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포털 필진 이현신님이 지난 여행을 되돌아보며 작성한 글입니다.

 

출발한 지 11일째 되던 날 고대하던 우유니 소금 호수(사막)으로 갔다.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폐쇄된 기지창이다. 소금을 나르던 기관차가 녹이 슨 채 그 자리에서 시간을 견디며 서 있었다. 세월은 모든 걸 변하게 한다더니 철로는 조각나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기차 바퀴는 흙에 묻혀 있다. 지금은 관광객을 위한 포토존으로 쓰인다. 기차 지붕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는 젊은이들을 보니 기차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만만치 않게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어 조금은 서글펐다.

 

     폐쇄된 기지창과 녹슨 기관차

 

라파스에서 남쪽으로 200떨어져 있는 우유니 소금 호수(사막)은 중부 안데스 산지의 고원 지대인 알티플라노 남부에 있다. 호수를 포함한 동편은 볼리비아 영토고, 서쪽 가장자리는 칠레 국경에 걸쳐 있다. 해발고도 3,680m, 면적은 12,000정도인데 우리나라 강원도 넓이와 비슷하다. 안데스산맥이 융기하기 이전에 바다였던 이 호수는 융기 이후 강수량이 많지 않아서 사막이 되었다. 엄청난 분량의 소금은 산맥의 융기 과정에서 갇힌 바닷물과 주변의 산지에서 흘러내린 염류가 모여 만들어졌다. 건기에는 바짝 마른 소금 사막이지만 우기에는 소금 호수가 된다. 거울로 변하는 모습을 보려면 발목이 잠길 정도로 적당하게 비가 내렸을 때 가야 한다. 좋은 날씨가 여행자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행운이라는 말은 진리다. 바닥이 하얀 소금이기 때문에 적당히 물에 잠기면 맑은 거울이 되고, 우리는 하늘과 호수가 하나가 되는 장관을 볼 수 있다. 필자도 이 신비한 거울과 빙하를 보기 위해 긴 여행을 떠났다.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

 

우유니 소금 호수 관광에 꼭 필요한 건 장화다. 장화 대여점에서 발에 맞는 장화를 골라 지프 차에 싣고 간다. 검은색, 흰색, 분홍색, 파란색이 있지만 복불복이다. 광활한 호수 가운데 소금 벽돌로 지은 호텔이 있다. 돈을 추렴해서 준비한 음식을 호텔에서 먹는다. 호텔 내부는 인형과 소품들로 예쁘게 꾸며져 있다. 잊지 말고 사진을 찍자. 여행사에서 준비한 점심이 제법 거창하다. 감자와 치킨에 수박까지 있다. 맛있게 먹고 장화를 신으면 준비 끝이다. 호텔 앞 작은 동산에는 각국의 국기가 꽂혀있다. 대한민국 국기도 물론 있다. 함께 여행한 사람들이 국기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초상권 침해가 될 수도 있겠으나 양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33일간 동고동락한 사이이니 말이다.

 

   

    하늘을 향해 쏴라(단체 사진)

 

이제 본격적으로 거울 탐방을 떠난다. 환상적인 경관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를 선점하기 위해 지프 차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린다. 추월하는 차에 탄 사람도 추월당하는 차에 탄 사람도 깔깔거리며 즐겁게 손을 흔든다. 사람의 마음을 한없이 순수하게 만드는 게 여행의 묘미 아닐까? 저 멀리 말로만 듣던 신기루가 보였다. 구름 위에 산이 얹혀 있는 거 같은데 가까이 갈수록 바깥쪽부터 사라졌다. 마침내 차가 멈추고 사람들이 거울 위로 내려선다. 장화가 투박하기는 하지만 소금물이니 어쩌겠는가. 이제 포토 타임이다. 둘씩 셋씩 짝을 지어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사진사를 고용해서 찍을 수도 있다. 필자의 어깨 위에 올라앉은 건 알파카 인형이다. 남미 대륙 어느 나라를 가건 수많은 종류의 인형이 있었다. 다시 갈 기회가 생긴다면 인형이란 인형은 죄다 사고 말테다.

 

    필자와 알파카 인형

 

우유니 호수 투어에서는 인솔자가 연출과 촬영까지 담당한다. 의자가 멋진 소품이 된다. 멋진 영상을 위해 지청구를 듣더라도 동작을 익혀야 한다.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는 사진이 멋지지 않은가? 오직 우유니 소금 호수에서만 가능한 장면이다. 모였다 흩어지며 갖가지 동작을 취하면 현지인 가이드가 차를 타고 크게 돌면서 동영상도 찍어준다.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는 거울 사진

 

노을 풍경은 경이롭다는 말 외에 다른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어둠이 내리는데도 사람들은 떠나기 싫어한다. 사진 속의 필자가 4차원의 세계로 걸어가는 시간 여행자 같지 않은가? 판초까지 걸쳤으니 석양의 무법자로 보이려나? 다음날 새벽 여명의 호수를 보러 갔지만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황홀한 일출은커녕 추위에 떨다 돌아왔다. 플라스틱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서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이런 경험은 우유니에서만 할 수 있다.

 

    석양의 무법자

 

숙소에서 본 달은 서울에서 보던 달보다 훨씬 컸다. 연어의 속살을 닮은 부드러운 모래는 분홍을 품은 주황색이었다. 보름달은 수많은 반사판을 사용한 것처럼 황금색과 어우러진 밝은 빛을 연주황 사막 위로 균등하게 쏟아냈다. 바람 한 점 없는 사막이 너무 적요해서 태초의 고요가 이랬을까 싶었다. 부드러운 달빛에 휘감긴 사막이 지나치리만큼 평온하고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둥근 달과 셀 수 없이 많은 별과 사막이 어우러진 풍경은 사랑의 기억보다 아련하고 낭만적이었다.

아타카마 사막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자리한 노천탕에서 온천욕을 하기 위해 새벽 4시에 출발했다. 소금 호수에서 보지 못했던 일출을 이곳에서 보았다. 탕도 작고 열악한 탈의실이 불편하기도 하고 고산병 때문에 힘들겠지만 포기하지 말자. 물은 적당히 따뜻하다. 수영복을 미리 입고 가는 게 좋다.

 

    일출을 보며 즐기는 온천욕

 

자연은 위대하고 아름답다. 우유니 사막에서 나는 애증도 원한도 생존 투쟁도 모두 잊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