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오년전 쯤이었나보다.
30대 후반의 한창 일과 자녀양육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며 강의와 연구를 해내던 시절의 한복판에. 내 또래의 동료들과 오십을 넘은 선배들과 한자리에서 나눴던 대화가 생각난다.
처음 선배들의 대화는 '갱년기' 였다.
50을 넘은 이들은 완경 전후의 시기였고 누군가 넘어질때 마다 뼈가 부러지는 수난사를 경험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자의 완경은 호르몬의 변화로 곧 지방이 배둘레햄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며 각기 의류 사이즈가 어떻게 업되었는가에 열올리고 있었다. 한편으로 '콩'을 많이 섭취해야 한다며 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먹는 이야기, 영양제는 어떤 것이 필수라는 정보들.. 아줌마의 수다로 채워지는 시간이었다. 직장의애환도 연구의 고민도 사라지고 그저 본인들의 '나이먹음'을 안타까와하는 시간이었다.
30대 후반, 대부분 아이들이 초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연구와 자녀양육 사이에서 씨름하고 있던 우리가 보기에 '나이먹은 여자'의 모습은 이런 거구나 다소 실망했던 것같다.
그래서 이어진 한 친구의 질문
'선배님은 기회가 된다면 15년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세요?'
한번 힐끗 보더니 아주 단호한 표정으로 '아니~' 라고 했다.
상대적으로 젊다 자부심을 느끼던 우리로서는 (지금도 그렇지만 젊음이란 최고의 가치라고 믿었으니까) 정말 의외였다.
'아니, 왜요?'
'하하 .. 다시 그 전쟁을 치루는 시기로? 아니.. 지금이 참 좋아..
자유롭거든. 지금은 뭐든지 내 하고 싶은대로 다 해.. 연구도 여행도 이렇게 친구들과 수다떨기도..'
순간 30대 후배들은 머리를 얻어맞은듯이 띵했다.
자유롭다고 ? 지금이? 에이... 그냥 하는 말들이겠지..
50 하고 삼년을 더 먹은 오늘 그 말의 뜻을 이해한다.
"
자유롭다.
"
30대 .. 무언가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는 강박에 절절매던 그 시기가 아니라
시계를 들여다보며 아이를 찾으러 학교에서 놀이방(어린이집)으로 뛰어가던 내가 아니라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 내 맘대로 내 시간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자유롭다.
오십이 넘는 아줌마와 할머니 사이의 여자이기에
젊은 여성이 갖는 상대적인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어 또한 자유롭다.
무언가 심혈을 기울이기에 적당한 체력을 아직은 지니고 있고 , 식지 않은 열정을 잃지 않아서 또한 행복하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란 없을 거라는 적당한 자신감과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우선순위를 저울질하는 고민과
여전히 나를 감동시키는 일상의 즐거움에 너무도 감사하다.
일하는 여자의 오십은 자유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괜찮을 정도로 충분히 자유롭고 행복하다.
내 역할이 무엇이든
그것이 50플러스 캠퍼스에서의 내 일이든 혹은 가족내에서의 또 다른 돌봄책임자이든 여전히 내 선택일 수 있어서 나머지 나의 인생도 기대된다.
여자 아이로, 여학생으로, 젊은 여성으로, 아기 엄마로 내가 누렸던 그 어떤 시기보다 지금이 가장 자유롭다.
한국사회에서 오십의 남성이 경험하는 것에 비해 여성, 일하는 여성의 오십은 더 긍정적인 의미이다.
함께 일하는 우리 직원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오십 넘어봐.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