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커뮤니티
커뮤니티 게시판

내 신혼시절 밥상

   

지금 생각해봐도 그 시절을 어떻게 지냈나 싶다.

 

난 신혼살림을 시부모님과 시누, 시동생 거기에다 둘째 시누의 딸인 조카와 함께했다. 일곱 식구.

 

아침 여섯 시면 기상해서 남편의 밥상을 준비했다. 남편을 출근시키고 나면 시동생 출근, 그 후엔 온 가족의 아침 밥상을 차렸다. 하루에 적게는 다섯 번, 많게는 일곱 번에서 여덟 번까지 재래식 부엌에서 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했다. 시부모님 앞에선 힘들단 내색 한번 못했다.

 

결혼할 때 엄마는 시부모님 앞에선 맨 발을 보이면 안 된다고 하시며 당시 유행하던 롱 드레스까지 사 주셨다. 시부모님과 함께 살다 보니 롱 드레스에 덧버선이라도 꼭 신는, 부모님의 예절 교육 덕에 난 정말로 순진하기까지 한 참한 새댁이었다.

 

그 시절 난, 코피를 자주 쏟았다. 병원에서도, 약국에 가서 물어봐도 별 이상은 없다 한다. 힘이 들고 피곤한 것이 이유였다는 것을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결혼 전에는 부엌일을 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여고 때까진 집에 가정부 언니가 있었고 그 후엔 공부한다 직장 다닌다 해서 밥도 한번 지어보지 않고 결혼을 했다.

그랬던 내가, 결혼을 하자마자 일곱 명이나 되는 시댁 식구들 밥 해대기가 얼마나 힘이 들었겠는가. 일도 잘 못하는 내가 내색 안 하고 시부모님 앞에서 조신한 며느리 노릇까지 하느라 육체적 고통이 컸던 탓이었다.

 

남편에게 가정부가 필요해서 나랑 결혼했냐?”라고 푸념할 정도로 힘든 신혼 생활이었으니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의 내가 딱해 보인다. 그래도 세월이 흐르니 언제 그랬냐 싶다.  시절을 잘 견디었기에 지금의 평화가 있는 것이리라.

 

삼시세끼 준비로 힘들었던 신혼시절이 있었던 탓인지 그 후 웬만한 일에는 힘들다 하지 않았다. 지금도 명절이나 가족모임이 있으면 모두 우리 집으로 오라고 한다. 솜씨는 그리 좋지 않아도 밥상 차리는 일은 내겐 일도 아니다. 단지 점점 일이 하기 싫어지는 데 그것도 그 시절 탓인지 모르겠다.

    

전체댓글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