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8년 전인 1642년의 화창한 봄날, 창덕궁 후원에서는 왕과 궁녀들의 시끌벅적한 달리기 놀이가 있었다. 남들의 눈에서 멀어진 은밀한 후원에서의 달리기 게임은 뜻하지 않은 왕의 부상으로 중단됐다. 왕과 궁녀의 달리기 게임, 그날의 진실을 왕실 정원의 수백 년 된 고목과 정자, 연못은 알고 있다. 다만 침묵할 뿐이다.
“사람은 놀이하는 동물이다.” 네덜란드 역사학자 요한 호이징가의 말이다. 그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로 정의했다. 놀이를 통해 인생관과 정체성을 확인하는 인간의 본성을 설명했다. 작은 유희도, 고도의 두뇌 활동도 놀이에 속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숲길 산책도, 꽃 관람도, 스포츠도 놀이다.
돈화문. 창덕궁의 정문이다. 돈화(敦化)는 임금이 큰 덕을 베풀어 백성들을 감화시킨다는 의미다. <출처: 문화재청>
임금도 놀이를 원했다. 지친 마음과 몸을 쉬고 싶어 했다. 왕이 놀이를 할 수 있는 현실적 공간은 궁궐의 정원이다. 대표적으로 아름다운 궁궐 정원이 창덕궁의 후원이다. 왕조 시대에는 9만여 평의 넓은 지역에 부용정 부용지 애련지 등 100개 이상의 누각과 정자, 연못이 자연 속에 녹아 있었다.
이곳에서 왕들은 활쏘기를 하고, 등(燈) 놀이를 하고, 산책을 하고, 꽃구경을 했다. 왕의 놀이는 유(遊)와 희(戱)로 구분된다. 또 신(身)을 추가할 수 있다. 유는 공적 측면이 강한 반면 희는 개인적 영역이다. 신은 적극적 신체 활동이다. 유의 대표적인 예가 왕의 행차다. 희는 바둑 쌍륙 저포 장기 등을 들 수 있다. 신체 활동은 격구, 투호, 승마, 활쏘기, 사냥 등이다.
금천교. 태종11년인 1411년에 건립됐다. 서울에 있는 석교 중 가장 오래됐다. 금천은 금할 금(禁)에 내 천(川)을 쓴다.
아무나 함부로 건널 수 없는 다리라는 뜻이다. 때로는 비단 금(錦)자를 쓰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아름다운 물이 흐르는 다리로 풀이할 수 있다. <출처: 문화재청>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왕의 놀이는 공적인 유로 국한되어진다. 성리학이 자리 잡으면서 개인적인 놀이나 신체 활동이 억제된 결과다. 임금들은 숨 막히는 분위기 도피처로 곧잘 후원을 선택했다. 그러나 산책이나 꽃구경만으로 풀리지 않는 마음도 있다. 보다 효율적인 스트레스 해소 방법은 운동이다. 뛰고, 달리고, 차고, 소리치는 것이다.
늘 불안감을 달고 산 왕인 인조는 특별한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창덕궁 후원에서 궁녀와 가마 달리기 놀이를 한 것이다. 요즘으로 따지면 궁녀와 100미터 허들 게임을 한다.
조선왕조실록 인조 20년(1642년) 6월 7일 기사에 ‘을사선시(乙巳先是) 상어유후원(上遊於後苑) 이시녀담여이행(以侍女擔輿而行) 차부치상(蹉趺致傷) 상휘지(上諱之) 내국지지(內局知之) 펑시침약(請試鍼藥) 상내언지(上乃言之)’가 보인다.
희정당. 왕의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집무 공간이다. 임금은 이곳에서 신하를 접견하고 학문을 논했다. <출처: 문화재청>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을사년인 1642년의 어느 날이다. 임금님이 후원에서 노셨다. 궁녀에게 가마를 메고 가게 하셨다. 가마를 멘 궁녀가 넘어져 임금님이 성처를 입으셨다. 임금님이 사실을 숨기셨다. 의원들이 침을 맞고 약을 복용할 것을 청했다. 임금님이 비로소 사실을 말씀하셨다.”
상황을 분석하면 뜻하지 않은 사실이 발견된다. 지엄한 군주가 시녀들과 놀이를 하고, 임금
의 가마를 멘 궁녀가 달리다가 넘어진 것이다. 원문에는 이시녀담여이행(以侍女擔輿而行)으로 표현됐다. 갈 행(行)은 천천히 또는 보통 걸음이다.
천천히 평지를 이동하는 시녀들이 자빠질 가능성은 극히 적다. 결국 후원에서의 놀이 연속선상에서 가마를 멘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임금이 탄 가마를 메고 달린 것을 의미한다. 임금이 궁녀들과 가마타고 달리기 게임을 한 것이다. 요즘으로 생각하면 가마 메고 100미터 달리기나 반환점 돌아오기 게임을 한 셈이다.
상량정. 낙선재 후원에 있는 아름다운 정자다. 본래 이름은 먼 나라와 사이좋게 지낸다는 의미의 평원루다. <출처: 문화재청>
게임에는 일반적으로 상이나 벌칙이 있다. 아쉽게도 인조나 시녀의 놀이 벌칙은 추정할 수 없다. 왕이 특별한 도구 없이 궁녀들과 할 놀이, 즉흥적으로 할 놀이는 술래잡기가 제격이다. 추정하면 임금이 궁녀들과 술래잡기 놀이를 했다.
한 번은 임금이 술래가 되었고, 벌칙으로 궁녀들이 인조를 가마에 태우고 특정 지점을 빠른 시간 내에 돌아오는 게임을 한 듯하다. 궁녀들은 임금에게 벌칙을 가할 수 없기에 ‘벌도 아닌 벌’로 가마 달리기를 했을 것이다.
또는 원래부터 가마타고 빨리 달리기 게임을 했을 수도 있다. 임금이 탄 가마와 궁녀를 태운 가마와 달리기 게임을 생각할 수 있다. 정확히는 알 수 없는 달리기 게임에서 공교롭게 왕이 탄 가마가 전복됐고, 임금이 어깨를 다친 것이다.
왕의 가마. 임금이 이동할 때 타는 가마에는 연(輦)과 여(輿)가 있다. 연에는 지붕이 있고, 여에는 지붕이 없다.
조선왕국의 법통을 이원 대한제국 황사손이 건원릉 제향 봉행을 위해 여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출처: 이상주>
인조는 사건을 숨겼다. 그러나 궁궐에서는 발 없는 말이 되어 알음알음 알려졌다. 한 달 후에는 내의원에서도 알게 됐다. 6월 7일 약방 도제조 이성구와 부제조 이행원은 언제, 왜 다쳤고 현 상태에 대해 세심하게 확인한다.
인조는 “한 달 전에 다쳤고, 어깨 통증은 심하지 않다”고 답한다. 그러나 어의들은 임금의 상태를 꽤 심하다고 판단한다. 허리와 등, 왼쪽 슬개골의 통증과 눈의 황달 증세를 진단한다. 어의들은 침을 여러 차례 맞을 것과 함께 탕약 복용을 청했다. 인조는 10여 일 계속 침을 맞고, 탕약을 복용한다.
부용지. 옛 동양에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이 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관념이다.
부용지도 천원지방 관점에서 사각형의 못에 둥근 섬이 조성됐다. <출처:문화재청>
인조의 가마놀이가 한 달 뒤에야 알려진 것은 ‘왕’에 대한 금기 때문이다. 왕이나 왕비의 동선은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다. 고위 관료라도 왕과 왕비는 물론이고 임금이나 왕비의 수발을 드는 지밀나인의 근무 확인도 할 수 없다. 왕, 왕비의 동선과 밤의 일정, 침실 사용, 침실근무자와 배치는 국가기밀 사항이었다. 왕의 일정 뿐 아니라 왕실의 일도 세상에 알려지면 국가기밀 누설에 해당된다.
왕의 놀이나 사생활이 알려지지 않는 이유는 철저한 비밀주의 결과다. 그러나 인조의 가마놀이 달리기 사건은 본 눈들이 많아서 비밀이 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