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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를 만나다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고희영 글, 스페인 출신의 화가 에바 알머슨의 그림으로 만들어진 '엄마는 해녀입니다'
내가 해녀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 알게 된 계기는 스페인 화가 에바 알머슨의 전시를 본 후이다.
전시장 한 곳에서 '엄마는 해녀입니다'라는 소제목으로 특별전을 열고 있었고, 다른 한 곳에서는 영화 '물숨'을 상영하고 있었다.
영화 '물숨'은 SBS 촬영작가 고희영 감독이 우도를 찾아가 해녀들의 삶과 죽음을 6년 동안 함께 지내며 밀착취재하여 만든
80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를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아 영화를 두 번이나 보았고 책도 빌려 제작과정과 해녀들의
인터뷰 내용까지도 낱낱이 읽어 보았다.
#해녀의 매력
해녀들은 항상 바다를 그리워 한다
물숨이란 바다 밑에서 숨을 고를 때 내는 짧은 숨을 뜻하는 말이고, '숨비'란 바다 속에서 숨을 찾았다가 나와서 "호~이"라고 피리소리를
내며 쉬는 깊은 호흡을 지칭한다. 정확하지 않지만 물숨이 물속에서 호흡을 참다가 죽음까지 가는 경우를 뜻하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현재 우도엔 400여 명의 해녀가 있는데 70~80대가 대부분이고, 젊은 해녀의 나이는 50~60대일 정도로 사양화하는 직업이다.
그녀들은 걷기 시작하면 수영을 배우고 15세가 되면 물질을 시작해서 60년 이상 물속에서 일한다.
우도라는 섬에서 태어나고 자라다 보니 달리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시작한 일이 평생 직업이 되어 생계를 꾸려왔고,
자녀를 다 기른 후에도 바다로 들어간다.
"죽어도 물질하는 사진은 안 찍어!"
감독이 카메라를 들이 밀면 해녀들은 한사코 거부하며 바다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한이 많고 부끄럽게 생각한다.
해녀들은 바다에서 일하다 죽음을 맞는 경우도 있다. 바다에서 많은 해산물을 채집하다 숨이 막혀 죽기도 하고 파도나 배에 부딪치거나
닻줄이나 해초에 감기는 사고로 죽기도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땅에서 죽느니 차라리 바다에서 생을 마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해녀들도 있다.
그녀들에게 바다란 공짜 슈퍼마켓이고, 은행이고, 아름다운 영상을 보는 무료 영화관이고, 괴로움을 달래주는 애인같은 존재다.
80대 해녀가 비록 제대로 걷진 못 해도 바다에 들어가면 멋지게 잠수해서 바다의 싱싱한 과일을 거두어 오는 모습을 보면 신비하면서
숭고하게 느껴진다.
#호기심과 용기로 가득찬 나의 바다를 갖고 싶다
보통 노인들은 설령 여유가 있어도 체력이나 경제력 소모가 심한 활동을 하다 보면 내적성찰을 할 시간이 부족하다.
그런데 영화 속 해녀는 흔히 보는 노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초췌하게 늙은 모습으로 뒤뚱거리며 바다로 향해 걸어갔지만 바다에 이르자
서슴없이 차가운 물속으로 잠수한다. 마치 땅 위에선 뒤뚱 거리는 백조가 물을 가르고 헤엄치는 듯 신비해 보인다.
© dtteom, 출처 Pixabay
그녀들은 남편이 죽거나 도망가서 아이들을 홀로 길러야 했던 힘든 시절을 바다에서 눈물을 흘리며 일하며 살아왔다.
심지어 자녀 여섯을 홀로 키워 해외 유학까지 시킨 해녀도 있었다. 그런데도 해녀들은 한 번 죽을 목숨이라면 땅이 아닌
바다를 택하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그래서 그녀들은 밥벌이가 필요한 시기가 지나도록 바다에 들어가고, 바다를 사랑하며, 바다에서 생을 마칠 용기도 갖고 있다.
그토록 힘든 바다였지만 그녀들은 바다를 떠나지 않는다.
"이 나이에 왜 바다에 들어가느냐고요? 바다는 나의 애인이에요"
나도 나이가 들어가니까 못 하는 것이 자꾸 늘어난다. 한때 스키도 타고 스케이트도 탔지만 이제는 자전거도 못 탄다.
몇 년 후면 운전도 못 하게 될 것 같고 먹는 것도 달라질 것 같다. 올 초부터 커피도 안 마시게 되었고 햄버거와 피자는 먹으면 속이 불편하다.
그래서 이제는 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마음이 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숨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감하게 바다로 헤엄쳐가는 해녀들이 부럽다.
나의 바다를 갖고 싶다. 호기심과 용기를 잃지 않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