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의미 있는 도전을 한 사람과의 만남_1편
사람책 – 김수동(주거), 최영식(마을)
2000년 덴마크 사회운동가 로니 애버겔은 친구가 칼로 살해당하는 일을 겪은 뒤 편견과 고정관념이 폭력을 부른다고 생각해 이를 타파하고자 ‘사람책(Human Library)’을 만들게 된다. 이후 ‘사람책’은 미국과 호주 등 수십 개국으로 퍼져 나갔고, 우리나라에도 2010년부터 시작되었다. 사람이 책이 되어 원하는 곳에 찾아가는(대출되는) 방법이다. 독자는 종이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생생한 이야기를 직접 들으며 바로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더불어 사람책으로 찾아간 사람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는 기회를 얻고 자신의 재능과 경험을 나눌 수 있다.
인생학교에서 열린 사람책과 운영진들
10월 13일, 50+서북 캠퍼스에서 운영되고 있는 인생학교에는 네 명의 ‘사람책’이 초빙되었다. 주거, 마을, 취업, IT라는 4가지 테마를 가진 ‘사람책’을 모듬별로 돌아가면서 만나는 형식이었다. 말이 갖는 장점 때문에 각광을 받고 있는 ‘사람책’을 이렇게 다시 글로 옮기는 이유는, 이곳에 함께 참여하지 못한 많은 50+세대들과도 생각을 함께 나누기 위함이다.
사람책 1. 김수동(공동체주거 코디네이터)
Happy aging is aging together!
한 회사의 소프트웨어 담당자로서, 회사 인간으로 살아온 김수동 씨는 2000년에 벤처를 창업하고 13, 4년을 그 업계에서 열심히 일했지만 극도로 대박을 쫓아야 하는 벤처의 생리에 허탈감을 느끼게 된다. 갈등과 피로감에 지쳐 2013년 말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감행했다. 그 때 묵었던 공간이 제주도 이주를 목표로 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셰어하우스(Share House)다. 거기서 젊은 사람들과 어울려 잘(!) 놀았다. 그것을 계기로 뭔가 ‘함께 어울려 사는 삶’에 대해 꿈을 꾸기 시작했고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을 구체적으로 갖게 되었다.
공동체주거 코디네이터 김수동 씨
‘도시에서 나이 드는 것’은 녹록치 않은 삶이다. 누구나 다 독거노인으로 늙어갈 가능성이 있다. 연로하신 노모와 함께 거주하고 있는 김수동 씨는 처음엔 시니어끼리 더불어 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70세 전후의 공동체 주거 형태에 관심을 가졌으나 사업으로서의 가능성이 낮아 5060세대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시차만 있을 뿐이지 우리 역시도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존엄을 상실한 채 노년을 맞이할 것이라는 걱정이 들어서다. 원래 서울 태생이라 귀농귀촌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도시에서 소그룹 공동체를 만들어 사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은퇴 후 경제적 빈곤에 초점을 맞추곤 하지만 관계의 빈곤 또한 만만치 않은 문제다. 주거 안정과 안정적 관계망의 대안으로 공동체 주거의 개념을 잡았다. 나부터 주거 전환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까운 사람들에게 의사를 타진해 봤지만 “그렇게 하면 좋겠네~” 딱 거기까지 뿐이었다.
‘하우징쿱’이라는 주택건설 협동조합에서 2015년 초에 공동체주택 희망자 간담회를 했다. 거기에 참석하면서부터 김수동 씨의 본격적인 주거 전환이 시작된다. 한 집에 모여 살면서 공동체 공간을 두는 셰어 하우스와는 달리 라이프스타일이 이미 확립된 중장년층의 공동체 주택은 코하우징(co-housing) 형태가 제격이었다. 결과적으로 일반 다세대 빌라와 외형적으로 동일하되 세대별 맞춤형 주택이 되었다.
작년 4월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조합원들이 모임을 가지면서 안정적이고 믿을만한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공동체가 익어가는 느낌이랄까……. 올 7월부터 입주가 시작되어서 3개월 정도 지났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고 만족스럽다. 김수동 씨는 이 과정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섬세하게 관찰하고 참여하면서 다음 활동 영역을 구상하였다. 중장년 세대에게 있어서 소유권 문제는 중요한 일이다. 자치적 조직을 이끌어 나가며 쌓인 갈등 조정 콘텐츠를 활용하여 코디네이터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더함플러스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공동체 주거의 다양한 사례들과 경험을 가지고 주거전환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그룹 자문, 워크숍, 각종 연구 등도 하고 있다. 물리적 하우징과 연계하여 소프트웨어적 삶의 방식을 표현하고 관리하는 역량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참여자들이 가장 민감하면서도 관심 있어 하는 질문이 나왔다.
“벤처기업 하시다가 협동조합 일하시는 건데 수입은 어떻게, 얼마나 차이가 나나요?”
“경제적인 부분은 타격이 크죠. 사업안정화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일단 협동조합은 비즈니스 하기에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함플러스 협동조합에서는 여덟 명의 조합원이 각자 본업을 갖고 있으면서 일하고 있고 공유사무실을 쓴다든지 하면서 버티는 힘을 키우고 있습니다. (일동 웃음) 일단 협동조합이 갖고 있는 무형 자산은 사업이 확장될 때 의미를 발휘할 수 있는 것 같구요, 수익모델로는 공동체주거 준비부터 입주 시까지 코디네이션을 하면서 서비스 비용을 받는 걸 상정하고 있어요. 그리고 각종 강연과 교육 등이 있겠죠.”
“계획이나 꿈이 있으신가요?”
“꿈이라면 공동체 주택이 늘어나는 것. 이에 대한 사회적 의미는 크다고 봅니다. 부동산 하면 집값에 연연해하는 사유재산으로서의 의미가 크지만 옛날 골목길 풍경의 3D버전인 공동체 주택을 통해 지금 시대 부동산 문제의 출구가 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송도 쪽에 가까운 친족끼리의 공동체 주거를 계획하고 계시다는 한 참여자는 이 시간을 가장 기다려왔다면서 궁금한 게 많으니 꼭 연락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언제든지 열려 있습니다. 연락주세요.” 김수동 씨의 얼굴이 밝다.
사람책 2. 최영식(문래동 예술촌 마당발)
좌충우돌 삼식이 탈출기
문래동에 사는 최영식 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결혼이라는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타 정신없이 살다가 2010년 그 컨베이어 벨트로부터 강제하차 당한다. 은행을 퇴직하면서 비로소 시간의 주인이 된 것 같아 기뻤으나 먼저 퇴직한 선배들이 시간 과잉으로부터 어찌할 줄 모르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딸로부터 “아빠 삼식이가 되면 안 돼!” 라는 말을 듣고 “할아버지가 100세 시대를 살라고 영식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는데 뭔 삼식이1)?” 라고 자신했지만 1년 반 뒤에는 대부분의 관계망이 사라지고 ‘밥 한 번 먹자.’ 를 허공에 외쳐대는 관계의 빈곤을 경험하게 된다.
밴드를 통해 동창생들 모임에 열을 올려봤으나 옛날에 잘나가던 추억을 끄집어내는 것이 전부인 모임에 금방 지치게 되었다. 에너지를 충전하는 게 아니라 뺏기는 느낌이 들어 점차로 정리를 하고 말았다. 남자한테 퇴직이란 사회적 관계망과 경제적인 부분에서 거세당한 느낌을 갖게 한다고 생각한다. 벌지 않는데 쓴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고 그러면서 자존감이 급격히 떨어지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최영식 씨가 회사 다닐 때 동네는 그냥 ‘자는 곳’ 이었던 반면, 와이프는 학부형모임부터 시작한 네트워크가 많아 보였다. 동네에 아는 사람이 없던 그는 <희망제작소> 프로그램을 듣고 자신의 명함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그 명함을 들고 동네로 나가게 된다. 명함에는 느단삶(느리고 단순한 삶. 결코 느지막이 고단한 삶이 아님.) 모데라토 칸타빌레(적당한 속도로 우아하게) 라고 적혀있다. 사람들에게 명함을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관계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한다.
관계의 빈곤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은 그는 시간의 과잉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전체 시간의 40%는 의미 있는 일, 30%는 가사 분담과 가족 소통, 나머지 30%는 취미와 건강을 위한 일을 하는 것으로 적정하게 배분했다. 창조적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의미 있는 일을 생각했고 그 일환으로 작가와 주민이 함께 하는 마을 기획단을 구성하게 되었다. 마을 활동가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문래동에는 현재 200여개의 공간에 3, 4백여 명의 예술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농사 흉내를 내면서 한 번 어울려 보자는 생각으로 동네 철공소 옥상에 옥상텃밭을 시작했다. 그것이 커뮤니티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러면서 작가들도 알게 되고 도시농업박람회 같은 곳에도 참여하게 된다. (문래동에는 소규모 공장 1300여개가 있다. 홍대 구역의 젠트리피케이션2)이 일어나면서 값싼 임대료를 찾아 떠돌던 작가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의미 있는 일이 40%라고 했지만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사회적 기업에 들어가서 비상근으로 회계 등의 일을 하고 환경운동연합이나 우리동네햇빛발전소 같은 곳에서도 일을 하게 됐다. 건강을 위해서 짧은 거리는 걸어 다니고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했다. 취미를 위해서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기도 했고 작년에 시집도 내었다.
우리 세대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압축적으로 이뤄낸 세대지만 행복한 지는 의문이다. 성공에 대한 가치가 획일화 되면서 별로 만족스럽지 못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우리(현재의 50+세대)가 혜택 받은 세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생계형이 아니라면 은퇴 이후 어느 정도는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사회적 기업이나 재능 나눔의 형태로도 가능하다.
“ 가장 어려운 질문인데요, 수입은 어떻게 만들어 가시는지…?”
“ 제가 쓰는 만큼은 법니다. 평생 일하면서 모아 놓은 돈은 다 와이프 주었어요. 알아서 먹고 살라고 하고 저는 제가 필요한 만큼 벌어서 먹고 삽니다. 뭐 교육이나 강의, 해설 같은 활동들이죠. 어느 정도 유지가 됩니다. 자유로워졌어요.”
최영식 씨는 성공에 대한 다양한 가치가 인정되면 삶의 방향성도 공처럼 다면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구(球)의 아무데나 점을 찍어도 각 개인에게는 중요한 의미로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 좋아하는 분야를 잘 들여다보면 도움이 필요한 곳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곳에서 할 일을 찾으면 시간의 과잉, 관계의 빈곤이 다 해결되는 것은 물론, 주변의 삶을 돌아보며 사는 여유까지 생기게 된다.
“그럼 혹시 앞으로의 계획은 가지고 계신지요?”
“ 5년쯤 뒤엔 귀농 귀촌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술학교(기계, 용접, 전기, 목공, 보일러 등)를 세우고 싶어요. 보일러가 고장 나면 가서 고쳐주고, 전구도 갈아줄 수 있으면 농촌의 노인들에게 더 환영받을 거 같아서요. 외지에서 왔다고 텃세당하지 않고 잘 어울려 살 수 있도록 생활에 필요한 기술을 가르치고 싶답니다.”
모두가 좋은 아이디어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게 삼식이를 멋지게 탈출한 ‘영식’씨는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예술촌 젊은 오빠로 변신 중이었다.
각주
1) 삼식이 : 三食이. 삼시 세끼 꼭 챙겨 달라는 남자.
2)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 도시에서 비교적 빈곤 계층이 많이 사는 정체 지역(도심 부근의 주거 지역)에 저렴한 임대료를 찾는 예술가들이 몰리게 되고, 그에 따라 이 지역에 문화적/예술적 분위기가 생기게 되면 도심의 중상층/상류층들이 유입되는 인구 이동 현상이다. 따라서 빈곤 지역의 임대료 시세가 올라 지금까지 살고 있던 사람들(특히 예술가들)이 살 수 없게 되거나, 지금까지의 지역 특성이 손실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위키백과 참조)
글과 사진_임영라(50+홍보모더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