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보던 흔한 풍경들 속, 숨은 역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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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626일 토요일 은평구 향토사학회의 제31차 연구위원과 회원들이 수색역 광장에 모였다. 숨은 향토역사를 공부하고 직접 찾아보기 위한 답사로, 현장을 동행하며 인상이 깊었던 곳 중심으로 소개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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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역 광장 전경

 

 

은평구 향토사학회 박상진 회장의 해설과 안내로 수색역광장 (수색역, 보호수, 무재해소망 탑) 형제 대장간 수색교 수색감리교회 수색변전소 토끼굴(수색-상암 간 터널) 코스로 오전 930분부터 12시까지 2시간 30분 동안 수색동 일원을 주욱 돌아보았다. 오며 가며 늘 익숙하고 흔한 풍경이라 무심히 지나쳤던 곳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다른 세상에 온 듯 낯선 모습으로 다가왔다.

 

수색역의 역사

수색역(水色驛)은 부지면적이 1,256,141 제곱미터로 우리나라 철도 역사 중 최대면적을 자랑한다고 한다. 190841일 경의선이 개통되었으며, 1938년에는 일제가 중국대륙 침략에 필요한 군수물자와 병력 수송을 위한 병참기지로 삼고 신의주까지 철도 부설과 함께 수색동 205번지 일대에 대규모 조차장(操車場)과 철도 관사 60동을 건설하였다. 은평구민과 서울시민의 사랑을 받은 봄날은 간다’(2001)의 무대가 되었던 구 역사(驛舍)1958819일 준공되었다. 1971910일에는 무연탄 화물 도착역으로 지정되기도 하였으나 2005315일에 철거되었고, 현재의 신 역사(驛舍)2006년 완공되었다. 20097월에는 수도권 전철 경의선이 개통되었다.

 

수색역 광장에는 서울시에서 관리하는 수령 155년의 가중나무 보호수 2그루와 돌로 쌓아 만든 3기의 무재해 기념탑이 세워져 있는데, 거대한 나무에 가득 피어있는 녹색의 꽃들이 독특하고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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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령 155년의 가중나무 보호수 2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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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게 쭉 뻗어있는 보호수 나무


 

수색역 부근(수색동 249)에는 형제 대장간이 있다. 형제가 함께 운영하는 대장간이라고 해서 상호명을 형제 대장간이라고 했다고 한다. 형 류상준 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열세 살 때부터 곧바로 대장장이 길로 들어서서 당시 서울 모래내에 전국적으로 이름이 난 대장장이인 박용신 씨를 스승으로 모시고 풀무질부터 차근차근 배웠다고 했다. 10년 동안 대장장이 기술을 익힌 후, 1976년 서울 암사동에서 독립해 처음 대장간을 차렸다가 그 뒤 다시 모래내로 옮겼고 1997년부터 수색에 자리 잡았는데 이때부터 동생이 함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형제 대장간이 문을 연 지 17년이 되었으니 단골이 전국적으로 아주 많단다. 인터넷으로 홍보나 판매는 안 하냐고 물었더니 제주도에서 횟집 운영하는 단골은 1년에 한 번씩 비행기를 타고 와서 15만 원짜리 회칼을 직접 주문해 받아간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주부나 주말농장을 하는 도심의 직장인들의 텃밭 용품과 방송국의 사극에 필요한 소품도 제작하고, 문화재청에서도 필요한 용품을 주문받아 만들어내느라 그럴 짬은 없다고 웃으며 대답했다. 앞으로의 꿈이 뭐냐고 묻자 대장간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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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대장간을 운영하고 있는 형제의 모습(좌측), 대장간 내부 모습(우측)

 

 

수색교(水色橋)는 은평구 수색동 205번지와 마포구 상암동 243번지 사이에 있는 다리이다. 18.4m, 길이 160m로 경일 건설에 의해 19771231일 준공되었는데 이후 20021110현대건설에 의해 확장 보수되었다고 한다. 원래 수색교 자리에는 구름다리(九龍橋)라고 불린 수색철교가 위치했었는데 본래 한강철교의 상부 트러스를 가져다 만든 1차로의 좁은 다리로 노후화로 인해 1993년 통행이 금지되었으며, 1994년 안전검사 실시 결과 붕괴위험이 높다고 하여 1995년에 철거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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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교 돌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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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동을 가로지르는 철로

 

 

수색변전소(水色變電所.수색로 146번지 위치)는 너무 허름해 보여 요즘 시대에 안 맞는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낡아 보였다. 아마 수색변전소에 담긴 이야기를 몰랐다면 얼굴을 찌푸렸을 것 같기도 하다. 수색변전소는 1937조선 송전주식회사에 의해 건설되었는데 주 역할은 북한에서 내려오는 전기를 남한에 공급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전기는 모두 수색변전소를 거쳐 왕십리 변전소, 동대문 변전소로 흘러갔기 때문에 남한 전기 에너지 산업에서 수색변전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승만 정부는 전쟁 기간 중에도 불구하고 19517월부터 8월까지 2,000,000원의 자금을 들여 파괴된 50,000kVA의 제1호 변압기와 개폐시설을 복구하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 수색변전소가 위치하는 곳은 수색 9구역 옆, 수색 8구역 앞이 된다. 현재 2024년까지 송전탑의 지하화 작업을 진행하는 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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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변전소 앞 모습

 

 


함께 참여한 오경자(은평문인협회 회장)작가에게 오늘 답사 중 제일 인상 깊었던 점이 뭐냐고 물었더니 바로 이 수색변전소라고 주저 없이 말했다. 중요하고도 많은 역할을 했던 이 변전소가 이제는 다 땅속으로 매설이 되니 송전탑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해줬는데 나를 땅속으로 꽁꽁 가둔다고? 이제 앞으로는 하늘을 못 보겠구나이런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며 변전소의 서글픈 생각을 작가다운 상상력으로 대답을 해주었다.

두 시간 남짓 박상진 은평 향토사학회 회장의 자세한 해설과 함께하는 답사를 통해 수색 변전소의 내력을 알게 되었고, 또 수색역이 서울시 대표적인 교통기관으로 역사문화유산의 사료가치가 아주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옛 방식 그대로인 불에 달구고 풀무질을 해 만드는 형제 대장간에서 세계적인 명품 칼도 여기서는 주눅이 들지 않을까?’ 생각하며 작은 주방용 칼 하나를 구입했다. 수색역 광장 근처에 있는 보호수인 오래된 가중나무는 귀를 열고 듣고자 하는 이들에게 나뭇가지 잎 사이로 활짝 핀 꽃들이 지난 역사를 가만히 들려주는 듯했다.

 

 

 

 [글/사진 : 50+시민기자단 4기 조계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