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3일 오후 6시가 되자 당현천을 산책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시그널 음악이 나오고 있다. 영화 ‘멋진 하루OST’에 수록된 ‘10시 12분’이라는 곡이다. 이어서 DJ의 상큼한 목소리가 들린다. 라디오라도 틀어둔 것일까? 가만히 귀 기울여서 방송을 들어봤다. DJ가 자꾸만 “우리 노원구~”라는 말을 되풀이한다. 공중파 방송이라고 하기엔 노원구가 많이 부각되고 있다. 곧 필자의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당현천 곳곳에 ‘듣고 싶은 음악·사연을 신청하세요!!’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당현천 산책길에 볼 수 있는 노원 음악방송 신청곡 QR코드 안내문 ©윤혜숙
지난 4월 27일부터 노원구는 당현천과 경춘선 숲길을 산책하는 구민들을 위해 노원 음악방송을 시작했다. 음악방송은 당현천 2.9km, 경춘선 숲길 6.3km 구간에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운영하고 있다. 주간 음악방송은 오후 12시부터 오후 4시까지 트로트, 발라드,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려주고, 야간 DJ방송은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DJ가 실시간 방송을 진행한다. 그래서 시민들에게 신청곡과 사연을 받고 있다. 일요일과 공휴일은 운영하지 않는다.
당현천 산책 도중 오픈채팅방에 접속해서 곡을 신청하는 시민(좌), 필자도 노원음악방송 DJ에게 신청곡을 보내봤다(우) ©윤혜숙
매일 저녁을 일찍 먹고 6시쯤 당현천을 산책한다는 이정은 씨에게 소감을 여쭤봤다. 그는 “저녁마다 당현천에서 막내동생을 만나서 같이 산책하고 있다. 산책하면서 사연과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즐겁다”라고 대답했다. 이어서 “산책하다가 갑자기 듣고 싶은 노래가 있을 때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노원음악방송’으로 입장해서 신청곡을 사연과 함께 보낸다“면서 필자에게 휴대전화로 신청하는 것을 보여줬다.
필자도 노원구 주민은 아니지만 오픈채팅방에 입장해서 당장 듣고 싶은 팝송을 신청했다. 그러자 노래가 나오는 동안 DJ가 바로 필자의 채팅에 답을 해주더니 필자의 신청곡이 스피커를 통해서 흘러나왔다. 당현천 산책길을 걷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 필자의 신청곡을 듣고 있다는 생각에 우쭐해졌다. 이런 기분에 사람들이 DJ에게 신청곡을 보내는가보다.
각자 듣고 싶은 곡을 신청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앞서 필자가 신청했듯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노원음악방송’에 입장해서 곡을 신청해도 되고, 당현천 및 경춘선 숲길 곳곳에 게시한 홍보 현수막의 QR코드를 스캔하여 곡을 신청해도 된다.
노원 마을미디어지원센터 ©윤혜숙
음악방송 운영은 지난해 4월 말 당현천 등축제 당시 신청곡을 접수받아 음악방송을 진행한 바 있었던 노원 마을미디어지원센터가 맡고 있다. 노원 마을미디어지원센터를 방문해서 윤정록 센터장을 만나 노원 음악방송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보았다.
“작년에 마을미디어단체가 당현천에서 라디오 공개방송을 진행했던 적이 있다. 그때 노원구 오승록 구청장도 참가해서 곡을 신청했다. 당현천에 모인 주민들의 호응이 좋았다.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산책하면서 음악방송을 들을 수 있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노원구 주민들뿐만 아니라 타구 주민들도 찾는 명소인 당현천과 경춘선 숲길에는 재난방송 등을 안내하기 위해 곳곳에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 스피커를 활용해서 음악방송을 하기로 했다.”
당현천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 ©윤혜숙
음악방송을 시작하기 전 당현천 및 경춘선 숲길 이용객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1,091명 중 72%가 음악방송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정을 앞당겨서 빠르게 추진했다. 저녁방송을 진행할 전문DJ 두 명을 공개모집을 통해 선발했다. 시행 한 달 전부터는 매일 동일한 시간대에 맞춰서 시험방송을 했다. 공개 선발한 DJ 두 명이 3일씩 번갈아가면서 생방송처럼 리허설을 했다. 저녁방송은 생방송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실수가 없어야하기 때문이다. 한편 양질의 음악방송을 제공하기 위해 당현천과 경춘선 숲길 일직선 구간에 앰프 26개, 노후 스피커 교체 등 총 592개의 고성능 스피커를 설치했다.
지난 2개월 간 오픈채팅방 ‘노원음악방송’으로 신청곡과 사연을 받았는데 어느 순간 그곳이 주민들간의 소통의 장이 되었다. 4월 27일 저녁방송을 시작했을 당시만 해도 신청곡이 없었다. 주민들이 어색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일이 지나면서 달라졌다. 지금은 신청곡이 많아서 2시간 동안 평균 25곡을 들려주는데도 미처 소개하지 못하는 곡들도 있을 만큼 주민들의 참여가 활발해졌다.
저녁 생방송을 준비 중인 DJ 아희 ©윤혜숙
직업이 프리랜서 방송인인 DJ 박아희(예명 아희)씨는 “노원구 방송이지만 장비, 시스템 등 음악방송을 진행하는 DJ 입장에서 보면 모든 면에서 웬만한 공중파 방송국 못지않을 만큼 우수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쁜 사연이 많지만 가끔 슬픈 사연도 올라온다. 그만큼 주민들이 마음을 열고 방송에 참여하고 있다”면서 감사를 표했다.
주로 어떤 곡을 신청하는지 궁금했다. 요일에 따라, 연령대에 따라 신청곡이 달라지긴 하지만, 최근 ‘미스터트롯’이나 ‘팬텀싱어’의 인기 탓에 거기에 나왔던 노래들을 많이 신청한다고 했다.
음악방송을 시작하면서 고충도 있었다. 산책길에 음악을 듣는 것을 모든 주민들이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인근 주택가 주민들에게 음악 소리로 인한 피해를 줄 수도 있다. 그래서 스피커별로 소리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등 주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윤정록 센터장은 “노원주민을 위한 방송이다. 노원주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방송인 만큼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주길 원한다”라고 당부했다.
당현천 산책길을 걷는 주민들 ©윤혜숙
중장년층 이상의 부모님 세대는 라디오를 듣다가 손 글씨로 깨알같이 엽서에 사연을 적어서 음악을 신청했던 옛 추억이 있다. 청년 이하의 신세대는 스마트폰을 통한 실시간 채팅에 익숙하다. 지역주민이 참여해서 함께 만들어나가는 음악방송이라는 점에서 신세대의 관심을 끌고 있다. 당현천 및 경춘선 숲길을 산책하는 노원구 주민들은 음악방송과 함께 하는 산책길이 있어서 즐겁다.
■ 노원 음악방송 운영 ○ 운영장소 : 당현천 및 경춘선 숲길 ○ 운영시간 : 월~토요일(공휴일, 일요일 제외) ○ 신청방법 : 카카오톡 오픈채팅에서 ‘노원음악방송’ 그룹채팅 참여, 현수막 ‘QR코드’ 스캔 URL 클릭 후 신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