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불길 속으로 퍼스트 인(In), 라스트 아웃(Out)

-

28년 차 소방관의 삶,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최우선

서울 구로소방서 현장대응단 진압대장 소방위 김화신

-

 

 대한민국 소방관 김화신. 그를 만나기로 한 날은 하늘이 맑은 10월 23일 금요일 오후. 인터뷰하기로 약속한 시간에 그는 소방서에 없었다. 출동 중이었다. 민원실에서 김윤수 소방관은 믹스커피를 내오며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불이 난 걸까?’ 물어보는 것이 약간 겁이 났다.

“무슨 일이 있나요?”

“네, 연기나 난다는 신고가 들어와서 출동했는데, 복귀 중입니다. 별일 아니랍니다.”

‘아~다행이다.’

내가 혹시 불청객이 됐을까 걱정했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20분쯤 지났을까. 주황색 119 활동복에 준수한 외모의 중년 소방관이 나타났다. 구로소방서 현장대응단 지휘 1팀 진압대장이다. 계급은 소방위. 산전수전 다 겪은 베터랑 소방관의 연륜이 느껴진다. 아무 일 없이 등장한 그가 고마웠고, 반가웠다.

“구로역 근처 고가도로 옆 건물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가 들어왔어요. 현장에 가보니 지하 1층 출입문 사이로 연기가 나오는데 쓰레기가 타고 있었어요. 처리하고 왔습니다.”

듬직했다. 작은 쓰레기라고 해도 아무 곳에서나 소각할 수 없다. 이는 법규 위반이다.

 

 그는 화재 신고가 들어오면 가장 먼저 뛰어나간다. 이동 중인 차량에서 특수방화복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불’과 가장 가까이 다가와 소방대원을 투입하며 현장을 지휘한다. 92년도 소방관이 된 지 28년 차인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은 현장 이야기를 물어봤다. 1995년 6월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현장을 기억했다. 1달 이상 현장 지원을 나가 매일매일 현황 자료 수집/종합 업무를 했다면서 이후 낙후된 소방시설과 부족한 장비 등이 보완되고 법규가 바뀌고 긴급 구조훈련이 체계화되었다고 말했다.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 First In, Last Out.

 자신이 먼저 들어가고 맨 나중에 나온다는 소방관 구조대원의 구호이다. 경험 많은 그도 연기만이 가득한 좁고 어두운 공간에서는 두려움을 느낀 적이 여러 번 있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숨어있었던 사람을 찾아 같이 나올 땐 가슴 벅찬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2015년 23일 저녁 8시 25분경. 출동 사이렌이 울렸다. 서울 구로구 오류동 ㅇㅇ 빌라에서 불이 났다. 동시에 수궁동 119안전센터에도 출동 사이렌이 울렸다. 현장에 도착하니 불길이 거세고 외부로 분출되고 있었다. 주민들이 내부에 사람이 있다고 하여 진압대장인 그는 대원들과 초기 불길을 잡고, 집안으로 신속히 진입하여 쓰러져 있던 65세 남자를 구조했다. 현장에서 초동응급처치를 하고 구급차로 병원에 이송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크리스마스이브 전날이고 겨울이라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2020년 5월 2일 서울 구로동 코오롱사이언스밸리 지하 1층 음식점 화재 현장에서 김화신 진압대장의 지휘 모습.

화재 진압 후 도로에 흥건한 물과 땀에 범벅인 그의 머리와 연기가 달라붙은 특수방화복이 당시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소방재난업무가이드」에 따르면 화재 진압을 위한 출동 소방차는 규모에 따라 대응 1단계에서는 한 소방서에서 18~23대 출동하고, 2단계는 이웃 소방서까지 약 30여 대, 3단계는 여러 소방서에서 4~50대가 출동한다. 도시의 규모가 커지면서 화재의 규모도 동시에 커지는 것이다. 서울소방재난본부 금년도 9월 통계를 보면 화재 449건, 구조 2,759건, 구급 32,474건, 기타 5,058 건이다. 언론 보도가 나오지 않는 크고 작은 화재가 연일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방관의 훈련은 365일 쉬지 않는다. 출동이 없는 날은 훈련의 연속이다. ‘옥내진입 화재진압’, ‘공기호흡기 장착 및 비상호흡법’, ‘소방 호스 전개 및 회수’, ‘관창(소방호스 노즐부분) 조작 및 주수(물 분사)기법’ 등 30여 종목을 번갈아 가며 훈련한다. 이때 훈련 교관은 진압대장이 맡는다. 신임 소방관은 특별히 각 지자체의 소방학교에서 6개월 동안 ‘빡센’ 훈련을 받는다. 그리고 훈련이 끝나면 개인 체력단련이다.

 

 관창을 잡는 소방관을 ‘관창수’라고 하는데, 관창수는 엄청난 수압을 이겨내고 불을 향해 물을 발사할 수 있는 소방관이다. 보통 10년 경력의 선임이 한다. 관창의 수압은 물줄기를 100m까지 뿜어낼 수 있는 압력이다. 혼자 하기는 어렵고 2~3명이 뒤에서 돕는다. 몸짱 소방관이 많은 이유를 알 것 같다. 훈련이 끝나면 ‘도상 훈련과제’ 연구가 기다린다. 과거 화재 현장을 사례로 소방차의 출동은 어느 길로 갈 것인지, 건물의 어느 위치에서 진입을 해야 효과가 높은지, 최근 건물의 구조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두 머리를 맞대고 최선의 길을 찾아내야 한다.

 

 김화신 진압대장에게 소방관이 된 동기를 물었다.

“군대를 갔다오고, 학교를 졸업하고, 꼭 소방관이 되겠다기보다 우선 소방관 시험을 보고 다른 기회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어요.”

“당시 크게 가치를 두고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점차로 이 일이 나에게 맞는 것 같고 다른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사회에 봉사헌신하는 소중한 일이다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까지 오게 됐습니다. 28년이 지났군요.” “뜨내기로 시작한 것이 천직이 됐습니다. 허~ 허~ 허.” 편안한 이웃집 아저씨 웃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도봉소방서에서 제복을 처음 입었는데 그때는 군복을 입었어요. 품질은 군복보다 못했던 거 같아요. 개인 지급품은 감히 생각지도 못했죠. 그러다 삼풍백화점 사고 때 소방관이 사람을 구조하고 고생하는 걸 보고서 소방시스템에 일대 혁신이 일어났어요. 소방관에 대한 인식도 천양지차로 변했습니다.”

 

1998년 소방계 소방행정업무를 하던 시절.

2011년 ‘세이프 서울한마당’ 축제 행사에서 어린이 소방대원 교관 시절

 

 소방관이 국가직으로 전환된 후 달라진 점은 무엇인지 물었다.

“크게 달라진 점은 없어요. 국가직으로 전환됐지만, 아직은 지자체별로 예산이 집행되므로, 정부에서 각 지자체에 균등한 비율로 정해주는 것 같아요. 이제 지방 소방서는 나아졌지만, 서울의 경우 달라진 점은 없는 것 같아요.” 극한 상황에 맞닥뜨려야 하고 때로는 참혹한 현장을 볼 수도 있는데, 몸에 지니는 부적 같은 게 있냐고 다소 어리석은 질문에 그는 “부적이나 신앙물은 없어요. 그렇지만 좋은 말은 늘 새기며 살고 있습니다. 그 좋은 말은 바로 편지입니다. 부모님이, 형제가, 군대 고참 후배가 그리고 여자친구가 편지에 썼던 말을 읽어보고 또 읽어봅니다. ‘건강해라, 몸을 잘 챙겨라, 너 몸도 소중한 것처럼 남의 몸도 소중하다’였고, 저는 그동안 제가 받는 편지는 다 모아뒀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되냐고 했더니, “대략 바인더로 5권은 됩니다.” 예전에는 월급명세서도 모았단다.

 

 개인적인 생활신조가 있는지 궁금했다. “대원들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회식하면서, ‘으쌰 으쌰!’ 하면, 바로 ‘우리는 하나다!’이랬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지시하는 보스가 되기보다는 앞장서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합니다.” 특히 불과 싸우는 소방관들은 팀워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생명과 같다고 했다. 동료끼리 그리고 부하와 상관이 서로 신뢰하고 존중하지 못하면, 서로가 위험할 수가 있다고 했다. “눈빛으로 서로 대화할 정도가 되어야 해요.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부족한지 눈만 보고도 알 수 있어요.” 특히 그는 진압대장으로 부하들의 신뢰가 더욱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목민심서에 이런 말이 있어요. 목민관은 위엄과 믿음이 있어야 한다. 위엄은 청렴에서 나오고, 믿음은 성실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부하들에게 오히려 부탁하는 심정으로 대합니다.”

 

 

 좌 : 훈련에 앞서 박두훈 소방교을 격려하고 있다. 우 : 훈련 후 결과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모습

 

 그는 정년까지는 5년 남짓 남았다. 끝으로 소방관으로서 소망이 있다면 무엇이냐고 물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는 바로 답했다. “소방병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경찰병원, 군 병원이 다 있는데 소방병원만 없어요. 지금 경찰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지만, 부족한 점이 있어요. 예를 들면 소방관은 허리를 많이 상합니다. 소방과 구조장비의 무게가 엄청나거든요. 만약 소방병원이 있다면 이럴 경우 거의 공상 처리 무상치료가 가능할 것입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환자도 보다 더 전문적으로 치료 가능할 것입니다.”

 

  지난 10월 8일 울산광역시 주상복합아파트 삼환아르누보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건물 12층에서 33층까지 외벽을 태우고 93명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다행히 인명피해는 한 사람도 없었다. 소방대원들은 고층 아파트를 밤새 오르고 내리고 하면서 구조작업을 펼쳤다. 33층에 거주하던 한 주민은 매캐한 연기에 더 이상을 버티지 못하고 에어매트를 깔아주면 뛰어내리겠다고 호소했을 때, 구조대원이 현관문을 부수고 들어왔다고 했다. ‘헬멧을 쓴 신’을 본 순간, 그 주민은 혼절했고, 소방관은 그 주민을 업고 1층까지 내려왔다는 조선일보 보도를 읽었다. 소방인력 1300여 명이 동원됐고, 다음날도 작업은 계속됐지만, 마땅히 쉴 곳이 없자 인근 스타자동차에서 5층 전시장을 교대 휴식 공간으로 내놨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소방관과 그들을 따뜻하게 대접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떠올리며 구로소방서를 나왔다.

오늘은 28년 차 김화신 소방관의 결혼 27주년 기념일이라고 한다. ‘헬멧 쓴 영웅’ 김화신 구로소방서 진압대장님! 축하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