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한순간을 마주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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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바로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출처: 방문객 / 정현종
어느 날 정현종 시인의 이 글귀를 만났는데 그때 한참의 시간을 멍하게 있었다. 함축된 글이 주는 의미에 압도되기도 했지만 지난 시간의 수없이 많은 사람과의 만남이 한꺼번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 글은 과거형이지만 한 사람이라는 것은 현재와 미래로 계속 진행 중이다.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바로 지금의 얘기이다. 그 멍함의 시간이 지난 후 다른 익숙한 언어로 이렇게 노트했다.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단순히 한 사람을 아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만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지난 명함첩을 꺼내 보았다. 30년의 직장 생활 중 몇 번의 이사에도 버려지지 않고 남아있는 명함첩을 참으로 오랜만에 꺼내 본 것이다. 그 안에는 실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내가 만난 사람들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전혀 기억도 나지 않는 이도 있었다. 이 사람을 왜 만났지? 하는 사람의 이름도 있었다. 물론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어떤 계기가 있어 만난 것이 분명함에도 시간이 흐른 지금 아무런 연관 관계를 떠 올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진 것이다. 이후 매년 연말이 되면 이 작업을 했었다. 올 한해 내 전화첩에 새로이 등재된 이름, 그리고 그 사람과 만나게 된 연(緣), 또 하나는 지난해 전화첩에 적혀져 있는 사람 중 한 번도 전화하거나 문자를 하거나 인사를 나눈 적이 없는 사람들, 그 작업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 어느 날 지인들에게 이런 나의 얘기를 했다. 그들의 반응은 이러했다. “맞아! 너처럼 그렇게 해봐야겠어.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우리가 만나는 많은 사람, 그중에는 나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도 있고 그저 지나듯 잠시 인사를 나눈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좋지 않은 연으로 끝난 이도 있을 것이다.
대학 졸업 후 교사 생활을 잠시 하고 전직하였는데 그때 내가 담임했던 학생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강원도 출장을 위해 부서 동료들과 기차를 타고 가는 중이었다. 제자들은 그때 대학생이었고 여행지에 가기 위해 기차를 탄 것이었고 열차 안에서 파는 맥주와 오징어 안주를 들고 내게 왔다. “선생님! 저희 기억나세요?” “오! 알지 ” 놀랍게도 아이들 이름이 다 생각이 났다. 참 반가운 만남이었다. 자신들의 얘기를 건넸고 내 근황을 궁금해했다. “선생님 이젠 학교가 아니고 회사 다니시네요. 선생님 얘기 많이 했었어요. 우리 떠나 어떻게 지내시는지. 선생님! 우리 반 학생 중에 철학과에 3명이 들어갔어요. 다 선생님 영향이에요. 저도 그중 하나고요.” 그 얘길 듣고 순간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미안해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뿌듯해해도 되는 건지. 나 때문인 이유가 전부는 아니겠지만 분명 큰 영향을 준 것만은 분명했다.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또 한순간을 만난다는 것은, 짧은 찰나의 시간이더라도 그것이 깊게 툭 쳐 주는 넛지(Nudge)가 되는 순간 방향이 변하는 것이다. 돌아보면 나도 그랬다. 선생님을 만나서, 좋은 선배를 만나서, 지혜로운 어른을 만나서, 진실한 벗과 동료를 만나서, 아니면 스치듯 잠시 나눈 대화를 한 분의 이야기에서 나의 길을 만들고 길의 방향을 정하게 된 것이다. 퇴직 후 서울시50플러스재단을 만난 것도 그랬다. 우연히 문자 한 통으로 어느 과정을 이수했던 곳에서 한 분의 추천으로 보람 일자리에 지원했고 특성화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의 취업 지도를 하게 된 것이 인생 2모작 활동의 계기가 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분들과 함께 지금도 교류하며 지낸다.
이곳에서 인턴십 과정에 지원하여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 자리를 잡은 지인은 어느 날 차 한 잔을 마시며 이렇게 말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을 만난 것은 내겐 큰 행운이었다고. 아니면 아직도 그냥 무기력한 일상의 삶을 보냈을 거라고.
50+시민기자단 안종익 기자(try37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