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세밀화 기획전시회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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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소책자

 

서울식물원 내 식물문화센터 1층에 있는 씨앗도서관에서 「식물학자 씨앗, 발견하다」 기획전시회가 5월 12일~8월 31일에 걸쳐 열리고 있다. 전시물은 겉씨식물, 독도식물을 포함한 20여 개로 식물학자 신혜우의 작품이다. 해국, 섬기린초, 도깨비쇠고비, 검은졀 고사리를 그린 그림이 눈에 띈다. 씨앗은 장차 싹이 터서 꽃, 잎, 줄기, 뿌리가 있는 식물로 성장하는 단단한 물질이다. 독도식물 세밀화는 식물의 독도지도, 서식처 모습, 전 생애를 담고 있는 자료이다.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과 울릉도 독도연구소가 협업하여 조사한 것를 단행본으로 편찬해 전시했다. 그 외에 작가가 모은 160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의 석판이나 동판으로 인쇄한 책과 논문, 그림을 전시하고 있어 식물세밀화 변천에 대해 알 수 있다.

 

씨앗도서관

 

센터 내에 있는 씨앗도서관에서는 ‘씨앗대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씨앗을 대출받아 재배한 다음 수확한 씨앗을 기간이나 수량에 상관없이 자율적으로 반납하는 프로그램이다. 씨앗 기증도 가능하다.

 

서울식물원 내 서울식물센터
 

 

식물세밀화

식물의 모습을 과학적인 눈으로 관찰하여 그 특징을 정확하게 그려내는 그림이다. 학술적인 목적으로 그려진 식물의 해부도라고 할 수 있다. 정확하게 그려 식물의 형태적 특징, 진화, 생태적 특징을 알 수 있다는 면에서 사진보다 중요하다. 생명과의 교감을 느낄 수 있는 자연 친화적 예술이다.

 

「식물학자 씨앗, 발견하다」 전시작품

 

식물화가 예술영역에서 개인의 느낌을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이라면 식물세밀화는 과학영역에서 식물 종을 식별하고 식물학을 연구하기 위한 과학 일러스트이다. 식물학 그림이라고 하면 이해가 쉽다. 정보와 지식을 단번에 이해시키는 좋은 자료다.

 

식물세밀화를 그리려면 먼저 논문과 도감을 읽는다. 다음으로 채집계획을 세워 서식처를 찾는다. 표본관에 소장된 표본들을 조사한다. 생태적 변이나 근연종 간의 차이를 이해한다. 사계절의 형태를 관찰하고 기록한다. 규정에 따라 그린다. 논문의 도표처럼 함축적이고 정확하게 만든다.

 

우리나라 식물세밀화는  몇백 년이 된 외국에 비해 태동기 수준이지만 식물세밀화를 배우려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관심이 있는 분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오프라인 강좌가 서울식물원을 비롯해 여러 곳에 개설되어 있다. 2004년 5월 15일에는 식물세밀화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알리고, 사라져가는 식물뿐만 아니라 한국 식물들의 학술적, 예술적 가치를 그림으로 기록, 보전하고 알릴 목적으로 산림청 소관 사단법인 한국식물세밀화협회가 설립되었다.

 

「식물학자 씨앗, 발견하다」 전시작품

 

식물학자 신혜우

어릴 때부터 식물생태에 관심이 많아 생물학을 전공하여 이화여자대학교 에코크리에이티브 협동과정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스미스소니언 환경연구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귀국했다. 현재 대학에서 강의하며 서울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 디자이너로 일한다. 박물관에서 다루는 여러 과학 분야 삽화를 그린다.

 

그는 식물분류학을 연구하는 식물학자이자 꽃이나 풀 등 온갖 식물을 사실적으로 자세하게 그리는 식물세밀화가이다. 해외 전시회에 여러 번 참여했고, 영국왕립원예학회가 주최하는 ‘보태니컬 아트쇼’에서 2013년, 2014년, 2018년 3차례 금메달과 최고 전시상을 받았다. 식물을 채집하고 관찰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식물을 부위별로 정확하고 세밀하게 그린다. 식물을 미학적으로 그리는 보태니컬 아트와는 달리 각 식물 종이 지닌 형태적 특징과 정보를 그림으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보태니컬 일러스트레이션’(botanical illustration)이다. 식물세밀화는 과학적 지식이 있어야 잘 그린다. 뿌리부터 줄기· 잎· 꽃· 씨앗까지 종이 한 장에 모두 그려야 한다. 대개는 실제 식물과 동일한 크기로 그리고 아주 작은 부분은 일정한 비율로 확대해 그린다.

 

소장자료 전시

 

연구를 위해 그리기 때문에 보기 좋게 그리는 것보다 정확하게 그린다. 자생지에 가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져, 열매를 맺는 모든 순간을 관찰한다. 식물 한 종을 채집하는 데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수집한 수백, 수천 개의 표본 중에 가장 보편적인 모양과 크기의 것을 찾는다. 이것을 오랫동안 관찰하여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종이 3,500종 정도인데 작가가 이제까지 그린 식물세밀화가 약 1,000점이라고 한다. 그림을 그리는 속도보다 식물 한 종이 사라져가는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에 시간을 아껴 그림을 그린다. 그림은 식물이나 환경 따위에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도 환경보전의 메시지를 전하는 힘이 있다. 식물이 사라지면 인간의 생존도 불가능하다. 자연 보전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사라져가는 식물을 지키고자 하는 환경보전의 마음과 사랑이 힘든 작업을 지속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여겨졌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는 구절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