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인생학교 이야기
어쩌다 만난 예술_영화 편
영화의 엔딩 자막이 올라가는 가운데 불이 켜진다. <50+인생학교> 3회째 강의가 시작되는 교육실이다. 영화보기와 연극놀이를 통한 ‘자아탐색 워크숍’. 이번 강의 타이틀이다. 젊은 날의 자잘한 사랑 이야기 영화는 50+학생들에게 어떤 느낌일까. 영화가 괜찮았다는 표정들이다. 가슴 먹먹한 거대담론에 점수를 주던 50+세대가 잊고 있던 무엇인가를 건드렸다는 얘기다. 이 강의 타이틀 부제가 ‘어쩌다 만난 예술 story method’인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겠다.
“왜 이 강의를 영화 <건축학개론>으로 시작하는가?” 수업을 진행하는 정광필 교수(50+인생학교 학장)는 이 강의 3시간은 이에 대한 대답을 찾아보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50+학생들은 이심전심으로 알아듣는다. <50+인생학교>가 의도한 대로 영화를 통해서 벌써 자아탐색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2016년 10월 6일 오후 2시. 나는 <50+인생학교>의 총 10회 강의에서 ‘눈알’에 해당하는 강의를 듣고 있다. 정광필 교수는 능란하다.
“개인적으로 열 몇 번을 본 거 같아요. 매번 눈물이 나는데 반 정도는 눈물 나는 장면이 다 달라요. 근래에 눈물 나는 장면은 서연 아빠 마지막 병실 장면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땠습니까.”
주저하는 법이 없이 발표하고 토론하는 50+학생들
듣기로 정광필 교수는 거대담론 주제와 관련하여 스토리가 많은 삶을 살아왔다. 대안학교인 <이우학교> 전 교장이라는 직함은 그의 대표적인 인터넷 검색 키워드다. 시시한 주제의 영화일 텐데 열 몇 번을 보고 매번 다른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다니 이상하다. 크고 무거운 주제를 이제 내려놓고 싶은 것일까. 내면에서 무엇을 꿈꾸든 그 역시, 사소한 것에 ‘주책없이’ 쏟아지는 눈물이 성가신, 50+세대다.
학생들이 몰입한다. 이 장면을 어디서 봤을까. 기시감이 있다. 일종의 감성 자극 교수법이라고 할까.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50+세대들이 자아탐색을 위한 큰 바다에 단단히 채비하고 나선 듯하다.
“오늘 시작은 느낌부터 살려봅시다. 지난 주 연극놀이(분반한 나머지 학생들은 9월 29일 이 자리에서 지금과 같은 수업을 했다)으로 몸을 풀었으니까 얘기 나누는 게 서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영화를 본 느낌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수업이다. 주제를 제시할 때마다 그룹별 토론이 활발하다. 그룹 토론을 마치고 전체를 대상으로 토론 내용을 발표할 때에도 모두 집중한다. 50+세대가 언제 이렇게 집중했던가. 50+세대는 말을 시키면 주뼛거리던 시절을 살았다. 자유를 갈구하던 권위주의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웬만큼 산만한 것은 자연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여기서 이들은 몰입하고 있고 서로 자신의 감정을 스스럼없이 말하고 있다. ‘자아탐색 워크숍’이 일종의 퍼포먼스가 되는 순간이다.
“이 영화에 이렇게 많은 것이 들어 있다니”
<건축학개론>은 가볍고 재미난 영화다. 스무 살 때 건축학과 수업을 함께 들었던 남자친구(건축사, 엄태웅 분)를 찾아간 ‘돌싱녀’(한가인 분)가 제주도에 새 집을 지으며 ‘알콜달콩’ 살아가는 이야기다. 50+학생들에게도 젊은 시절의 서툰 사랑과 이별의 아픔이 있었다. 그 첫사랑을 만나 티격태격 서로에게 마음을 쓰는 장면들은 지금도 가끔 상상해 보는 로맨스일 것이다. 그래서 할 얘기가 많다.
주인공이 승민이인가 서연이인가. 복선으로 장치한 장면이 어떤 것이 있는가. 어디서 승민이가 가장 ‘찌질’했는가. 두 사람이 이루어졌다면 어땠을까. 낡은 ‘추리닝’을 입은 납득이는 누구인가. 서연이 왜 승민이를 찾아갔는가. 토론의 테이블 위에 100가지 이상의 화제 거리가 올라간 것 같다. 왁자하게 웃고, 극도의 공감대가 연속해서 형성된다. 잘 만든 영화였기 때문이거나 정광필 교수의 리드로 50+세대의 감성과 이성이 조화를 부린 탓이리라.
토론이 심화되고 영화의 주제도 의미심장해진다. 영화를 통한 자아탐색 퍼즐도 거의 완성된다. 50+학생들은 시작할 때의 <건축학개론>과는 사뭇 다른 영화를 만나고 있다.
“영화 전체 스토리 구성 자체는 탄탄한데, 여백 때문에 오해도 불러일으킵니다.”
영화의 속도감, 여백, 그리고 스토리 이 세 가지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하게 만드는 요소였을 것이다. 정광필 교수는 이 영화를 ‘첫사랑 멋지게 떠나보내기’라고 말한다. 첫사랑을 떠나보내고 자기 자신의 삶을 찾은 것이라는 얘기다. 영화 감상으로 수업을 시작한 이유도 이것이다.
“우리는 남의 시선으로 남의 입장에서 살았습니다. 자식 때문에, 부모 때문에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한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5분 동안 그것을 글로 써 보기 바랍니다.”
영화의 첫사랑에 비유되는 것을 떠나보내고 50+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찾아내는 과정이다. 남이 쓴 글을 읽고 댓글을 덧붙여 응원하고 공감하는 과정이 또 한참 이어진다. 결국 <50+,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으로 돌아온 것이다.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쓰고 이야기한다. 정광필 교수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나 앞으로 무엇으로 살까’. 이것까지 정리하라고 팁을 준다.
“50+, 나 앞으로 무엇으로 살까”
강의는 마지막 코멘트만 남겨두고 있다.
“인생학교가 끝나도 답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긴 탐색기를 거쳐야 하겠지요. 앞으로 인생학교 수업이 7주 남았으니 여러 과정을 통해 많은 것을 챙기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어느덧 인생학교 강의 30%를 마쳤다. 학생들의 표정이 밝다. 방금 신입생 딱지를 뗀 것 같다.
강의 후의 반응도 좋아 보인다. 신준식(56 남) 씨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증권회사에서 일하다 정년퇴직을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진지하게 얘기해보는 것이 처음입니다. 한창 때, 순수했던 시절의 시간 여행이 되는 것 같아 아주 좋습니다. 삶에 찌들어 있다가 머리를 비우는 기회가 되는 것 같네요. 저는 그래서 열심히 토론에 참여하고 다른 사람들 의견을 들었습니다.”
김현지(여 52)씨도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한다.
“저는 영화에 이렇게 많은 것이 들었는지 몰랐어요. 많은 내용이 내포돼 있고, 심리학적인 것도 찾는 이런 게 재미있더라구요. 게다가 여럿이 하니까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어 좋아요. 미래에 대한 교수님의 마지막 멘트도 유익했구요. 이제 나를 볼 나이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고담준론이 아닌데도 가슴에 인문학적인 무엇인가를 새긴 것으로 읽힌다. ‘고급진’ 수다 떨기만으로도 충분했을 강의였는데 강의 후에도 음미하는 것이 많다는 얘기다. 정광필 학장도 이렇게 정리한다.
“인문학적 지식을 전달하자는 게 아닙니다. 영화 한 편을 보면서 참된 실존에서 퇴락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인생을 어떻게 리셋할 것인지 깊이 돌아보는 것이지요.”
글과 사진_박병로(50+홍보모더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