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맞이하는 고등학교 겨울 방학
입시 미술학원을 성북구에서 찾는다. 돈암동에서 삼선교를 지나서 혜화동 로터리(혜화동 고가는 2008년 철거됐다)까지 미술학원들을 계속 돌아보고 있다. 연필로 석고를 그리는 데생과 포스터컬러로 칠하는 ‘구성’, 수채 ‘정물화’를 다루는 전문입시학원은 많기 때문에 선택만 하면 된다. 그런데 조소과와 동양화 학원은 흔하지 않아서 찾기도 힘들다. 이 때문에 동양화과를 지망하는 내가 헤매는 시간은 길어지고 있다.
1986년 돈암동
돈암동 국민은행을 끼고 헌트 매장 골목으로 들어가면 모습을 드러내는 KFC 매장은 친구를 만나는 약속의 중심이 되는 장소다. 크고 작은 미술학원과 개인 작업실이 이곳을 중심으로 뻗어 있었다. 성북구에는 서라벌고(1998년 노원구 중계동으로 이전)·보성고(1989년 송파구 방이동으로 이전)·혜화여고(2000년 강북구 수유동으로 이전)를 비롯하여 중·고등학교가 많이 있다.
인근 도봉구·노원구와 멀리 의정부에 사는 학생까지도 이곳 학원을 찾았다. 입시를 처음 시작할 때 친구를 따라오기도 하지만, 막막할 때는 무조건 돈암동을 일대 학원을 알아본 후에 마음이 가는 학원을 선택했다. 물론 엄마가 수소문해서 다니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미술학원이 정해지면 학교에서 저녁 도시락을 먹고 오후 5시에 출발하고, 토요일은 12시 40분에 수업 끝나고 바로, 그리고 주말이나 휴일에는 눈만 뜨면 학원으로 향했다. 대학마다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실기 비중이 30~50%로 크게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도 나름 치열하게 입시를 준비해야만 했다.
입시의 비장함은 학원도 마찬가지다. 입시 결과는 곧 입소문으로 주변 지역에 돌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무한 각축전이 벌어졌다. 이렇게 서로에게 경쟁자이기도 했던 반면, 전쟁을 함께 준비하는 연합군이다. 당시는 모든 입시 소식을 직접 만나서 공유했던 시절이었기에 사람이 곧 정보였다. 또 비정기적으로 일대 학원끼리 연합해서 실기시험도 치렀다. 시험을 통해 학생들 스스로가 객관적인 평가할 수 있게 했다.
▲ 국민은행 옆 헌트 골목 / 연합 실기시험을 치렀던 미술학원(현재는 미술학원 상호가 바뀌었다)
‘미대’ 하면 떠오르는 몇몇 대학을 떨어졌을 경우 재수, 삼수를 심각하게 생각할 정도로 간절했다. 당시 몇몇 미술대학은 입학이 전설처럼 회자되어 학원의 실력으로 평가되었다. 그렇게 겨울 입시 철이 끝나는 2월에 전문대학의 합격자 발표까지 모두 끝나면, 1997년도 합격자가 실명 그대로 현수막에 공개되어 학원 건물 전체를 덮었다. 현수막에 걸린 익숙한 이름에 친분을 과시하는 돈암동 입시촌을 떠올린다.
만남의 장소였던 낡은 KFC에서는 아무도 약속을 하지 않는다
2022년 미술학원은 그 역할이 달라졌고, 모든 정보는 인터넷으로 무한정 제공받을 수 있다. 이제 굳이 직접 만나지 않는다. 그만큼 사람 사이에 관계도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미술 재료를 판매하는 ‘돈암 화방’도 사라졌다. 미대 입시도 완전히 바뀌어서 실기의 비중이 줄었다. 줄어든 학생 수, 그리고 돈암동에 미술학원은 몇 곳 남지 않았다.
▲ 돈암 화방 자리(현재는 통신사 매장이 들어섰다) / 1·2층 전체 KFC(현재는 1·2층 일부만 운영한다)
검색
예전엔 필요한 정보는 발로 찾았다. 문득 ‘검색’이라는 단어를 생각한다. 검색의 수많은 편이성에도 불구하고, 그 때문에 사라진 수고로운 만남과 우연성을 잃었다는 상실감이 든다. 검색으로 무장한 부모는 아이를 낙하산처럼 떨어뜨려 돌발상황이 차단되어 있다. 그렇다면 ‘당시에 나란히 줄을 세운 대학들과 낙오자로 만들었던 대학들의 인식은 개선되었을까?’하고 다른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돈암동 미대 입시촌의 기억과 마주한다
50+시민기자단 우은주 기자 (wej257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