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토라는 남자에게 배우다.
“죽음은 자연의 섭리, 내 삶을 정리할 기회를 갖자”
웰다잉을 위한 웰다잉문화운동
▲ 삶의 마무리 죽음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의학이 발달하다 보니 죽음과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지 말고 죽음을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이면서 내 삶을 정리할 기회를 갖자는 운동입니다."
‘웰다잉문화운동’ 원혜영 공동대표의 ‘웰다잉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이다. 죽음을 맞서야 할 대상이 아닌, 자연스러운 삶의 마무리로 받아들이고 죽음에 대해 건강하게 준비하자는 뜻이라 한다.
내 가까운 지인을 떠나보낸 적이 있다면 한번쯤 죽음을 가까이 느꼈을 것이다. 특히 부모님의 죽음을 목도하게 되는 경우에는 죽음은 피할 수 없는 비극이라 여기며, 절망할 수 있다. 한국인들은 유달리 생에 대한 집착과 함께 죽음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데, 이는 한국인들이 죽음을 소멸로 여겨왔기 때문이라 한다. 우리 속담의 ‘개똥으로 굴러도 이승이 낫다’ ‘죽은 정승이 산 개보다 못하다’는 죽음에 대한 한국인의 부정적인 인식을 보여준다. 내세보다 현세를 중시하는 의식세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한국인의 생각은 ‘마지막 가시는 길’에 대한 예를 위해 엄청난 장례비를 들이고, 내 부모의 죽음을 소홀히 할 수 없어 온갖 연명치료를 받으며 혼수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수백, 수천, 수억 원 하는 의료비와 장례비 부담은 살아남은 자식들의 몫이 되기도 한다. 이런 임종과 장례문화, 나아가 죽음관을 바꾸자는 사람들이 있다. 웰다잉 문화운동단체 와 죽음을 연구하는 종교학자 최준식 이화여대 한국학과 명예교수이다.
▲ 웰다잉문화운동_DEATH CAFE_북콘서트, 오프라인 모임, 웰다잉문화 정착을 위한 제도적 마련과 활성화 방안을 찾는 포럼 포스터(왼쪽에서부터) 〈출처 : 웰다잉문화운동〉
중환자실에서 죽는 노인들 존엄하게 죽을 수 없는 이유
▲ 죽음학회 회장이자 종교학자 최준식 현 이화여대 명예교수 〈출처 : 언론에 비친 이화〉
“늙으면 자연과 가깝게 지내다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래야 마음도 순화되고 몸도 깨끗해지죠. 또 중환자실에서 죽음을 맞는 것이나, 연명치료는 피하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가장 좋은 임종의 모습은 영혼이 몸에서 벗어나기 전까지 의식을 갖고, 가족들과 좋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겠죠.” 바람직한 죽음에 대해 최준식 교수는 이렇게 답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바람직한 죽음을 찾기 힘들다. 대한재택의료학회 창립 심포지움 ‘노인돌봄 의료와 재택의료의 방향’ 주제발표에서 김윤(의료관리학) 서울대 의대 교수는 한국 사망자의 74.8%가 의료기관에서 숨졌다고 밝혔다. 지난해 총 사망자 37만2800명 중 28만8854명이 의료기관 사망자라는 뜻인데, 십년전보다 15%증가한 것이라 한다. 2009년부터 2019년까지의 선진국은 의료기관 사망률이 줄어드는데 비해, 한국은 늘고 있다. 집과 같은 편안한 공간이 아니라 병원에서 삶을 마치는 사람의 비중이 훨씬 크고, 재택 임종에 대한 염원이나 편안한 공간에서 죽음을 맞고자 하는 웰다잉의 세계적인 추세와도 반대이다.
그 이유는 온 가족이 모여 살던 전통사회가 해체된 현대사회에서 노부부만 남거나 사별 후 홀로 사는 노인세대가 급격히 늘면서 자립생활이 어려워지면 요양시설로 가게 되고, 노환도 병으로 간주하기에 마지막 죽음의 장소가 병원이 되는 것이다. 죽음 산업이란 말이 생겨날만큼 병원마다 경쟁하듯 장례식장은 확장하지만, 병원과 국가는 가족과 함께 마지막 시간을 보낼 임종실 설치에는 관심이 없다. 죽음이 임박하면 중환자실로 환자를 옮겨 죽음대신 연명의료를 겪게 된다. 2019년 한 조사에 의하면 종합병원 중환자실 환자의 56%가 70대 이상 노인이었다. 언제부턴가 한국에서는 죽음이 다가올 때, 연명의료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경험하게 되었다.
식물인간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달라는 가족의 요구를 대법인이 받아들인 ‘세브란스 김 할머니 사건’ 이후, 연명의료를 거부하는 ‘자기결정’을 존중하기 위해 2018년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 결정법)이 전격 시행되었다. 하지만 연명의료 결정법 시행 후에도 우리의 죽음은 획기적으로 존엄해지지 않고 있다. 생애 마지막 장소로 병원을 선택하는 국민의 비율은 줄지않고 있으며 2004년부터 요구되어 온 종합병원 임종실 설치의무 법안 역시 이십년이 지나도록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초고령화 되어가는 한국 사회에서 노인을 돌보는 사람은 없고, 늙으면 결국 집이 아닌 요양시설과 병원을 전전하다 중환자실에서 삶을 마감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오토에게 배우는 ‘웰다잉’
▲ 영화 오토라는 남자 포스터와 스틸컷 〈출처 : 소니픽쳐스코리아〉
우리는 품위 있게 살고 싶은 만큼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해야 할 의무가 있다. 웰빙이 중요하다면 웰다잉도 중요하다. 그러면 좋은 죽음이란 어떤 것인가? 편안한 마음 상태에서 맞이하는 죽음, 가족에게 부담 주지 않는 죽음,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다 가는 죽음, 주변 정리를 잘해놓고 가는 죽음을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바람직한 참 죽음을 연구하고, 한국인과 한국 문화 특성을 연구하는 이화여대 한국학과 최준식 명예교수는 2005년 ‘한국죽음학회’를 국내 처음으로 발족한 후, 많은 죽음세미나를 열고 웰다잉가이드라인을 제정하였다.
한국죽음학회(저자:최준식교수외) 가 쓴 ‘한국인의 웰다잉 가이드라인’에서 죽음을 당하지 말자. 죽음을 맞이하자라는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을” 내세우며, 참죽음을 고민하게 한다.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유언장’과 ‘사전의료의향서’가 포함된 이 책은 다음의 세가지 면에서 웰다잉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1. 죽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도와준다.
2. 죽어감과 죽음을 받아들일 ‘앎’을 제시한다.
3. 죽음 앞에 선 인간의 존엄함을 지켜줄 원리와 방법을 제시한다.
인간이 맞는 가장 아름다운 삶의 장면은 바로 죽음이다. 이 책은 죽음을 숨겨야 할 어떤 것이 아닌, 우리 모두 받아들이고 소통하면서 아름답게 임하는 삶의 한 장면으로 승화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수많은 죽음과 관련된 책과 영화가 있지만, 아름다운 삶의 뒤 죽음의 모습으로 아내와 사별후 죽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영화 <오토라는 남자>의 오토가 생각난다. 오토는 아내 소냐가 죽은 후, 트라우마를 겪는 괴팍함이 주재료인 꼰대다. 매일 같은 시간에 눈을 뜨는 오토에게 눈에 거슬리는 이는 누구도 독설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괴팍함이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낸 오토의 트라우마를 숨기기 위한 방어기제 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짠하고 슬퍼진다. 천장에 목을 매달기도 하고, 차 안에서 가스를 채워 질식사도 시도하는 오토는 죽음이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치유인데, 앞 집에 이사온 마리솔과 이웃의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방문으로 죽으려는 시도는 방해를 받는다. 이후 타인에게 마음을 연 오토는 아내 소냐가 그랬던 것처럼 이웃에게 베풀고, 그들의 삶을 공유하면서 트라우마를 극복한다. 죽음을 포기하고 아내의 유품도 정리한 오토는 평화를 찾는다.
마리솔 가족을 다 태울 수 있는 큰 차를 사서 함께 여행도 다니며 사람답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고 눈이 많이 내린 어느날 오토는 아내곁으로 떠난다. 유서에서 마리솔에게 고양이를 맡기며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돈과 집, 자동차 전부를 남긴다. 그토록 따라가려했던 아내 소냐 곁에 묻히게 된 오토를 떠 올리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좋은 죽음을 택한 이가 아닌가 한다. 웰다잉의 가이드라인 첫째 오토는 아내의 죽음과 자신의 죽음을 향한 시도를 통해 죽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둘째, 심장병을 앓고 있던 오토는 몸상태가 예전같지 않음을 알고 떠날 준비를 하면서 유서를 쓴다. 죽어감과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웃으로 만난 마리솔 가족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며 가치있고 귀한 존재로서의 존엄성 또한 지켰다 생각한다.
가족없이 홀로된 오토가 이웃에게 마음을 열고 고립에서 세상 밖으로 나와 평화로운 죽음을 선택했기에 ‘잘 살면, 잘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게 아닌가 한다. 오토에게서 웰다잉을 배운다.
참고자료
웰다잉문화운동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삶과 죽음에 대한 문화적 감성을 공유할 수 있도록 웰다잉 콘텐츠를 개발하며 법과 제도 기반 구축을 위하여 캠페인을 주도합니다. 이를 위해 유언장 써보기, 생애보 만들기, 유산 기부, 연명의료 결정 후견제도 확산 등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집에서 임종하고 싶어도, 대부분 병원에서 죽는다 [9시 뉴스] / KBS 2023.04.18.
[Full] EBS 초대석 -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 최준식 (명예교수)
사후 생을 준비하는 것이 본인에게 이로운 이유 | 육체와 영혼 | 최준식 교수 '죽음학 강의' 1 - YouTube
시민기자단 최미진 기자(marmara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