. 수시로 아이들 건강, 심리, 과제물 등에 대해 공지한다고 했다. 40년 경험의 노하우가 아닌가 싶다. 노하우는 또 있다. ‘그림 속에서 같은 모양 찾아 색칠하기’, ‘받침 없는 글자에서 받침 있는 글자까지 써 보기’, ‘미로 찾기’, ‘숫자 개념 익히기’, 그리고 ‘낱말 퍼즐’ 등 학습지를 손수 만들어 시시때때로 활용한다.

 

  

서울항동초등학교 돌봄 교실 모습과 예비 마스크, 체온계

 

50+원격학습지원단 선생님들이나 학교 선생님들이 가장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은 코로나19 방역이다. 처음 행복돌봄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났을 때 꼬물꼬물 개구쟁이 ‘짱구’ 같은 모습에 머리를 쓰다듬거나 손을 잡고 싶은 마음이 일었으나 꾹 참았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마스크를 썼지만 말이다. 아이들도 코로나19 예방 습관이 잘 잡혀 있어 누군가 마스크가 살짝 내려오면, 이구동성으로 “마스크! 마스크!”를 외친다고 한다.

 

교실은 하루에 오전 오후 각각 방역 청소를 한다. 교실에는 항상 여분의 마스크를 비치해 놓았고, 예비 체온계를 하나 더 구비했으며, 수시로 손 씻기를 지도한다. 중앙방역대책본부를 학교에 설립한 듯, 코로나19와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다. 빨리 코로나19가 잠잠해져 아이들이 마스크 없이 맘껏 뛰놀고, 건강하게 배우고, 자라는 모습을 보고 싶다. 지역 초등학교에서 고생하시는 50+원격학습지원단 선생님들께 두 손 모아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