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 같은 오아시스 세탁소가 습격당하던 날
- 연극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을 보고 -


 ‘누적 4,396회 공연, 33만 관객 돌파’

 

연극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김정숙 작, 권호성 연출)의 성적이다. 2003년 초연 이후 15년간 꾸준히 무대에 올려진 이 연극은 중학교 국어 교과서(미래엔, 챈재교육, 금성출판사)에 수록되었고,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매섭게 추운 저녁에 극장을 찾은 날, 그 명성답게 객석은 만원이다.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포스터 (사진: 극단 모시는 사람들 홈페이지)

 

무대는 어느 동네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세탁소 하나를 통째로 옮겨놓았다. '오아시스 세탁소'라는 낡은 입간판과 세탁소를 가득 채운 후줄근함이 서울 변두리 동네 냄새를 물씬 풍긴다.

 

세탁소의 주인은 강태국, 연극의 주인공이다. 아버지에게 이 세탁소를 물려받은 지 30년, 아버지 때부터 치자면 50년째 같은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힘만 들고 돈이 안 되는 세탁소를 접고 빨래방을 차리자고 졸라대는 아내의 바가지에도, 진상 손님의 갖가지 추태에도 노래를 흥얼거리며 뭐든지 "허허허~~" 웃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다. 약간 튀어나온 배, 다 늘어진 회색 러닝셔츠 차림. 그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이웃이다.

 

연극은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무대 (사진: 직접 촬영)

 

첫 손님은 노숙자 티를 풀풀 풍기는 초로의 남자이다. 40년 전 맡긴 어머니의 두루마기를 찾으러 왔다. 성공하면 찾으러 오리라 각오했지만, 어머니는 돌아가신지 오래 전이고 그의 삶도 초라하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오래된 장부를 뒤적여 어렵게 두루마기를 찾아주면서 다시 살아갈 힘을 보탠다.

 

오아시스 세탁소를 드나드는 손님은 다양하다.

세탁소 주인의 배려로 손님이 찾아가지 않은 옷을 빌려 입고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청년, 무조건 싼값으로 옷을 리폼해달라고 떼를 쓰는 아가씨, 엄마 심부름으로 옷을 찾으러 온 어린 소녀, 그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이스크림 사 먹을 돈을 주었다고 성추행을 의심하며 따지러 온 소녀 엄마 등등.

 

진상은 이 집에도 살고 있다. "낳았으면 책임을 져야지!"라며 엄마에게 마구 대드는 사춘기 아들이다. 무대에 올라가 한 대 쥐어박아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자식을 저렇게 키우다니!'라는 생각도 치민다. 그러나 "아들을 따르자니 지아비가 울고, 지아비를 따르자니 아들이 우~~네" 힘들고 짜증나는 상황을 노래로 흥얼거리며 넘어가는 그의 아내에게 응원을 보낸다. 누가 뭐래도 씩씩하고 쾌활하며, 가족을 끔찍이 사랑하는 그녀이기에.

 

치매를 앓는 안 씨 할머니의 자식들이 '오아시스 세탁소'를 습격하여 난장판을 만들면서 극의 진행이 빨라진다. 큰 재산을 가졌던 할머니가 임종이 다가오면서 유일하게 남긴 한마디가 "세탁…." 이었기 때문이다. 엄청난 유산이 세탁소에 맡겨진 옷 속에 감춰있다고 믿는 할머니네 자식들이다. 발견 금액의 50%를 사례금으로 내놓겠다고 하자 주인공과는 달리 주변 사람들은 세탁물에 욕심을 낸다.

 

갑자기 무대는 불빛 하나 없는 어둠뿐이다. 번득이는 탐욕의 눈동자들만 하나 둘 나타나더니, 짐승의 탈을 쓰고 보물이 들어 있다고 믿는 세탁물을 어지럽게 찾는다. 돈에 눈이 먼 이들은 말, 소, 돼지, 개, 원숭이 등의 동물 가면을 쓰고 있다. 탐욕 앞에 인간이 스스로 동물이 되는 순간을 잘 묘사하고 있다. 연출의 탁월함이 엿보인다.

 

“그 많은 재산, 이 자식 사업 밑천 저 자식 공부 뒷바라지에 찢기고 잘려 나가도,
 자식들은 부모 재산이 화수분인 줄 알아서, 이 자식이 죽는 소리로 빼돌리고, 저 자식이 앓는 소리로 빼돌려 할머니를 거지로 만들어 놓았어도,
 불효 자식들 원망은 커녕 형제간에 의 상할까 걱정하시어 끝내 혼자만 아시고 아무 말씀 안 하신 할머니.

이제 마음 놓고 가셔서 할아버지 만나서 다 이르세요.” 

 

동물들의 침입을 발견한 강 사장의 읊조림은 우리 세태를 잘 반영하고 있다.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다. 강 사장은 그들이 찾는 보따리를 세탁기 안으로 던져버린다. 보따리를 따라 줄줄이 세탁기로 들어가는 사람들.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탁 코스를 끝내자 그들이 입고 있던 검정 옷이 모두 새하얀 옷으로 바뀌어 나온다. 그들의 마음도 새하얗게 세탁이 되었을까?

 

돈이면 다 된다는 씁쓸한 현실의 모습을 풍자하면서도 곳곳에 웃음을 배치해 놓았다. 배우들의 맛깔나는 연기에도 박수를 보낸다. 연극을 보고 돌아오는 길.

'세탁소 이름이 왜 오아시스일까?' 질문을 해 본다. 답은 빨리 찾아진다. 낙타도 물도 없지만, 사막 같은 세상에 위로가 되어주는 곳, 따뜻한 인간애가 있어 살아갈 힘을 얻는 곳이어서가 아닐까?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무대 (사진: 직접 촬영) 

 

“우리가 진짜 세탁해야 하는 것은 옷이 아니야, 
바로 이 옷들의 주인 마음이야”