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공동체주거 이야기 - 08] 홀로 남은 노년
독거노인, 나이드신 부모님을 자식이 부양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던 과거에 돌봐줄 가족이 없는 소수의 불쌍한 노인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지구상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이미 홀로 사는 노년의 삶은 일상이 되어 버렸다.
이제 더 이상 자식의 부양을 기대하기 힘들며, 사별과 함께 이혼, 비혼 가구 또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이미 1인가구가 전체 가구의 1/4이상인 500만을 넘어섰고, 2035년에는 전체 가구의 1/3 이상이 1인가구이며, 전체 1인가구의 절반 이상이 60세 이상의 고령 1인가구일 것으로 예측된다.
1인가구는 다인가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빈곤율(47.5%)을 보이고 있으며, 특히 고령 1인가구에게는 외로움, 건강악화, 안전, 사회적소외와 배제 등의 위험이 노년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고령가구의 어려움은 마땅한 노후주거의 대안이 없기 때문에 더욱 증폭된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과 통계수치들을 이야기 하면 우리는 그저 "그런가 보다..." 정도의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이 내 가족의 문제이고 미래에 맞이하게 될 나의 문제라고 생각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리집은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인 1970년에 수유리로 이사를 갔고 어머님은 출석하시던 교회를 중심으로 지역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 오셨다. 중간에 형님네와 주거를 통합하면서 의정부에서 8년을 살았고, 아버님이 돌아가신 이후 2008년경 우리는 다시 도봉구 창동으로 돌아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적지 않은 어머니 친구분들이 가까이 사셨고, 어머님은 그 어르신들과의 재회를 무척 기뻐하셨다. 물론 우리 어머니를 포함하여 거의 대부분의 어머니 친구분들 또한 아버님들과 사별 후 혼자 살고 계셨다. 나 또한 어머니 친구분들을 잘 안다. 우리 집 가계 형편이 안 좋을 때, 크고 작은 도움을 주셨었고 그야말로 이웃에서 동고동락 하셨던 어머님들. 또 몇몇 어른들의 자식들은 나의 어릴 적 친구이기도 하다.
친구들과 반가운 재회를 하신 어머님은 친구들과 활발한 교류를 하셨고 나는 자연스럽게 어르신들의 7080시기를 가까이서 바라볼 수가 있었다.
나는 어느 정도 구체적인 어르신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다. 경제적으로 커다란 부자는 아니지만 사시는 데에 어려움은 없을 정도의 괜찮은 중산층이며, 배울만큼 배우신 분들 이셨고, 자녀들의 경제 사정 또한 형제들 간에 편차는 있지만 부유한 자녀들도 있고 보편적으로 나쁘지 않은 편이다. 다만 이미 사회가 변하여 어느 정도 경제적 여력도 있고 건강하셨던 어머님들은 자녀들과 함께 살기를 원치 않으셨고, 자녀들 또한 어머님을 모시고 살기가 여의치 않아 우리 어머니를 제외한 모든 어머님들은 강북 일대의 소형 아파트에서 혼자 사셨다.
70대 초반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던 어르신들의 삶이 70대 중후반을 넘어서면서 서서히 어려움에 봉착하기 시작한다. 개인적 질환 또는 노화에 따른 체력의 저하로 조금씩 일상생활의 통제력을 잃어 가기 시작하지만 가끔씩 다녀 가는 자녀들은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기 힘들다. 연로하신 어른들은 당신들의 참여가 타인들을 불편하게 한다는 생각때문에 스스로 활동의 범위를 제한하기도 하고, 반대로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런저런 사회 활동에서 배제되기도 한다. 자신의 의지대로 삶이 통제되지 않으면서 어른들의 심신 또한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한다. 그나마 가까이 친구들이 있어 서로의 집을 돌아가며 소일하는 것이 몇 안되는 낙 중의 하나다.
사실 이때가 가장 중요하다. 누군가 옆에서 돌봐 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여전히 혼자서 모든 살림을 감당하셔야 한다. 그러나 어르신들의 집은 익숙할 뿐, 고령의 어르신들이 생활 하시기에 불편한 것이 하나둘이 아니다. 불편함을 넘어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어르신들 낙상사고의 절반은 가정에서 발생한다.
고령의 어르신들이 마음 놓고 안전하게 지내시며 일상생활의 조그만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주거환경이 있으면 좋으련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이에 대한 마땅한 대안이 없다.
물론 고급 실버타운이 있지만 이것은 극소수 부유층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노인복지법에 의한 노인복지주택은 부동산개발업자들을 위한 편법적 개발수단으로 왜곡되어 십수년이 넘도록 개선되지 않고 선의의 피해자만 양산하고 있다.
그나마 최근들어 서울시의 의료안심주택, 장기안심주택 등과 같은 의미있는 공공복지주택 사업이 시행되고 있으나 소수의 취약계층만 혜택을 볼 뿐,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결국 보통의 서민 중산층 어르신들이 이용할 수 있는 요양시설은 요양원 뿐이다. 우리 나이 정도되면 모두가 알 것이다. 돈벌이로 전락한 요양원/요양병원의 복마전 같은 현실을. 물론 드물게 사명감을 갖고 헌신적인 종사자들에 의해 모범적으로 운영되는 곳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요양원이라도 내 집은 아니며, 나의 자유의지가 제한되는 시설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어르신들이 어쩔 수 없어서 들어가는 것이지 원해서 들어가는 경우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현 공공 노인복지 및 의료체계는 사전 예방 보다는 사후대응을 위주로 짜여져 있다. 요양원/요양병원 또한 개인이 자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가족의 부재와 빈곤, 요양등급을 증명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이러한 시스템 자체가 어르신들에게 그곳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안정적 요양과 재활 치료가 아닌 죽기 전에 들리는 마지막 장소라는 인식을 제공하기 때문에 스스로 삶의 의지를 놔 버리는 역효과를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나는 묻고 싶다. 과연 지금의 시스템이 최선이며, 더 이상의 방법은 없는 것인지, 우리는 너무 쉽게 포기한 것은 아닌지. 물론 국가가 그 책임을 포기하고 시장에 넘겨버린 공공의 역할을 되 살리기에는 적지 않은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국가와 사회가 올바른 공공의 역할을 다 할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노력함과 동시에 보통의 서민 중산층이 지불가능한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노후주거를 만들기 위한 민간의 자조적인 노력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 어머님께는 이웃에 단 한 분의 친구만이 남아 계시다. 치매로 낙상으로 지병으로 여럿 친구분들이 이미 요양원에서 돌아가셨고 지금도 요양원에 계신다. 나는 부디 어머님이 집에서, 자손들 품에서 마지막 생을 맞이하기를 간절히 원한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어머님이 좋아 하시는 천상병의 시 처럼 그렇게 우리와 함께 사시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는 꿈을 이루시기를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