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고릿적, 호랭이 담배 끊고 까막까치 까악까악 울던 그 시절∙∙∙.
남도(南道) 외딴 촌구석, 아리따운 처자 있어 홀로 홀어미 모시고 살았겠다. 쭈그렁 할망구와 쭉쭉빵빵 경국지색(傾國之色), 동네 남정네들 “앞집에 처녀는 시집을 가고요, 뒷집에 노총각 목 매달러 간단다”고 한치 앞 못 보고 하루 멀다 눈도장 찍히려 어슬렁저슬렁 어기적저기적. 하여, 농사일은 뒷전이라 논엔 쌀나무 듬성듬성 피나무 빠글빠글, 보리밭은 동네 뭇 아낙들 좋으라 하늘까지 치솟아 ‘호랑이 새끼 치게 생겼다’는 둥.

 

 

푸실푸실 비 성가시고, ‘시렁’ 걸려봐라 찬바람 썰렁, 우레 우르릉 번쩍 울던 어느 밤. 소피 보러 ‘똥수깐’ 걸쇠 열다 미끄러진 엄니는 저승사자 등에 업혀 북망산 자락 넘고 홀로 남은 그 처자 환장하게 생겼다. ‘타박 타박 타박네야, 너 어드메 울고 가니. 우리 엄마 무덤가에 젓 먹으러 찾아 간다’. 금새 소문이 피어 두레 붙어 훌떡 장례 치르니 동네 남정네들 등쌀 어이 견딜거나? 앞날이 먹먹하여 방구석 틀고 앉아 치맛자락 주섬주섬, 저고리 세 절 접을 때 고쟁이 속 둘둘 말린 부채 하나, 서간 하나 뚝.

 

마른 하늘 날벼락? 어화둥둥 지화자! 이야기인즉슨, ‘이 부채, 이 서간 내 핏줄 증표’라나. 부채에 낙관 꽝, 서간에 인장 꽝. “천지신명이시여, 정녕 한양 최판서가 나의 아버지이십니까?” 한양까지 머나먼 길, 연약한 지지배 그 어찌 감당할꼬? 도포자락 걸쳐 입고 갓끈 여미고 나그네 봇짐 둘러 매고 아빠 찾아 천릿길. ‘발목에 엉킨 칡넝쿨 내 갈 길 막아도 가자 천릿길 굽이굽이 쳐 가자. 흙먼지 모두 마시면서 아빠 찾아 내가 간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갓쓴애, 나 보기 엮겨워 가시는 걸음걸음 쇠스랑 놓고, 곰방메 던지고, 부리망 뒤집어 쓰고 뒷산 오르는 동네 총각들. 한강수 건너건너 남산자락 들어서니 남산골딸깍발이 뒷맵시 눈 뒤좇고, 휘황찬란 육의전 상사람들 술렁술렁 입 다좇으니 피맛길 가로 질로 여기가 아빠집, 한양 최판서댁이구나. “이리 오너라, 갓쓴애 여기 왔다. 아빠 찾아 내가 왔다”. 대문짝 호랑이 문고리 꽝꽝꽝, 스르렁 스르렁 마당쇠놈 나오니 “암행어사 출두요”. 부채 펴서 내보이고, 난장(蘭章)을 들이 민다.

 

금세 소문 펴서 최 판서 버선말로 툇마루에 올라서서 사내아이, 계집아이? 어여쁘다 이리저리 둘러 볼 때 여기저기 웅성웅성. “갓쓴애여 가쓴애”,  “가쓰내여 가스내”, “가스내여 가시내”. “그려 그려 가시내 가시내”. 아빠 찾아 천릿길, 가시내 그 후로 아들 낳고 딸 낳고 행복하게 살았더라. 그 후로 어여쁜 여자아이 보고 ‘가시내’라고 불렀다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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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믿거나 말거나; 갓쓴애→가스내→가시내
ㅡ 알쏭달쏭; 금새→틀린 말, 금세가 맞는 말: ‘지금 바로’라는 뜻으로 ‘금시에’가 줄어든 말.
ㅡ 호랑이가 새끼 치겠다; 논밭에 풀이 무성하다.
ㅡ 시렁; 감기(함남 방언)
ㅡ 타박네; 왕따
ㅡ 부리망; 새끼로 그물같이 엮어 소의 주둥이에 씌우는 물건
ㅡ 난장(蘭章); 난초의 향 같은 글. 훌륭한 글, 남의 편지를 높인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