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활동명 : 책 읽는 풍경의 영화이야기
■ 일시 : 2023. 11. 4(월) 16:00 ~ 20:00 ■ 장소 : 명와 선생님 댁 ■ 참가자 : 강성자 대표 외 회원 5명
■ 주요내용
- 영화와 우리들의 이야기..... 공감공감~~
- 삐삐, 엘리의 여행 이야기 감상
■ 평가 및 향후 계획
- 12월 4일 독서 나눔
: 모비딕(H. 멜빌, 저)을 읽어본다.
* 엘리의 감상문은 우리들 이야기에 풍성한 울림을 선물해준다. 감사~^_^*
2023년 11월 6일 책 읽는 풍경_엘리
영화 Searching for Sugar Man
‘책 읽는 풍경’에서는 11월에 모처럼 책이 아닌 영화, <서칭 포 슈가맨>을 이야기 소재로 선정했다. 때마침, <서칭 포 슈가맨>은 개봉 11주년을 맞아 재개봉하였기 때문에 운 좋게도 상영관에서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영화는 다양한 층위에서 각자의 사유를 통과하여 다르게 이야기된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끝나고 내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 입 밖으로 중얼거린 말은 이런 거였다. ‘딸 셋을 참 잘 키운 아버지구나…’ ‘아내 이야기는?...’ 아내의 모습은 일절 함구다.
*‘I wonder who his partner and 3 daughters’mom is or maybe was…’
공사판 험한 일을 하면서도 턱시도를 차려입고 나왔다는 동료의 인터뷰가 인상적이다. 로드리게스에게 앨범 성공 여부는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묵묵히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해나갔고 사랑했고 가정을 이루었고 욕심을 부리지 않았을 뿐이다. 눈이 수북이 쌓인 디트로이트의 황량한 거리를 휘적휘적 걸어가는 로드리게스를 카메라는 *트래킹 샷으로 한참 따라간다. 로드리게스는 미스터리하게 자신을 은폐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는 그다!
*트래킹 샷(tracking shot)은 카메라가 피사체의 움직임과 같은 속도, 같은 방향으로 따라가면서 촬영하는 기법을 말하는 것으로, 트래블링 샷 또는 팔로우 샷이라고도 한다.
*Rodriguez - I Wonder (Lyrics)
I wonder how many times you've been had
And I wonder how many plans have gone bad
I wonder how many times you had sex
I wonder do you know who'll be next
I wonder I wonder, wonder I do
I wonder about the love you can't find
And I wonder about the loneliness that's mine
I wonder how much going have you got
And I wonder about your friends that are not
I wonder I wonder, wonder I do
I wonder about the tears in children's eyes
And I wonder about the soldier that dies
I wonder will this hatred ever end
I wonder and worry my friend
I wonder, I wonder, wonder don't you?
1. 식스토 로드리게즈(1942.07.10.~2023.08.08.)
-1942년 7월 10일 미시건 주 디트로이트의 히스패닉 가정에서 여섯 번째로 태어났다. 이름이 식스토인 이유도 그 때문. 웨인 주립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한 뒤에 임금 노동자로 생활하면서 술집에서 노래를 하던 그를 모타운 산하의 서섹스 레코드에서 발굴하여 가수로 데뷔한다. 많은 기대를 받은 그의 앨범은 당대의 유명 프로듀서에 의해 제작되면서 1집 Cold Fact(1970)와 2집 Coming from Reality(1971)를 발매했다. 하지만 1집 Cold Fact의 미국 내 매상 매수는 단 여섯장에 그쳤는데, 그마저도 3~4장은 가족과 프로듀서가 산 것이라고 한다.
-호주와 남아공에서의 인기로 로드리게즈가 벌어들인 돈은 어마어마한 수준. 거기에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유럽권에서도 로드리게즈의 인기가 올라갔고, 로드리게즈를 다룬 다큐멘터리 '서칭 포 슈가맨'이 오스카 수상을 하면서 로드리게즈의 가치는 그야말로 천정부지에 이르게 되었다. 로드리게즈가 북미권에서 작게 한 콘서트들만 봐도 몇천석 규모에 공연비도 많이 받았다고 하며 2013년에 진행한 남아공 투어만으로 70만 달러를 벌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두 번째 앨범 Coming from Reality(1971)의 커버 사진을 찍은 디트로이트 시내의 빈민가에 자리잡은 허름한 집에서 컴퓨터나 TV도 없이 살았는데, 로드리게즈의 말로는 입을 것, 먹을 것, 잘 곳 있으면 더 필요한 것이 없다고 발언했다. 수입 대다수를 성공하기 전에 신세진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줬는데, 자신을 위해 쓰라고 해도 핸드폰 하나 안 샀다고 한다.
-생전 로드리게즈의 공연 일정이 빡빡해, 오랜 육체 노동과 건강 악화에 노화로 가족들이 많이 걱정했다고 한다. 2023년 2월부터 앓은 뇌졸중으로 인해 8월 8일 향년 81세로 사망했다.
2. 연보
-1970~1971년 첫 음반
-1970~1980년 남아공에서 대유행; 수 백만장 판매 ( 남아공 상황 : 악명 높은 아파르트헤이트로 봉쇄된 상태, 당시 남아공은 극심한 인종차별정책과 함께 나치 독재의 부활이라고까지 여겨질 만큼 끔찍한 정치적 현실에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주변에 스파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겁에 질려 있었고, 정부 정책을 비판한 사람들은 어김없이 잡혀갔다. 어떠한 외국 공연도 허가되지 않았으며, 유통되는 모든 음반은 일일이 검열되어 폐기되었다. 이때, 앨범 제목처럼 ‘콜드 팩트’, 차가운 현실 앞에 등장한 로드리게즈의 노래들은 남아공에서 저항운동의 시작이자 탈출구로 여겨지게 되었다.
-1979년 호주 투어 : 두 번의 투어에서 첫 공연은 무려 1만 5천석 규모로 진행했다고 한다. 호주 투어 당시 10대인 두 딸과 함께 여행하는 마음으로 갔는데, 로드 스튜어트 급의 대우를 받았으며 호주의 음악 마니아들 사이에선 브루스 스프링스틴이나 빌리 조엘과 함께 필청해야 할 가수로 여겨졌다고 한다.
-1998년 : 로드리게즈는 살아있는 전설로 남아공을 방문, 1998년 3월 8일 콘서트를 열어 새로운 가수 인생을 시작한다. *로드리게즈는 인생에서 가장 성공했다고 느낀 순간으로 남아공이 아닌 호주 공연을 꼽는다.
-2006년 : 감독 말릭 벤젤룰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랑하다 미국의 포크록 가수 식토 로드리게즈의 사연을 처음 접한다.
-2012년 영화 Searching for Sugar Man 개봉, 장르: 다큐멘터리 //러닝타임: 86분
2012년
61회 멜버른 국제 영화제(관객상 - 다큐멘터리)
34회 모스크바 국제 영화제(다큐멘터리 경쟁)
28회 선댄스영화제(관객상(월드시네마 다큐멘터리), 심사위원특별상(월드시네마 다큐멘터리)
2013년
85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장편다큐멘터리상)
-2013년 *로드리게즈는 이를 계기로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도 참석했다.
65회 미국 작가 조합상(다큐멘터리 각본상)
66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다큐멘터리상)
65회 미국 감독 조합상(감독상(다큐멘터리부문))
36회 예테보리국제영화제(로렌스(제작자)상)
18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장편 다큐멘터리상)
-2014년 5월 13일 감독 말릭 벤젤룰 ;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향년 36)
-2018년 투어를 마지막으로 음악 활동을 그만 뒀으며, 오랫동안 앓은 녹내장으로 인해 거의 시력을 잃었다고 한다.
-2023년 8월 8일 향년 81세로 사망 (2월부터 앓은 뇌졸중)
*한국에서 개봉 11주년을 맞아 2023년 10월 11일 재개봉했다.
3. 영화, 다큐 <서칭 포 슈가맨>
-몇 안되는 Cold Fact 앨범 구매자 중 한 명인 미국인 여성이 남아공에 남자친구를 만나러 갈 때 가져가면서, 남아공에 그의 노래가 전파된다. 당시 아파르트헤이트로 세계로부터 고립되어 내외부적으로 암울한 상황인 남아공에서 Sugar Man의 가사는 큰 반향을 일으켜 시대를 이겨내는 민중들의 주제가가 된다.
-남아공에서는 롤링 스톤즈를 능가하는 폭발적 인기와 더불어 로드리게즈란 가수에 대한 호기심도 커져갔는데, 워낙 알려진 것이 없었기에 공연 중 무대 위에서 권총 자살을 했다는 둥, 분신자살을 했다는 둥 소문만 무성히 퍼져나갔다.
-이후 몇 십년의 시간이 흐르자 그는 실체가 없는 전설 속 인물이 되어 모두가 당연히 세상을 떠난 인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 속 여정은 '그는 어디있는가?'가 아니라 '그는 어떻게 죽었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했다. 두 명의 열성팬인 중고 음악상 스테판 시거맨과 음악 평론가 크레이그 바솔로뮤가 의기투합해 로드리게즈의 흔적을 찾아나서기로 하는데 단서가 거의 없어 매우 고생한다.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단서는 로드리게즈가 쓴 노래 가사인데, 노래 'Inner City Blues'의 가사 "Meta girl from Dearborn Early six o'clock this morning"에서 '디어본'이라는 지명이 반전의 계기가 되었다. 디어본은 디트로이트 내의 지명인데, 이것이 꼬리의 꼬리를 물어 Cold Fact 앨범의 프로듀서 마이크 티어도어로 이어진다.
-바솔로뮤는 티어도어에게 전화를 걸어 (로드리게즈에 관한 수많은 질문들과 함께)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 묻자 돌아온 답변은 당연히 "...로드리게즈 잘 살아있는데?" 이에 죽은 사람을 찾기 위한 여정은 결국 산 사람을 발견함으로 끝났으며 바솔로뮤는 이 여정을 '로드리게즈를 발견! 죽은 가수를 찾은 지 3년'이라는 기사로 마무리한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여정의 시작이었다. 기사는 인터넷을 통해 대서양을 건너 로드리게즈의 장녀 에바에게 우연히 전해졌고, 시거맨, 바솔로뮤에게 로드리게즈의 연락이 직접 닿게 된 것이다. 이후 로드리게즈는 살아있는 전설로 남아공을 방문, 1998년 3월 8일 콘서트를 열어 새로운 가수 인생을 시작한다.
4. 말릭 벤젤룰(1977~2014) 감독의 자살
-벤젤룰은 1977년 스웨덴 이스타드에서 출생했고 린네대학교에서 저널리즘과 미디어 프로덕션을 전공했다. 졸업 뒤엔 스웨덴 공영방송
2006년, “이야깃거리를 찾기 위해” 모든 일을 그만둔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랑하다 미국의 포크록 가수 식토 로드리게즈의 사연을 접한다. 벤젤룰은 그의 이야기를 장편다큐멘터리로 제작하려 했지만 아무도 호응해주지 않았고 그는 결국 혼자 힘으로 <서칭 포 슈가맨>을 만들었다. 다행히 프로듀서 존 뱃섹과의 만남을 계기로 제28회 선댄스영화제에 영화를 출품한 그는 심사위원특별상과 월드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이후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장편다큐멘터리상을 비롯해 각종 영화제에서 모두 33개의 상을 받았다.
5. 씨네 21 우혜경 영화평론가 2012년 10월
;드라마틱한 삶의 중심 <서칭 포 슈가맨>
1970년대 미국 디트로이트의 부둣가 뒷골목, 담배 연기 가득한 한 술집에서 손님들을 등지고 노래하던 가수가 있었다. 그의 실력을 알아본 프로듀서가 그의 앨범 두개를 냈지만 미국에서는 이렇다 할 반향을 얻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시간과 함께 사라진다.
하지만 신기한 일은 여기서부터다. 그의 첫 번째 앨범 ≪콜드 팩트≫(Cold Fact)가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우연히 건너가면서 엄청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남아공은 극심한 인종차별정책과 함께 나치 독재의 부활이라고까지 여겨질 만큼 끔찍한 정치적 현실에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주변에 스파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겁에 질려 있었고, 정부 정책을 비판한 사람들은 어김없이 잡혀갔다. 어떠한 외국 공연도 허가되지 않았으며, 유통되는 모든 음반은 일일이 검열되어 폐기되었다. 이때, 앨범 제목처럼 ‘콜드 팩트’, 차가운 현실 앞에 등장한 로드리게즈의 노래들은 남아공에서 저항운동의 시작이자 탈출구로 여겨지게 되었다. 제때에 도착한 노래. 하지만 정작 로드리게즈 자신은 노래와 함께 도착하지 못했다. 그의 앨범은 남아공에서 비틀스의 ≪애비로드≫(Abbey Road) 와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roubled Water)만큼 많이 팔렸지만 그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무대 위에서 분신자살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신문에서는 로드리게즈를 찾아줄 ‘음악평론가 탐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콜드 팩트≫에 실려 있는 노래의 제목을 따서 지은 ‘슈가맨’이라는 애칭의 가수 로드리게즈를 찾아나서는 이 다큐멘터리는 이렇게 긴 배경 설명이 끝난 뒤에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말릭 벤젤룰 감독은 스웨덴 텔레비전에서 엘튼 존이나 비욕 같은 팝스타에 대한 프로그램을 만든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장편 데뷔작인, <서칭 포 슈가맨>을 만들어냈다.
‘서칭 포’로 시작되는 다큐멘터리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이 영화는 슈가맨, 로드리게즈의 흔적을 쫓아가지만 결국 영화가 찾아낸 것은 로드리게즈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를 찾아가는 과정에서의 ‘어긋남’이 이 다큐멘터리의 중심에 놓이게 된다. 때문에 사실 질문은 ‘그는 어디에 있는가?’라기보다 ‘우리는 왜 그를 찾지 못했는가?’가 될 것이다. 그는 남아공에서 엄청난 앨범 판매고를 올렸지만 ‘돈의 흐름’ 바깥에 있었고, 유명세와 전혀 무관한 노동자의 삶을 살고 있었다. 드라마틱한 삶의 중심에 서 있었지만 정작 로드리게즈 자신은 그 ‘드라마’에 등장하지 않는다. 이때 다큐멘터리는 기다렸다는 듯 바로 그것이 드라마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로드리게즈를 찾는 과정과 거의 동일한 비중으로 그 삶의 드라마를 담는다. 여기에 그가 발표했던 많지 않은 노래들이 로드리게즈의 40여년 삶의 이야기와 함께 배치된다. 수평 트래킹으로 도시를 걷는 외로운 로드리게즈의 모습을 담은 이 장면들은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이 영화가 결정적으로 다른 ‘서칭 포’ 다큐멘터리들과 다른 점은 이 모든 이야기가 다 밝혀지고 난 다음 한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실제로 로드리게즈를 찾아나선 ‘탐정’들이 3년 만에 그를 찾아낸 것은 1997년이었으며, 그 다음해인 1998년, 로드리게즈는 남아공에서 성대한 ‘커밍 아웃’ 콘서트를 열었다. 말릭 벤젤룰이 아프리카 여행 도중 로드리게즈의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이 그로부터 8년이나 지난 2006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시차’를 이해할 수 있겠지만, 영화 속 어디쯤, 왜 이 이야기를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꺼내들었는지가 설명되었더라면 좋았을걸 하며 아쉬운 게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로드리게즈의 또 한번의 때늦은 이 도착은 감동적이라기보다 어쩐지 서글프다.
The film's narrative of a South African story about an American musician omits that Rodriguez was successful in Australia in the 1970s and toured there in 1979 and 1981. Because of this omission, some critics have accused it of engaging in "myth-making". However, the film focuses on Rodriguez's mysterious reputation in South Africa and the attempts of music historians there to track him down in the mid-1990s. South Africans were unaware of his Australian success due to the harsh censorship enacted by the apartheid regime, coupled with international sanctions that made any communication with the outside world on the subject of banned artists virtually impossible.
최윤 서강대 명예교수(70)는 여러 가면을 갈아끼우며 살았다. 불문학자인 그는 작가였고, 번역가였으며, 엄마였다. 제자들 박사학위 논문을 검토하고, 이청준·조세희·최인훈·윤후명·이문열 소설을 유럽에 번역 소개했으며, 프랑스어 성경을 한국 최초로 번역하다가 일생이 흘렀다. 그러면서도 삶의 가면 뒤 맨얼굴은 늘 소설가였다. 가면을 바꿔쓸 때마다 그것은 모두 의미로 가득했다.
최윤 작가의 나이 올해 일흔, 인생의 시월이다. 한국·프랑스 문학과 평생 동행했던 그에게 사막의 환영이 자꾸만 어른거린다. 신간 에세이 '사막아, 사슴아'는 사막과의 열애사(史)를 기록한 책이다. 최 작가를 지난 6일 오후 서교동 문학과지성사에서 만났다.
"지구엔 100군데 넘는 사막이 있다고 해요. 제가 밟아본 사막은 대략 10곳. '지금, 여기'의 삶이 삐걱거릴 때마다 사막을 '호흡'하러 떠났습니다."
'작가 최윤'의 등장은 그의 파리 프로방스대학 유학 시절 전후로 돌아간다. 그는 1978년 문학평론가, 1988년 소설가로 데뷔했다. 실험적 기법과 문체, 아름답지만 몰락 중인 인물을 창조할 때마다 굵직한 상이 그의 이름에 덧씌워졌다. 1992년 동인문학상 수상작 '회색 눈사람', 1993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하나코는 없다'는 오늘날 순수문학계의 교범이요, 정전과도 같다. 최윤 소설 '저기 소리 한 점 없이 꽃잎이 지고'는 1996년 이정현 주연의 영화 '꽃잎'의 원작이기도 하다.
이번 산문집에서 최 작가는 세계 10곳의 사막을 사유한다. 중국 신장지구 화염산,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 사막, 미국 뉴멕시코주 화이트 샌즈의 기억이 문장으로 담겼다.
"삶의 첫 흉년이었던 해에 사막을 만난 뒤로 사막에 빠져들었습니다. 아마추어 여행자로서, 가이드를 따라 광대한 건조함이 만들어내는 기이한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지만요. 그렇다 해도 수많은 발자국의 오랜 애무로 만들어진 길에선 침묵, 광막함, 무(無)시간성을 만나게 됩니다."
최 작가가 밟은 사막이란 이런 곳이다. 중국 톈산산맥 투르판 사막엔 '명사산(鳴沙山)'이 있다. 울음소리 나는 모래산이란 뜻인데, 높게는 500m짜리 모래가 둔덕을 이뤘다가 바람 불면 웅웅거리며 흘러 다른 둔덕을 만든다. 뉴멕시코주에서 만난 화이트 샌즈의 모래는 '녹지 않는 눈'이다. 손을 넣어도 젖지 않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눈(雪).
매번 사막은 '온전히 비어 있음'의 상태였다. 자기를 비워낸 사막을 볼 때마다 깨달았다. 우리 삶의 우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자연도 인간도, 근원으로 돌아가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니까요. 삶에는 흙탕물로 흐려진 것들에서 과감히 등을 돌릴 때 보이는, 그런 시원(始原)이 있습니다. 사막을 보는 시간은 한 본질이 다른 본질을 무화시키는 시간이에요. 책엔 그런 생각들을 담았어요."
에세이에는 튀르키예 괴레메 지역의 광야, 비장하게 말라죽는 모하비 사막의 죠수아 나무 등 직접 찍은 사진이 자세하다. 최 작가의 사막 여정은, 국문과 출신으로서 불문학을 전공했고, 프랑스문학 전공자로서 한국소설을 썼던, 그의 무국경의 정서를 닮았다.
그는 '문학을 가르치는 것, 문학을 하는 것, 문학을 사는 것'의 경계를 오갔다. "문학을 '하다'라는 건, 내가 하는 문학이 결국 나의 삶을 변모시키는 걸 의미해요. 불완전한 인간인 작가도 자신이 쓴 문학작품에 걸맞은 사람이 될 때가 있어요. 작가가 완전하기 때문에 완전한 작품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지점이 있고 그 지점을 극대화해 글 쓸 때 완전한 작품이 나옵니다. 삶의 터득이 있어 쓰는 게 아니라, 쓰면서 터득하는 삶인 것이에요. 그게 문학의 육화일 겁니다."
최 작가는 오랫동안 '사시(斜視)의 시학'을 주장해왔다. 학생과 독자에게 자주 사시의 시학을 견지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한쪽 눈은 현실에, 다른 한 눈은 미래에 고정하는 것이 문학이 아닐까 싶어요. 문학이란 현재로 만족하지 않으니 쓰는 것, 불완전하고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서 쓰는 것이니까요. 근본적으로 문학인인 저의 문학관은 사시의 이중적인 시선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집필실은 전북 무주다. 은퇴 전, 지인들과 십시일반 모아 예술인 마을을 만들었다. 한번 내려가면 2주쯤 머무는 그의 작업실 창밖엔 적상산 중턱까지 안개가 둘러져 있다. 최 작가는 그곳에서 요즘 '생명'에 관한 장편 하나, 어른을 위한 동화, 그리고 번역서 한 권 등을 작업 중이다.
최 작가는 문학의 감동이 '공감'에서 온다고 본다.
"문학이란 생면부지 남이었던 존재에 접속하는 것, 타자의 삶의 '복부'에 숨어들어가는 것이에요. 더러 작품이 멀게 느껴지고 독자가 지나치게 되는 얘기도 있지만, 삶이란 바로 그곳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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