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마포 구립 서강도서관 [다시, 라디오] 첫 강의를 들었다. 마포 FM 송덕호 대표의 진행으로 라디오 이론에서 제작까지 8주간 함께 하는 수강생 10명은 재미있는 게임을 통해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일명 ‘가짜를 찾아라’. 나눠준 종이에 각자 ‘나는~’으로 시작하는 다섯 문장을 쓰는데, 한 개만 거짓말로 쓴다. 한 사람씩 나와서 발표를 하면, 다른 사람들은 추측해 거짓말을 맞춘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을 소개했다. 나의 거짓말은 무엇일까?
1. 나는 방송작가였다
2. 나는 빵을 굽는다
3. 나의 취미는 발레다
4. 나는 맥주를 좋아한다.
5. 나는 일본인이다.
싱겁게도 사람들이 바로 맞췄다. 정답은 5번. 혹시 마스크 때문일까? 나는 일본인 같다는 말을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일어회화 수업에서 마주 앉으신 분이 혹시 일본에서 왔냐고 물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면서 일본에 가본 적도 없다고 대답했다. ‘일본어 발음이 좋아서 그런가?’ 싶어 으쓱하며 이유를 물었다. "왠지 얼굴이……”. 아, 일본어를 잘해서가 아니었구나.
몇 년 뒤, 딸과 둘이서 일본 후쿠오카에 갔을 때다. 옷가게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했다. 일본어 공부를 그만둔 지 오래되었지만, 기억을 더듬어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着てみてもいいですか。(입어 봐도 되겠습니까?)” 계산대 직원은 한국인인 줄 몰랐다면서 일본어를 잘한다고 치켜 주었다. 옷을 샀으니까 그런 말을 하겠지 싶으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자신감을 얻는 나는 공원 입장권을 살 때도 일본어로 말했다. 딸과 우리말을 하면서 걸어가니 매표소 직원이 우리를 불러 세웠다. 외국인 관광객은 할인이 된다면서 다시 입장권을 끊어주었다. 아, 현지인처럼 여행하기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구나.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 외국에 나갔을 때 일본인 혹은 중국인이냐고 질문을 받아본 경험이 있지 않을까? 그럴 때마다 나는 ‘노, 코리안’이라고 답하면서도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가족여행으로 간 태국의 호텔 식당에서였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우리 테이블을 담당했던 직원이 웃으며 "오이시이데스까?(맛은 괜찮으세요?)"하고 물었다. 우리는 한국인이라고 영어로 대답하니, 직원은 곧바로 사과했다. 우리 가족이 한국말로 대화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을 텐데, 조금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우리도 태국인과 베트남인을 잘 구별할 수 있을까? 인도네시아어와 말레이시아어를 구분할 수 있을까? 우리 또한 편견과 무관심 속에 살고 있음을 되돌아보게 된다. 피부가 하얀 백인을 보면 일단 미국인인가 싶고, 피부색이 검으면 그냥 흑인으로 인식하고 어느 나라 사람인지 관심 없을 때도 많다. 그러니 우리를 다른 나라 사람으로 착각하고, 한국어를 모른다 해도 무심히 넘겨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앞으로 어느 나라 사람인지 궁금할 때, 나는 넘겨짚지 말고 “어디서 왔는지?” 정확하게 물어봐야지.
최근 개봉한 할리우드 마블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서 중국인 주인공이 자신을 한국인으로 오해해서 가수 싸이의 말춤을 시킨다는 대사를 듣고 깜짝 놀랐다. BTS를 비롯한 K-POP, 영화 [기생충], [미나리] 등으로 한국 대중문화의 파급력 덕분인가 싶었다. 요사이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기사도 자주 보인다. 한 달 동안 전 세계 1억 4천만 명 이상이 시청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열풍 때문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5억 명 이상 등록한 미국의 언어 학습 애플리케이션 듀오 링고는 [오징어 게임] 방영 이후 2주 동안 한국어를 배우려는 신규 사용자가 영국에서 76%, 미국에서 40% 늘었다고 한다. 특히 미국에서는 영어 더빙으로 보지 말고 한국어 원어로 시청하자는 분위기가 크다 한다.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은 한국어 그리고 한국인에 관한 관심으로 확장될 것이다.
앞으로 코로나로 막혔던 해외여행이 다시 시작되면, 어쩌면 다른 아시아인들이 한국인으로 오해받아 불만스러울 수도 있겠다. 마스크를 내린 나는 여전히 일본사람으로 오해받을지도 모르겠지만!
50+에세이작가단 전윤정(2unne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