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2문학나눔 1차 도서 76권이 새로 들어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대문50플러스센터에서 북 코디네이터로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있는 50플러스들은 어떤 책을 제일 먼저 골랐을까요?
새로 들어온 책 가운데 북 코디네이터가 고른 5권의 독후감을 나눕니다.
『헌책방 기담 수집가』 / 윤성근 지음/ 2022년 / 프시케의숲 펴냄
그야말로 잡자마자 이 책에 푹 빠져 버리고 말았다. 책 안에 내 청춘의 발자국들이 선연히 여기저기 찍혀 있는 걸 느끼며 공감 또 공감.
책을 안 읽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단군 할아버지 이래로 신간 종수는 줄어들지 않고 계속 출간되고 있다. 그리고 책에 관한 책은 변함없이 책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우주에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직 많다!
저자 윤성근은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하는 책방지기인데 글도 쫌! 쓴다. 그는 어느 날부터 재미있는 실험을 시작했다. 책을 사러 온 사람, 다시 말해 옛날 책을 찾으러 온 손님에게 책값을 받는 대신 그 책에 얽힌 사연을 듣는 것이다. 손님들은 추억을 좇는 사람들인 만큼 50~70대가 주를 이룬다. 저자는 어떻게든, 기어이 책을 찾아 준다. 그리고 그들이 들려준 형형색색의 사연을 추려 사랑, 가족, 기담, 인생 등 네 가지 주제에 29가지의 에피소드를 실었다.
『비가 전하는 소식』은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나도 고등학교 때 만난 시집이다. 민음사에서 펴낸 ‘세계시인선’ 시리즈 중 한 권인데, 제목에 탁 꽂혀 귄터 아이히라는 낯선 독일 시인과 조우했다. 표지가 세련되고 손에 착 붙는 이 문고본 시리즈는 이후 나의 애장 목록이 되었다. 그 가운데 한 권인 소동파의 『적벽부』를 읽으며 그 웅혼한 기상에 매혹당해 원문으로 읽고 싶다는 열망과 함께 이후 본격적으로 한문 공부를 하는 계기가 되었다.
헤르만 헤세의 『방랑』. 사연자는 시각장애를 가진 노신사. 대학생 시절 한 여학생이 선물한 헤세의 산문을 읽고 자극을 받아 학교를 자퇴한 뒤 세계를 떠도는 유목민의 삶을 살았다. “네가 좋아하는 곳이라면 비록 그곳이 돌담이든 바위이든 나무 그루터기든 풀밭이든 흙이든 앉아 보아라. 어디에서든 영상과 시가 너를 둘러쌀 것이다.” 이 구절을 가슴에 품고 지구를 돌고 돌아온 그는 4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잃어버린 책을 찾아 나선 것이다.
『로리타』는 최근에 재미있게 본 영화 ‘북 샵’에서도 비중 있게 다룬 소설로, 중년인 아동성애자 험버트가 어린 여자에게 집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외설 시비로 금서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사연자는 과외를 하던 여학생과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던 즈음 마침 이 책을 읽었다. 그는 묘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 자신을 다잡으며 중학생 소녀를 더욱 무뚝뚝하게 대했다. 그 시절을 추억하며 1985년에 나온 모음사판 『로리타』를 주문했다.
이렇게 추억의 책을 열심히 찾는 사람들의 사연을 듣노라니 그동안 우리 집을 거쳐 간 책들이 새삼 아쉽다. 그 가운데엔 지금도 누군가 애타게 찾는 책들이 꽤 많을 터이니.
글 강옥순 북 코디네이터
『시커의 영역』 / 이수안 / 2022 / 자음과모음
셕셕셕 쉬리리릭 척척 치익- 띡. 계절을 막론하고 검은 옷을 입고 타로점을 보는 이연!
엄마가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 마법을 부릴 거라는 기대를 안고 자란 이단! 이단은 유치원에 입학하고부터 엄마의 의복 취향을 의식하고, 선생님에게 들었던 ‘우윳빛깔 단이’ ‘속눈썹 공주 단이’ 같은 애칭들의 유전자의 산물이라는 것을 ― 열두 살 때 처음으로 만난 파란 눈의 아버지를 만나고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처음부터 아빠가 있는 아이들은 그런 감동과 기쁨을 결코 느낄 수 없다.
에이단을 처음 본 날 타로점을 보았다면 메이저 아르카나 10번 ‘운명의 수레바퀴’를 뽑았을 것이다. 이단은 이미 벌어진 일에 맞아떨어지는 카드를 자연스럽게 찾아보곤 했다. 카드로 미래를 점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카드에 대입하는 것. 그것이 그녀의 비밀 놀이였다.
이단은 에이단과 뉴욕 기타 페스티벌 이벤트에 당첨되어 전야제에 초청받고 경품증정식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곳에 에이단 혼자 가게 된다. 메이저 아르카나 16번 ‘탑’ 카드 그림을 보는 순간 느낀 직관적인 불길함 ― 경품증정식 당일 매디슨 스퀘어가든 앞에서 일어난 총기 사건으로 두 명은 현장에서 즉사했고, 한 명은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결국 숨졌다. 에이단 매쿼리라는 42세 백인 남성이었다. 총격범은 무작위로 타깃을 골랐다고 했으며, 현장에 출동한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한 두 명 중 한 명이었다. 수사국의 공식 발표는 그랬지만 진위는 범인만이 알 것이다, 라며 소설의 진행이 예사롭지 않음을 암시한다.
자연의 축일을 지키는 것은 마녀들에게 중요한 의식이다. 달이 차고 기울거나 계절이 오고 갈 때 이를 기리는 리추얼을 한다. 입춘, 입하, 입추, 입동, 춘분, 하지, 추분, 동지를 마녀들은 ‘사밧’이라고 불렀다.
“의사들이 사망선고를 하게 해선 안 돼.”
모던 마녀(이단은 엄마를 그렇게 불렀다)는 소신 대로 마녀협의회 마녀들과 함께 병원에서의 모든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숲으로 가― 소생술 의식 ― 리추얼을 거행한다.
기타 페스티벌이 있던 날, 에이단과 여러 번 마주치고, 대화도 나누고, 함께 점심도 먹었던 류이! 병원에서 ‘진짜’ 의료진이 엘리베이터에 누구 탔어요? 하고 물었을 때 빈 승강기라고 말했던 청년 류이! 나는 류이와의 만남부터 재회하는 과정에서 마음속으로 해피엔딩이어야 하는데 하면서 현실과 소설 사이를 넘나들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마무리에 겨우 한숨을 돌렸다.
모던 마녀는 숨 쉬고 살아가는 일상 안에 마법이 있다고,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든지 그것은 시커의 영역이라고 하였다. 나에게 마법 같은 순간은 언제였는지, 정말 마법 같은 순간을 경험한 일이 있었던가 생각해 보았다.
글 김기수 북 코디네이터
『야생초 마음』 / 고진하 / 2021년 / 디플롯
엄마를 모시고 강원도 지방을 여행하던 중 점심을 먹으러 작은 식당에 들렀었다. 주인장의 추천으로 질경이밥과 된장국을 먹었었는데 생각보다 맛있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을 쓴 저자 고진하는 강원도 원주 지방으로 귀농 귀촌을 하곤 불편도 불행도 즐기자는 뜻으로 ‘불편당’이라 당호를 붙인 집에서 살아가며 주변에 흔하게 있는 야생 식물들을 관찰하게 되었다고 한다.
“오래전 한 인디언 추장이 누림의 시절은 가고 견딤의 시절이 당도했다고 한 말이 실감 나는 이즈음, 이 혹독한 견딤의 시절을 건너 수 있는 지혜는 무엇일까.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잡다한 지식말고 너와 나를 살리는 참된 지혜는? …… 식물은 오래전부터 우리의 스승이자 치유사였다는 어느 약초학자의 말처럼 마을 주변 야생의 풀을 먹으며 궁극의 희망을 식물에 둘 수도 있게 되었다.- ‘들어가는 말’ 중에서.”
24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에는 야생초의 생태와 야생초가 갖고 있는 뛰어난 약성, 실용 가능한 레시피 등을 다루고 있다. 아울러 우리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이유 등, 환경 변화로 인해 힘든 시절을 살아가는 요즈음 생각해 볼 만한 내용들이 들어있다.
지렁이가 지구의 정원사라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농약과 비료로 산성화된 박토를 옥토로 바꾸기 위해 애쓰는 벌레가 지렁이라고 하니 야생초나 벌레 등이 다르게 보인다.
이 책을 읽으며 부러웠던 곳은, 불편당의 뒤란이었다. 저자 부부는 뒤란의 텃밭에서 민들레, 질경이, 꽃다지, 왕고들빼기 등을 뜯어 잡초 비빔밥을 해서 먹기도 하고 개망초 어린잎을 데쳐 무침도 하고 계란말이에 넣기도 하는 등, 다양한 야생초를 이용해서 겉절이나 주스, 쌈 등을 해서 먹는다고 했다. 시각을 바꾸니 야생초는 이렇게 아낌없는 먹거리를 제공하는 자연의 선물이었다.
글 임영신 북 코디네이터
『행성어 서점』 / 김초엽 지음 / 2021년 / 마음산책 펴냄
저자 김초엽은 1993년생이다. 2018년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비롯해서 이미 몇 권의 소설집을 내놓았다. 원래 그는 생화학을 전공한 과학도인데 대학원을 졸업하고 1년만 글을 써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하여 ‘오늘의 작가상’ 등을 수상하였고 촉망받는 젊은 작가로서 인기를 쌓아가고 있다.
이 책 『행성어 서점』은 ‘서로에게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와 ‘다른 방식의 삶이 있음을’이라는 두 개의 소제목 아래 총 14편의 짧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이 무작정 집어 든 책을 탐험하듯 조심스럽게 읽기 시작했다. 첫 번 에피소드 ‘선인장 끌어안기’부터 익숙하지는 않지만 신선한 제목과 주제에 끌려 작가의 의도가 무엇일까 상상해 가며 읽게 되었다.
어쩌면 이런 류의 미래 공상과학 이야기를 주제로 한 영화들에서 힌트를 얻은 것일까? 몇 장을 넘기자 처음의 낯선 느낌은 사라지고 약간은 짐작할 수 있는 스토리 라인으로 흐르기도 했다. 예를 들면 파히라가 선인장을 제외하고 모든 물건들을 처분하는 대목에서는 제목 ‘선인장 끌어안기’와 연결하여 심각한 접촉 증후군을 앓고 있는 그가 선인장을 어떻게 이용(?)하려 하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다음 ‘사이보그 포지티브’에서 다시 작가의 의도가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았다. 외모에 대한 지나친 관심 혹은 외모에 대한 편견을 비판하는 건가? 그러다가 그저 독자로 하여금 좀 더 미래 세계 이야기에 적응해 가도록 돕는 챕터 정도로 받아들이고 계속 읽어 나갔다. 뒤로 갈수록 명백히 미래 세계, 우주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이 소개되었다. 더욱 기괴하고 약간은 어둡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이 책을 다 읽고 짧은 분량에 비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미래에 인간의 얼굴에 가면처럼 달라붙는 기생생물이 외계로부터 유입될 수도 있을까, 인간의 감각기관을 교란시키는 외계의 물질이 지구를 덮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작가가 미래를 비관적으로, 부정적으로 묘사하거나 우리가 환경을 잘 보존하지 않으면 재앙이 올 거라는 경고를 위해 글을 쓴 것은 아닐 것이다. 작가는 그냥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머릿속에 있는 미래의 이야기들을 자유롭게 펼쳐 놓았을 뿐일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실제로 경험하게 될지조차 의심스러운 우주 시대보다 1993년생 자녀의 생각과 행동 양식이 더 낯설고 이해가 어려운 나와 같은 세대 사람들에게 그들을 이해하는 한 방편으로써 이 책을 읽어봄은 어떨까?
글 최윤정 북 코디네이터
『경성 부녀자 고민 상담소』 / 김재희 저 / 2021년 / 북오션
5060들을 위한 명탐정 코난을 읽은 듯한 느낌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극장판 코난까지 다 본 나만의 감상일까. 아니면 요즘 나올법한 사건들을 30년대로 옮긴 추리 만화적 플롯이 그런대로 잘 먹힌 것일까. 어쨌든 세월이 지나 엄청나게 변화한 것 같지만 한 겹 아래는 별다르지 않은 인간사를 여기서도 보여주고 있었다.
유학까지 다녀왔어도 취준생인 주인공은 공유 하우스 동갑내기 친구 둘과 소위 탐정 사무소인 '경성 부녀자 고민 상담소'를 차린. 고민을 안고 오는 내담자들은 주로 성 기능적 문제를 가진 부유한 중년들, 트랜스젠더 그리고 상담소 제안을 한 의사와 얽힌 연쇄 살인범, 그들을 쫒는 그 시대에 머나먼 미국에서 날아온 한국인 FBI 요원이다. 이 정도만 봐도 소설 속의 몇몇 지명을 제외하곤 30년대의 한국이라고 상상하긴 어려웠다. 같은 맥락에서 소설 속 최고의 화두인 대학 졸업 후 취업 문제는 그때도 쉽지 않다는 사실까지.
그럼에도 현 사회에서도 드러내기 쉽지 않은 일탈과 고민을 근대에 버무려 재미를 준 작가에게 찬사를 보낸다. 아울러 정신과적 전문용어라고 알려진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는 악에 관한 인식의 선천성과 후천성의 차이라고 쉽게 설명한 부분 또한 말보로가 여성용 필터담배라는 것, 데벨로페가 왼쪽 다리를 90도 들어 올리는 발레 동작을 가리키는 용어라는 것 등을 30년대 사람들의 대화에서 비로소 안 나의 무지에는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다.
글 황은아 북 코디네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